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앞에 붙이고 싶은 수식어, 작가

by 최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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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위는 직무상의 계급이다.

즉, 계장,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임원(상무, 전무, 부사장, 사장, 회장)과 같이 구분된다.

대체로 직위는 임원 전까지는 연공서열로 간다.

하지만 이러한 연공서열이 깨질 경우도 있으니 조직원은 인사 시절만 되면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직책은 직무상의 책임을 말한다.

즉, 구매팀장, 판매팀장, 구매담당 임원, 구매담당 부사장, 생산담당 사장 등으로 책임을 지는 업무를 나타낸다.

과장이 구매팀장이 될 수 있으며 구매팀장의 부하인 구매 팀원은 차장이나 부장의 직위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럴 때 높은 직위를 가진 사람이 자기의 후배인 낮은 직위를 가진 사람 밑에서 심한 정신적인 고통을 감내하여야 하는 조직의 쓴맛을 보면서 직장 생활을 해야 한다.

이러한 쓴맛을 안 보기 위해서는 자기의 인사권자인 상관의 눈밖에 벗어나면 절대 안 되며, 또한 이러한 직책을 관리하는 인사부서의 담당자와 책임자에게 엄청난 정성을 들여야 한다. 회사는 직위에 따라 봉급이 결정되며, 직책에 따라 자기의 맡은 업무가 결정되기에 구성원들 간에 높은 직위와 좋은 직책을 위하여 치열한 경쟁들이 벌어지고 있는 전쟁터이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회사는 직위와 직책을 이용하여 전체 직원들을 이끌어간다.

나는 P 제철에 입사한 후 3년이 지난 1984년도 계장 승급시험을 보았다.

시험 전에 여관방에서 동기들과 합숙하면서 공부를 하는 등 큰 노력을 하였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같은 동기 중 1/4만 합격하였는데 불합격한 동기들은 보이지 않고 합격한 친구들만 보였다.

첫 경쟁에서 탈락했다고 생각하니 세상이 싫어졌으며, 회사도 나가기도 싫어졌다.

그렇다고 회사를 당장 때려 칠 형편도 아니니 계속 다닐 수밖에 없다.

6개월 후 다시 도전할 때에는 코피를 흘리면서 열심히 공부하여 합격하였다.

한 친구가 인사과에 알아보니 차석으로 통과하였단다.

나의 직위는 계장이었다

이때의 기분은 세상을 다 얻은 느낌이었으며 회사를 곧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하였다.

8년 후 과장 승진심사 1차에서 탈락하였다.

이때는 계장 승진 때의 경험도 있고, 책임을 져야 할 가정도 있고 해서 정신적 고통은 그다지 크지 않았으며, 차기의 기회를 기다리는 성숙한 마음이 생겼다.

1년 후 과장이 되었다.

“과장 최용주”로 인쇄된 명함을 받으니 세상이 내 것만 같다.

그룹의 구조조정(restructuring)이 실시되었다.

나는 신설된 ‘P 건설’로 가게 되었다.

바로 위 상관인 팀장이 내가 자기 자리를 치고 올라올까 봐 내린 조치이다.

아~ 성질나서 팀장의 멱살을 붙잡고 따져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조직인지라 참고서 P 건설로 전직하였다.

통상 자회사로 이전할 경우 직위가 한 단계 상승하는 것이 통례인데, 나는 그대로 과장이란다.

인사부서에 문의하니 나는 과장이 진급한 지가 1년이 안 되어서 바로 차장을 주기가 약간 부족하단다.

3개월 후 인사가 있으니 그때 진급하면 된다고 한다.

3개월 참으면 차장 진급이 된다고 하니 참을 만하였다.

그러나 3개월 후 인사 결과는 나보다 2~3년 후배들이 차장 진급하고 나는 낙방이다.

계장 시험에서 떨어진 것보다 훨씬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알고 보니, 부서장이 진급 서열을 결정하면 인사부서에서는 부서마다 미리 정해진 할당(quota)에 의해서 서열순으로 진급을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진급 방식은 P 제철과 비슷하였으나, 신설된 조직이라 보니 서열을 정하는 뚜렷한 기준이 없어 부서장이 맘대로 정한 순서로 서열이 결정되는 것이란다.

서열을 정하기 전에 양주를 들고서 부서장의 집에 찾아간 직원들은 진급하고 나처럼 연공서열 상의 순서를 믿고 있던 직원들은 진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3년 계속되었다.

나보다 3~4년 후배들이 차장 진급하는 데 나는 계속 과장이다.

이러한 난관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당시 내 매제의 사촌 형이 모사인 P 제철 부사장이었다가 임원진들끼리의 자리다툼에서 밀려 P 건설의 고문으로 와 있었다.

이분의 신상을 조사해 보니 나의 본부장과 실장의 고등학교 동문으로서 주말에 같이 골프를 치는 등 매우 친밀하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나의 매제는 공영방송 기자였기에 이분은 사촌 동생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입장이므로 나의 부탁을 거절을 할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하였다.

나는 매제 사촌 형의 사무실에 찾아가, “모사에서 과장하다가 자회사에 오면 당연히 차장으로 진급시켜줄 것으로 믿었는데 불합리한 인사 정책으로 후배들에게 밀려 진급을 못 하고 있으니 힘 좀 써 주십시오.”하고 부탁하였다.

인사명령 후 나의 명함은 “차장 최용주”로 바뀌었다.

차장 진급 후 바로 구매팀장의 직책을 맡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부장이나 선임 차장이 팀장의 직책을 맡을 수 있는데 차장 진급 후 바로 팀장이란 직책은 파격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신임 차장이었지만 부장들보다 더 선배였기에 주변의 직원들은 당연한 조치라 생각하였다.

상사, 부하직원, 업체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잘 조율하면서 구매계약팀장의 직책을 무난히 수행한 결과

“부장 최용주”로 박힌 새 명함을 받을 수 있었다.

건설회사의 노른자라는 구매부서의 건설자재구매팀장의 직책을 가진 동안 담당 임원과의 의견 차이로 인하여 현장 사업팀장으로 명령을 받았다.

이때의 좌절감은 회사에서 겪었던 것 중에서 가장 큰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직장인들의 소망인 임원의 꿈을 이룰 수가 없었다.


퇴직 후 친구들과 사업을 하다가 실패 후에 영어번역사 자격증을 취득하고서 ‘**번역’이란 외국어 번역 및 통역 회사를 차렸다.

사업장이자 사무실은 사는 아파트이었고, 사장과 직원은 나 혼자이다.

“CEO 최용주”

빛 좋은 개살구였다.

번역 실무는 하겠는데, 후배들에게 아쉬운 부탁 및 영업이 필요한 번역회사의 CEO는 나의 체질에 안 맞아 폐업하였다.

따라서 이제는 나의 이름 앞에 붙일 수식어가 없다.

10년 후 내 이름 앞에 무슨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까?

내가 회사를 설립하여 CEO를 붙일까?

아니면 이 나이에 다시 회사에 취직하여 상무, 전무, 부사장, 사장의 타이들을 붙일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회의적이다.

하지만 내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는 소망이 있다.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단련시켜서 나의 이름 앞에 붙이고 싶은 수식어가 있다.

“작가”

10년 후에는 “작가 최용주”로 불리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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