할머니와의 이별

by 최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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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1월

“용주야~~”

까만 의식 속 저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뜨니 눈알에 잔모래가 낀 듯 꺼칠꺼칠하다.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조금 지났다.

“용주야~~~”

애절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엉기적거리며 다가가 미닫이문을 연 후, 기지개를 켜면서 “아아~~” 하품을 한다.

방문을 여는 순간 병석에 누워있는 노인 고유의 냄새인 지린내가 나지만 이제는 나의 후각에 익숙하여 큰 부담감이 없다.

방에는 형체만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약한 조도를 갖춘 가진 전구가 내부를 밝히고 있다.

맞은편 벽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상이 부착되어있으며, 십자가상 바로 밑에는 조그만 소반 위에 성모님 상, 그 앞에 찬송가 책, 그 위에는 묵주가 놓여 있다.

방 아랫목에는 두꺼운 요와 이불속에 폭 싸여 유달리 작게 보이는 할머니가 누워있으며, 방 왼쪽 구석에는 요강이 있다.

“할머니, 왜 그래?”

나는 눈언저리가 깊게 파인 휑한 눈으로 나를 바라다보는 할머니에게 물어본다.

“용주야, 나 좀 일으켜주라. 아~, 등이랑 허리가 너무 아프다.”

나는 숙달된 조교처럼 할머니를 일으켜 앉힌 후, 나의 등을 벽에 기대고 앉아 나의 배와 가슴에 할머니의 등을 기대게 하고 나의 양쪽 다리 사이에 할머니가 들어오도록 뒤에서 껴안는다.

안 그래도 조그마한 몸이 4달 동안의 병상에서 더욱 말라 가벼운 강아지를 안아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할머니, 물 줄까?”

“엉”

나는 한쪽 팔을 쭉 뻗어서 할머니의 머리맡에 있는 물그릇을 당겨서 그릇에 담겨있던 숟가락에 물을 조금 담아서 할머니의 입에 가져다주니 할머니는 힘없이 쪽쪽 빨아 마신다.

몇 모금을 마신 후, “용주야, 지금이 겨울이냐?” 하고 묻는다.

“엉, 시방 겨울이여, 새해가 되어서 1월이여.”

“아~, 내가 아픈지도 솔차니 지났지야?”


4개월 전, 1975년 9월 말

형들과 나는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거실과 연결된 건넌방에서 어머니와 함께 식사하던 중 할머니가 갑자기 수저를 상에다 ‘탁’ 내려놓으신 후 바로 그 자리에 드러누워 버리신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할머니의 안색을 살핀 후 우리에게 소리를 치신다.

“야, 얘들아, 할머니가 이상하다. 빨리 안방으로 모셔라.”

우리는 황급히 일어나서 할머니에게 다가간다.

형이 할머니를 안고서 어머니가 깔아놓은 요에 할머니를 눕힌다.

이때 할머니의 나이는 85세이셨다.


30대에 남편을 잃고, 행상을 하시면서 3남매(고모, 큰아버지, 아버지)를 어렵게 키워 결혼시켜서 많은 손주(큰집은 4남 2녀, 우리 집은 6남 2녀)를 가지신 할머니의 인생은, 내가 보기에는, 오로지 손주들을 위한 삶이었다. (고모는 고모부가 일찍 돌아가셨기에 슬하에 자녀가 없었다)

내가 홍역을 앓을 때 열을 밖으로 발산하지 못하여 시름시름 앓았을 때, 부모님마저 나의 생을 거의 포기하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아이고, 우리 새끼, 우리 손주 죽는디, 어디 좋은 방법 없을까?”를 외치고 울면서 온 동네를 돌아다니셨다.

덕분에 동네 할아버지 한 분이 ‘성당 뒷골목 어귀의 행상에게서 웅담을 사서 먹이라’는 말을 할머니에게 해 주셨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당시에 엄청 비쌌던 참깨 3말 반으로 웅담을 구하여 나에게 먹여 살리셨으니, 할머니의 사랑과 은혜가 없었으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존재하지 못하였다.

초등(국민)학교에 다닐 때, 할머니는 학교에서 유명 인사였다.

