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이제 그만 만나요”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서 그녀가 비장한 표정으로 나에게 던진 말이다.
“예? 무무무 무슨 말이에요?”
나는 깜짝 놀라 그녀를 쳐다보면서 말을 더듬으며 물어본다. 무슨 농담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우리 이제부턴 그만 만나요. 이 순간부터 우리는 서로 연락하지 말아요.”
그녀가 재차 확인하여주는 결별의 통보에 현실을 직시한 나의 머리는 갑자기 어찔하면서 까만 의식과 하얀 의식이 교차한다.
“아~ 아니, 무슨 일 있어요?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해요?”
그녀의 단호한 표정에 나는 떨리는 말로 대응을 한다.
“이유는 묻지 마세요. 용주 씨와 이제껏 사귀면서 많은 생각을 해봤는데 이젠 그만 만나야겠어요.”
“이유는 묻지 말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유라도 알아야 그만두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에요. 무슨 이유입니까?”
나는 도망가는 여인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애원하듯이 그녀의 입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한다.
“저는 이만 가겠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떠나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떠나지 말라 애원하지 못하게 하는 나의 알량한 자존심이 매정하게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게 하고 있다. 바보같이……
‘나 어떡해 너 갑자기 가버리면
나 어떡해 너를 잃고 살아갈까
나 어떡해 나를 두고 떠나가면
그건 안 돼 정말 안 돼 가지 말아 ‘
아~~~, 이런 젠장! 상황에 맞게 산울림의 노래가 카페에 흐르고 있었다.
그녀가 떠난 후 나의 생활은 리듬을 상실한 교향곡 같았다.
그녀와 만났던 2~3달 동안의 즐겁고 희망에 부풀어있던 나의 마음은, 그녀가 떠나자 펑크난 타이어를 장착한 자전거처럼 덜커덕거렸으며, 이에 따른 나의 생활은 주변 사람들 특히 부모님을 불안하게 했다.
밤마다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나의 모습을 본 부모님은 어떻게 해서든 나의 마음을 안정시켜 결혼시켜야겠다는 강박감이 심화되었던 것이다.
당시 나는 31살로서 나의 친한 친구들은 거의 결혼한 상태였다. (당시에는 30살이 넘으면 노총각이란 딱지가 붙었던 시절이었다)
방황하고 있는 아들을 구원하고자 부모님은 주변의 지인을 통하여 나에게 맞는 아가씨를 소개해 주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셨으나 여의치 않자, 전문적인 중매인(仲媒人)에게 의뢰하게 되었다.
“직장과 몸도 튼튼하겠다, 인물도 빠지지 않으니 걱정 마시고 저에게 맡겨주시면 백 퍼센트 성사시켜드릴 테니 안심하세요.” 하는 중매인의 말에 부모님은 많은 기대를 하시는 눈치였다.
아~, 그때부터 나의 고난은 시작되었다. 매주 주말에는 아가씨들 만나는 날이다.
다방에 가서 쓴 커피를 시켜놓고 서로의 이름을 알려주는 정해진 절차를 마친 후 중매인은 사라진다.
‘나는 앞에 있는 아가씨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어떻게 헤어질까?’를 생각하며 행동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하였다.
이런 일을 여러 차례 반복하니 중매인은 아주 적극적으로 나온다.
최후의 수단으로 ‘선보기 릴레이’를 하잔다.
하루에 4~5명의 아가씨를 만나는데, 한 아가씨에 1~2시간씩 시간을 할애하여 만나본 아가씨 중 마음에 드는 한 아가씨를 골라서 사귀어보란다.
나는 황당하여 안 한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화를 벌컥 내시면서, “야, 이놈아 니가 시방 더운물 찬물 가릴 때냐? 너 이때 장가 못 가면 우리들도 너 책임 못 진다. 니가 인물이 좋냐, 돈이 많냐? 우리들이 신경 쓸 수 있을 때 너도 노력해야지!”라는 엄포에 할 수 없이 ‘선보기 릴레이’에 응하여, 약속된 시간에 정해진 다방으로 갔다.
중매인과 한 아가씨가 앉아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꾸벅 절하며, “최용주입니다.”라고 아가씨에게 나를 소개하였다.
“아, 이쪽은 이** 양입니다.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고요, 부모님들도 교직에 몸담은 교육자 집안입니다. 아, 그리고 이분 최용주 씨는 **제철에 다니고 있고요, 계장으로 앞날이 창창하신 분이십니다. 참 최 계장님은 갑자기 오늘 오후에 해외 출장을 가시게 되어서 오늘 약속을 다음에 미루자고 한 것을 오늘은 잠깐이나마 만나보시고 다음 약속을 잡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오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을 이해하여 주세요.”
