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직장 생활하는 동안 하고자 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계획을 세워서 윗사람의 승인을 받거나, 관련된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서 실행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은퇴 후에도 그때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여행을 가기 전 대상 지역과 관련된 정보를 확인한다.
요즈음은 인터넷의 도움으로 무엇을 구경할 것이며, 여행 코스를 어떻게 잡아야 가장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것이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과 음식의 가격을 조사하며, 숙박할 장소까지 검색하여 예약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여행을 가서 할 일은 인터넷에서 미리 본 사진과 실물을 비교 확인하고, 인터넷에서 보여주고 평가한 음식과 맛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번 여행을 가서 무엇을 볼까? 그것은 어떠한 모습일까? 여행지에 가서 맛집을 어떻게 찾지? 거기에 가면 콩나물 비빔밥이 맛있다는데 어느 음식점에서 최고의 맛을 볼 수 있을까? 숙소는 깨끗하고 편안할까?” 하는 호기심과 기대감을 없애거나 감소시키는 역할을 인터넷이 충실히 하고 있다.
사전 검색 후 떠나는 여행에 익숙한 요즈음 젊은이들은 우리 세대가 느꼈던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는 여행에서 느꼈던 즐거움을 이해하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세대에게는 여행 떠나기 전의 흥분과 기대감을 상실한 채 떠나는 여행은 ‘앙꼬 없는 찐빵’과 같이 여행이 주는 즐거움의 본질이 상실된 여행이라 생각한다.
강릉에는 경포대 해수욕장이 있다는 말만 듣고 그곳의 사진 한 장 보지 못한 채 해수욕장을 실제로 보고서 느꼈던 감동은 대단하였다.
하지만 세계적인 휴양지인 인도네시아의 발리를 여행하기 전에 사진과 동영상으로 발리의 멋진 해변 풍경과 유적지를 검색 후 실제 발리에 가서 느꼈던 감동은 경포대에서 느꼈던 감동보다 훨씬 덜 하였던 이유는 무얼까?
학창 시절에는 얄팍한 주머니 사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친구들과 텐트와 코펠을 담은 배낭을 메고서 산과 강과 바다를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이 세상에는 나의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너무도 많구나.’ 하는 인생 공부를 하였다.
삼등 열차를 타고서 차비가 부족하여 걷다가 피곤하면 차장 아가씨에게 사정하여 버스를 무료로 타고, 산속에서 개울물에 끓인 라면을 안주로 삼아 먹던 소주가 그리 맛있었으며, 피곤한 발을 이끌고 도달한 여행지의 아름답고 멋진 풍광을 배경 삼아 서로 갖은 폼을 잡아가면서 찍었던 사진이 참 보기 좋다.
고등학교 졸업 후 군대 가기 전의 일이다.
창기와 광우 나 셋이서 배낭을 메고서 우이동계곡으로 찾아갔다.
배낭에는 텐트, 코펠, 버너, 쌀, 라면, 김치, 소주 등 잠자고 먹는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계곡 초입의 자리 좋은 물가에는 상가들이 차지하고 있어 계곡 깊숙이 들어가야 텐트를 칠 수 있다.
땀 흘리며 1시간 반가량 올라간 후 좋은 자리를 잡아 텐트를 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텐트를 치던 창기가, “야 벌이다. 토껴!” 하고 소리친다.
창기의 뒤를 보니 벌떼가 창기를 추격해오고 있다.
“아야, 아야, 쏘였다.” 하는 창기의 소리와 거의 동시에 계곡에서 쌀을 씻고 있던 나에게도 벌들이 달려와 머리와 어깨를 몇 방 쏜다.
창기와 같이 텐트를 치고 있던 광우도 몇 방 쏘였는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야, 철수하여 저 밑으로 내려가자.”
나의 제안에 두 친구는 찬성하여 우리는 주섬주섬 모아 챙겨서 밑으로 내려가서 텐트를 치고서 자리를 잡았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일찍이 술과 담배를 하여 몸에 적당한 이물질이 배어있는 나와 창기는 벌에 쏘인 곳에 약간의 부기만 있고 곧 가라앉았는데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았던 광우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눈동자는 빨간빛으로 물들어 엄청나게 괴로워한다.
창기와 나는 '광우는 곧 괜찮아지겠지' 생각하면서 계곡물로 밥을 짓고 라면을 끓여 소주를 먹기 시작하였다. 텐트 안에 끙끙 앓고 있던 광우를 놔두고 술에 취하여 둘은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고 하다 텐트에 들어오니 광우는 끙끙 앓고 있다.
“광우야, 괜찮아? 우리 둘은 멀쩡한데, 넌 왜 그러니? 평상시에 우리처럼 술과 담배를 하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네. 담부턴 우리처럼 술 담배를 좀 해봐.” 하면서 위로 아닌 위로를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광우에게 못된 짓을 한 것 같아 매우 미안하다.
이번에도 군대 가기 전의 추억이다.
친구들과 군대 송별식 여행으로 나와 창기를 포함 고교 친구들 6명이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인천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송도유원지에 도착하였다.
오전 10시에 서울에서 출발하여 목적지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훌쩍 넘었으니 거의 반나절이 걸렸다.
송도유원지에 들어가려니 입장료를 내야 한단다.
입장료는 전혀 계산하지 않았던 우리로서는 매우 당황하였다.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는 없어 각자 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모아보니 입장료를 내고서는 돌아갈 차비가 부족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창기가, “야 너희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하더니 유원지 입구로 간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아저씨와 잠시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우리 쪽에 와서 나에게서 와서, “용주야, 있는 돈 다 나에게 줘.”
나에게 받은 돈을 세어 일부를 손에 쥐고 나머지는 주머니에 집어넣고서, “너희들 나 따라와.” 한다.
우리는 영문을 모르고 창기를 따라간다.
창기는 손에 쥐고 있던 돈을 작게 접어서 입구를 지키고 있던 아저씨에게 쥐여주고 유원지 정문을 통과한다.
우리도 창기 뒤를 따라 유원지를 들어갔다.
나는 창기에게, “어떻게 된 거니?” 물으니, 이 친구는 웃으면서, “응 아저씨에게 우리 사정 이야기하고 반 가격으로 흥정했어.” 한다.
창기의 기발한 흥정으로 우리는 송도유원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무사히 서울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비상한 협상력을 가지고 있던 창기는 사회에 나와 직장생활에서 원만한 친화력과 탁월한 사회성을 발휘하여 공영방송의 부사장 자리까지 올라갔다.
이제는 젊었던 시절의 여행처럼 인터넷의 도움을 받지 않은 나 자신만을 위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여행을 하고 싶다.
신용카드 한 장과 약간의 현금을 들고서 아내와 함께 장소와 시간을 정하지 않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