손자들에게 따뜻한 점심을 먹이기 위하여 매일 점심시간 전에 따뜻한 도시락 3~4개를 가슴에 품고 학교에 와서 손자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여주셨던 할머니.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허리가 유달리 굽은 할머니가 교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점심시간이 다가온 것을 알았다.

밖에서 놀다가 집에 오면, 항상 반갑게 맞이하며 온갖 간식을 챙겨주셨던 할머니.

나는 가끔 “내가 집에 들어왔을 때 할머니가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면 아주 슬프고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었다.

나의 유아 시절, 어린 시절, 사춘기 시절을 다 보듬어 주셨던 할머니가 임종의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당시 형들은 군대와 해외에 나가 있었으며, 남동생은 축구선수로 학교 기숙사에 있었던 관계로 할머니의 병시중은 나와 어머니가 주로 할 수밖에 없었다.

낮에는 주로 어머니가 시중을 들었으며, 잠귀가 밝은 내가 밤중에 시중을 들도록 자연적으로 틀이 잡혔다.

할머니가 병석에 누운 후, 내가 병시중을 들을 때, 뒤에서 할머니를 안고서 할머니와 대화를 나눈다.

“용주야!”

“엉, 할머니 왜?”

“나 살고 잡다. 나 죽고 싶지 않아.”

‘처녀가 시집가기 싫다’,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말과 함께 삼대 거짓말 중의 하나인 ‘노인분이 빨리 죽고 싶다’는 말은 우리 할머니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알았다.

병석에 눕기 전에는 “이 늙은 년, 빨리 죽어야재, 살아서 머 한다냐?” 하시면서 자학을 하시던 할머니가 임종이 다가오니 본심을 보이신다.

“아 무슨 말이여. 할머니는 안 죽어. 곧 나아서 창경원으로 나랑 놀러 가서 호랑이랑 사자랑 동물들 구경해야지.”하면서 나는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한다.

또 다른 대화가 이어진다.

“용주야!”

“왜?”

“나 단 것 좀 주라. 단 것이 묵고 싶어야.”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밖에서 뛰놀다 집에 돌아오면 부엌에서 간식거리를 챙겨 와 “용주야, 언능 이리 와 이 것 묵으라 잉.” 하시면서 간식을 내어주신다. (간식의 종류로는 계절에 따라 딸기, 설탕을 살짝 뿌려 놓은 토마토, 수박, 감자, 고구마, 옥수수, 밀주로 담가놓았던 막걸리를 데워 만든 죽 등등)

맛있게 먹다가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할머니에게 “할머니 이거 같이 먹어.” 하면, 할머니는 “아녀, 난 안 묵어. 너 많이 묵어라.”하신다.

나는 먹던 것 중 하나를 집어 할머니에게 건네주면, 할머니는, “야, 나 이런 거 싫어해야. 난 먹기 싫은 게 너 많이 다 묵어.” 하셨다.

나는 할머니가 진짜 싫어서 안 드시는 것으로만 알고 맛있게 먹어버렸던 것이다.

먹거리가 귀하던 그 시절, 그토록 좋아하던 음식을 참아 가면서 고이 간직하다가 사랑하는 손주들이 오면 아낌없이 내주시던 할머니! (지금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할머니 생각에 눈물이 난다)


4달 동안 할머니의 병시중을 계속하였다.

하루는 재수 중인 창석이와 신설동에서 소주를 마셨다.

둘 다 술도 세고, 고교 시절부터 의기가 통하였던 사이라 소주를 많이 마셨다.

이틀 후 역시 재수하고 있던 상국이를 청량리에서 만났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상국이와는 막걸리를 한 되 시켜놓고 상국이가 딱 한 잔 먹는 동안 내가 나머지를 마셨다.

두 친구와 술을 마시는 동안 나는 그들의 재수 생활의 어려움을 들어주면서 위로하였고, 그들에게 할머니의 임종을 맞이 해야 하는 나의 슬픔을 이야기하면서 위로를 받았다.

우울한 마음으로 술을 마시니 평상시보다 술이 더 취하였다.

상국이와 술자리를 가진 다음 날부터 나는 몸이 시름시름 아파졌다.

단순히 감기 정도로 생각하고 며칠을 방 아랫목에서 끙끙 앓았다.