프로답게 둘러대는 중매인의 화술에 속으로 놀라면서 눈으로는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중매인이 떠난 후 아가씨의 뒤편에 있는 TV에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아가씨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 TV 화면에는 탤런트 원미경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병원 식당의 배식하는 아주머니가 저보고 원미경 닮았다고 하면서 맛있는 것 많이 주세요.” 웃으면서 하던 그녀의 말이 생각이 났다.
그럭저럭 약속된 1시간이 지나자 나는 그만 출장 준비를 하여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아가씨와 헤어진 후 다음 약속 장소로 가야만 했다.
이러기를 5차례 하니 몸과 마음이 아주 많이 지쳐버린다.
다음 날 특별한 반응이 없는 나를 보고서 부모님은 많은 실망을 하시면서, “부모로서 역할을 다하였으니 니 인생은 니가 책임져라.”하신다.
사무실이다.
그녀와 헤어진 후 3달이 다 되어간다.
세월이 약이라고 헤어진 직후 많이 아팠던 마음의 상처도 아물어 가는지 바쁜 업무에 정신이 없다.
“최용주 씨, 없는 사이에 전화 왔어요. 아가씨던데요. 누구냐고 물었더니 다시 전화 주겠다고 하던데요”
외근 후 사무실에 들어오니 나와 동갑이면서 역시 노총각인 옆자리의 김 계장이 야릇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에게 전해준다.
“아가씨요? 누구지?”
김 계장에게 뭔가 들킨 것 같아 쑥스런 생각이 들면서 그 아가씨가 누구인지 궁금하였다.
‘선을 보면서 별생각 없이 명함을 준 몇 명의 아가씨 중 하나일까? 아니면 거래처인 은행의 여직원일까? 혹시 그녀? 아니야 그녀는 아주 떠났어. 아마 아닐 거야.’ 하면서도 전화 옆을 떠나지 못하였다.
바쁜 업무에 정신이 팔려서 걸려온 전화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 전화벨이 울린다.
“감사합니다. 외자과 최용주입니다”
회사가 정해준 전화 예절대로 상냥하게 전화를 받으면서 내가 기다리던 전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여보세요.”
잠시 뜸을 들인 후 마른침을 삼키는 듯한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그녀다!
나의 머리에는 그녀와 헤어질 때 느꼈던 하얀 의식과 검은 의식이 교차하였다.
“여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나는 누군지 뻔히 알면서 물어보았다.
“저…, 정**입니다. 누군지 아시죠?”
“어어어, 아! 안녕하세요?”
나는 이때의 어색한 순간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매우 당황하여 뒷말을 잊지 못하였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녀는 나의 반응을 보고 마음의 안정을 찾았는지 예전의 침착함을 되찾으며 묻는다.
‘아니 남의 마음에 불을 질러놓고 지금 와서 할 말이냐?’고 하는 생각이 마음 한쪽에서 잠깐 생겼다가 사라지고, 전화해 준 것만 해도 정말 고맙고 황송했다.
“예 예, 잘 아 아니 잘 지내고 있습니다. ** 씨도 잘 지내셨습니까?”
“예,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요즈음 바쁘세요?”
당황하는 나의 목소리에 더욱 자신감을 얻었는지 더욱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다.
“아 아닙니다. 그다지 바쁜 것 없습니다. 시간 있으시면 한번 만나주시겠습니까?”
나도 자신감을 가지고 제안하였다.
“그러실 시간 있으세요? 저도 그럴 생각으로 전화드린 거니까요.”
“제가 지금 그 ‘달 밝 때의 춤’으로 가면 될까요?”
“그러세요. 30분 후에 그리로 가겠습니다.”
나는 전화기를 수화기에 내려놓고서, 책상 위에 있는 서류를 서랍과 캐비닛에 부리나케 쑤셔 넣은 후, 부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김 계장의 시선을 뒤로하고 대학로에 있는 ‘달 밝 때의 춤’이라는 카페로 달려갔다.
그녀와 감격스러운 재회를 하고, 바쁜 가운데서도 거의 매일같이 만나고 공을 들여, 3개월 후 우리는 결혼을 하였다.
그 후 예쁜 두 딸을 낳고 곱고 사랑스럽게 키웠으며, 이제는 두 딸은 결혼하여 각자의 보금자리를 꾸려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만약 그때 아내가 자기의 자존심과 서먹함을 이겨낸 용기를 내어 나에게 재회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으면 우리의 인연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나 또한 그녀의 순수한 용기에 순수한 사랑의 마음으로 대하지 않았다면 인연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색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하여 나의 진심에 반하는 행동을 하였다면 평생의 후회로 남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내는 그때 우리가 진정 하늘이 맺어준 인연일지도 모르는데 그 인연을 몰라보고 엇나간다면, 영원히 필연과 못 만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제일 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