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성당에서 봉사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늦게 퇴근한 아내와 함께 난 막걸리 한 병, 아내는 복분자 1잔을 마셨다.
“여보, 나 피곤하니 식탁 좀 치우세요. 난 화장 지우고 잘 터이니.”하고 아내는 화장실에 들어간다.
‘에이 낼 아침에 치우면 되지, 뭐’ 나는 식탁을 치우지 않고 양치질하고 바로 침대로 들어갔다.
아침에 일어나자 바로 식탁으로 가 아내 보기 전에 분주하게 접시와 먹다 남은 빵, 컵, 막걸리병 등을 치운다.
“툭”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 발등에 와닿는다.
아내의 안경이다.
아내는 안경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리고 찾는 경우가 간혹 있다.
처음엔 이해가 안 되었으나 안경 쓴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한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안경을 찾지 못할 때 같이 찾아주는 미덕을 갖추게 되었다.
“여보 당신 안경 어디 있는지 알아?” 나는 안경을 뒤로 감추고 웃으면서 출근 준비하고 있는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아니, 내 안경 어딨지? 당신이 가지고 있지?”
웃음을 지으면서 나에게 되묻는다.
“엉, 식탁에 있던데, 여기 있어.”, 하면서 안경을 그녀에게 전해준다.
“호호, 고마워요.”
그 웃음을 보니 30여 년 전의 일이 생각난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렸든 해 가을, 장소는 상계동 주공아파트 *단지 303호다.
당시 550만 원의 딱지값을 주고 입주한 최초의 스위트홈이다.
나는 퇴근하여 반바지를 갈아입고 소매 없는 러닝셔츠를 입고 안방의 침대에서 돌이 갓 지난 딸 미나와 놀고 있다.
당시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불러 나를 감격하게 한 미나는 피곤함에 지쳐 집에 돌아오면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가장 큰 청량제였다.
아내는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하다 미나를 키우기 위하여 사표를 냈다.
전업주부로 전향하여 혼자서 처음으로 하는 아이의 양육에 지쳐있어, 내가 퇴근 후 미나와 놀아주는 시간이 아내가 육아의 피로감에서 해방되는 시간이다.
나는 미나를 나의 배에 올려놓고 “응가 응가” 파도를 태워주고, 미나의 보드라운 배를 나의 커다란 거친 양발에 올려놓고, “부웅부웅” 하면서 비행기를 태운다.
“깔깔깔” 하면서 미나는 웃는다.
한참 놀다 보니까 ‘뭉클’함이 등에서 느껴진다.
미나를 옆에 내려놓고 뭉클함의 정체를 살펴본다.
아내의 안경이 등에 눌려 안경다리가 서로 엇갈려 있다.
이것을 제대로 펼치려 하니 안경다리 한쪽이 “뚝” 뿌려진다.
‘앗, 큰일이다! 아내에게 엄청 혼나겠다.’
미나는 “아빠빠” 하면서 나에게 다가와 안경을 빼앗으려 한다.
“안돼 엄마한테 줘야 해.”하면서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지?’ 안절부절못한다.
그때 주방에서 요리하던 아내가 “자기, 혹시 내 안경 못 봤어요?” 한다.
“안경이 안 보이네. 침대에 놓았나?” 하면서 문을 열고 안방으로 들어온다.
당황한 나는 “미나야, 자.” 안경을 미나에게 주고서 반대쪽으로 돌아눕는다.
“덜커덕” 문을 열고 아내가 들어와 “어머 미나가 엄마 안경 가지고 놀고 있네. 엄마 줘”하며 안경을 빼앗는다. “야, 미나야 너 엄마 안경다리 부러뜨리면 어떻게 해!” 하면서 소리친다.
미나는 자기에게 화내는 엄마를 잠시 쳐다보다 “앙 ~~~ 앙” 하고 울음을 터트린다.
나는 “왜 그래” 하면서 돌아 일어나니 말을 하지 못하는 미나는 나와 엄마를 번갈아 보면서 “윽으윽윽 엉엉” 억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울고 있다.
입으로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느낀다. 나는 “아기가 그럴 수도 있지 그만둬!” 하였다.
‘야, 용주 너 아빠 맞아? 비겁한 놈!’ 속으로 나에게 욕을 해댔지만 ‘후유, 위기 모면했다’라는 안도감이 더 컸다.
“여보, 며칠 전에 안경다리 부러뜨린 것은 나야. 미나랑 놀다가 모르고 등으로 눌러서 부러뜨렸어. 미안해. 우리 미나에게 내가 못 할 일 했네”
며칠 후 자책에 못 이겨 아내에게 자수하였다.
“어휴.” 아내는 어이없어하며 “호호” 웃으면서 칼 눈을 지으면서 나를 째려본다.
‘이 비겁한 아빠야!’ 하는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