밤중에 할머니가 부르시면 일어나 방에 들어가 시중을 들었다.

하지만 감기로 생각하였던 것이 점점 심해져 나는 음식을 먹을 수가 없을 정도로 심하여져 갔다.

기운을 차리려고 좋아하는 복숭아 황도 통조림을 먹으니 입안에 쓴 액체가 가득 차면서 토해낸다.

어머니가 목욕탕에 가서 몸을 풀고 오라 하여 대중탕에 갔다.

뜨거운 탕에 들어가려 옷을 벗고 나의 몸을 보니 몸 전체가 노란색이다.

깜짝 놀라 거울에 비춰보니 거울 속에 나타난 나의 얼굴은 노랗게 변하였으며, 눈을 보니 눈동자에 하얀색은 다 사라지고 짙은 노란색이 자리 잡고 있다.

‘아~~, 나는 죽을병에 걸렸나 보다’ 생각하고 부랴부랴 집에 돌아와 식구들에게 나의 몸 상태를 보였다.

“아이고, 용주야 너 황달 걸렸다.”

어머니가 기겁하면서 말씀하셨다.

“너 오늘부터 건넌방에서 자지 말고 다른 방에서 자고 당분간 할머니 병시중 들지 말아라. 할머니 시중들다 니가 먼저 죽겠다.”

4달 동안의 할머니 병시중을 끝내고 나는 안방과 멀리 떨어진 방에서 지냈다.

할머니가 나를 부르시면 어머니가 “엄니, 용주가 병 걸려서 올 수 없어야. 밤에 용주 그만 부르세요.”라고 하니, “우리 용주 많이 아프냐?” 하면서 걱정을 하셨다고 한다.


2달 후 낮이었다.

“용주야, 빨리 이리 와봐라. 할머니 돌아가신다.”

황급히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안방에 들어가니 할머니가 멍하니 위를 쳐다보시다가 고개를 옆으로 떨구신다.

“아이고 어머니, 잘 가시오.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어요.”

울면서 어머니는 손을 살포시 떠진 할머니의 눈으로 가져다가 눈을 감겨드린다.

안방 윗목에 할머니 시신을 모셔놓고 상객을 받았다.

소식을 듣고 전지훈련 도중 급하게 돌아온 동생 베드로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엉엉, 할머니” 대성통곡하면서 안방 윗목의 할머니에게 다가간다.

할머니를 덮은 천을 벗기고 할머니를 움켜잡고, “할머니, 왜 죽었어, 엉엉. 할머니 다시 살아나, 엉엉” 할머니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비비면서 운다.

어려서부터 온 동네 뛰어다니면서 말썽을 부리고 다니던 베드로를 할머니는 유독 사랑하시고 챙겨주셨다.

밥에 콩가루와 설탕을 비벼 뭉쳐 만든 주먹밥을 들고서 끼니를 거르며 애들과 뛰어노는 베드로를 이리저리 쫓아다니셨다.

베드로가 자기의 얼굴을 할머니 얼굴에 비비면서 대성통곡하고 있는 모습을 보던 한 문상객은, “어휴, 얼마나 아끼고 사랑스럽게 키웠으면 손자가 저렇게 슬퍼할까? 복 받으신 분이시네.”라 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눈을 감겨드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떠한 슬픔도 느끼지 못하였다.

그동안 괴로워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애처로워 빨리 돌아가시기를 기다렸던 것일까?

20년 동안 나의 유아기, 어린 시절, 사춘기를 다 돌봐주시고 챙겨주셨던 할머니에게 그 몇 달 동안의 병시중이 그렇게 힘들었나?

할머니는 나에게 정 떼고 돌아가신 것인가?

할머니!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이제는 아픔은 없고 편안한 천당에서 평안히 안식하세요~!


할머니와 이별한 지 많은 세월이 흘렀다.

살아오면서 절체절명((絕體絕命)의 위기의 순간과 많은 마음고생을 하는 복잡한 사건에 휘말리고 있을 때 꿈에서 할머니가 나타나면 다음 날 위기에서 벗어나고, 복잡하고 안 풀릴 것 같았던 일이 해결되는 경험을 여러 번 하였다.


할머니는 하늘나라에 가신 후에도 나를 지켜주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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