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주 Oct 22. 2021

포항 해병훈련소(2)

2부. 식사 끝 30초 전

알몸바람은 하루 걸러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처음에 알몸바람을 하였을 때 느꼈던 고통과 치욕의 감정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면역이 생겨 그러한 고통과 치욕의 감정은 줄어들었다.  

처음에 엉엉 울었던 친구들도 이제는 면역이 생겨서 우는 대신에 교관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어휴, 저런 x발 새끼, 저런 새끼 사회에서 만나면 죽여버릴 거여.” 하는 제법 깡다구 진 이야기도 한다.

이러한 알몸바람은 기후에 따라 고통의 강도가 엄청나게 변화한다.

가장 힘들 때는 눈‧비와 강풍이 몰아치는 새벽에 하는 알몸바람이다.

이때의 알몸바람은 평범한 기후에 하는 것보다 고통의 강도가 몇 배 세다.

하지만 그러한 심한 고통스러운 기합에도 크게 상하지 않고 견디는 것은 젊음의 힘이었다.


우리 훈병들의 담당 교관은 두 명이었다. 한 명은 우리의 첫 번째 알몸바람을 시켰던 교관으로 ‘허 하사’이었으며 나이는 우리보다 2~3살 많았고 장기 하사로서 상당한 고참이었다. 다른 하나는 나이가 나와 같은 1956년생이었으며 내년 3월에 제대하기로 되어있는 ‘정 하사’였다. 나와 동갑내기가 제대 말년 하사였으니 정 하사는 만 17살에 지원‧입대했던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나이 때 지원 입대했으니 사회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대하는 태도가 허 하사보다 훨씬 표독하였다.

나는 공부하기 싫어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일찍이 해군 부사관으로 간 바로 위형이 생각나 두 교관에게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려 했으나 우리를 너무 힘들게 하니 그러한 생각이 없어지고 만다. 두 교관의 공통점은 체격이 작고 생긴 모습은 아주 예쁘게 생긴 모습을 갖추었으나, 목소리는 하늘을 찌를 듯 카랑카랑하며 행동은 어느 해병대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박력이 있었다. 차이점은 허 하사 보다 키가 약간 작은 정 하사는 허 하사가 가지고 있는 인간미가 전혀 없었다.

따라서 정 하사의 알몸바람의 기압은 허 하사의 그것보다 훨씬 혹독하였다.

두 교관이 번갈아 가며 당직을 섰는데, 첫 번째 알몸바람을 제외하고 거의 정 하사가 당직을 설 때 알몸바람이 이루어졌다.

허 하사의 당직 날에는 내무반에서 평화와 행복이 기운이 가득 차 있지만, 정 하사의 당직인 날은 섬뜩하고 살벌한 기운이 내무반에 감돈다.

총 4주 훈련 중 3주 차 훈련이 시작되었다.

우리에게 엄청난 비보가 들려온다.

허하사의 장기 유고(아마, 정기휴가)로 나머지 훈련 기간에는 정하사가 계속하여 당직을 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 하느님! 저희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고난을 내려주십니까?”    


“호르르르륵”

어휴 또 면도칼 같은 호루라기 소리가 나의 시커먼 무의식 세계의 가운데를 파고든다.

“신병 2중대, 알몸바람 연병장 사열대 앞 선착순 집합!”

카랑카랑한 정 하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휴, 저 x팔 새끼, 뒈지지도 않네, 저 새끼는.”

옆 전우의 투덜거리는 소리를 신호로 입고 있던 내복과 팬티를 벗고 힘차게 뛰어나가는 전우들의 뒷모습을 보니 훈련이 잘된 군견들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어제 내린 비가 연병장의 굵은 모래에 얼어붙어 있어 알몸바람에는 최악의 날씨이다.

사열대를 중심으로 4열 횡대로 정렬되어있다.

“앞줄 번호”

사열대 중앙에서 정 하사는 소리친다.

“하나, 둘, 셋, 넷, ...... 스물셋, 스물넷, 이상 끝”

앞줄의 훈병들은 큰소리로 차례로 자기의 숫자를 외치고 마지막 줄 맨 끝에 있는 훈병은 “이상 끝”을 힘차게 외친다.

“충성!”

훈병 중대장은 경례 구호와 함께 교관에게 힘차게 경례한다.

“충성”

교관은 약간은 거만한 자세로 경례에 답한다.

훈병 2중대 인원보고, 총 100명 현 인원 97명, 불참 3명, 불참내용 동초 2명, 석탄보급 1명 이상 끝.”

중대장 훈병은 정 하사에게 힘찬 목소리로 인원보고를 한다.

“오늘도 동초와 석탄보급은 땡잡았네. 어휴, x팔, 나는 그런 복조가리도 없어.”

푸념하는 훈병의 소리를 귓전에 듣고 심적으로 동의를 하지만 맞장구를 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오늘도 취침 자세로 시작하여 우로 소이동, 좌로 소이동, 공포의 올챙이 포복이 이어진다. 한참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난 후 “전원 취침 자세”의 지시가 떨어진다. “취침 자세” 훈병들은 복창한다. 저쪽 어두운 곳에서부터 “으악”하는 비명의 소리가 전달되어 나의 가까이 전파된다. 옆을 보니 정 하사는 물 양동이(bucket)에 물을 담아서 누워있는 훈병들의 가슴에 물을 뿌리며 오고 있다. “아 저 악마 같은 새끼!” “오, 하느님!” 외치고 있는 사이 나의 가슴과 하체에도 물이 쫙 달라붙는다. 오히려 물이 뿌려진 순간에는 따뜻한 느낌이 온다. 하지만 잠시 후 뿌려진 물은 차가운 온도에 영향을 받아서 얼기 시작하는지 엄청 나에게 차가운 고통을 준다.

알몸바람이 끝난 후 내무실에 들어온 훈병들은 둘씩 짝이 되어 수건을 들고서 서로의 몸에 묻은 물기를 제거해준다.

“어휴, 정** 저 새끼, 고향이 어디노? x발 새끼 저 새끼 제대 후 누가 불러내서 쥐기 뿌리자.”

경상도 훈병이 말한다.

“저 새끼, 경기도 쪽인 모양 이던디. 서울은 아녀. 마저 안양인가, 의정부라고 허던디.”

전라도 훈병이 말한다.

“야 경기도 친구들, 저 새끼 내년 3월에 제대한다고 하던데 첫 휴가 나가서 저 새끼 발라버려라.”

“야 저 새끼가 벌써 제대혀. 우리하구 나이가 같던디. 56년생이면 열 여덜에 군대 들어온 거 아녀. 저 새끼 생긴 것은 계집애처럼 곱상하고 좀만 헌디 왜 이리 독종이여, 독종은….”

“야 이 새끼들아 조용히 해. 들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 너희들!”

훈병 중대장이 입에 손을 대고 말조심하라고 인상을 쓰며 말한다.  


오전 과업 출장 전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하여 식당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 열 종대로 배식을 받는다. 손잡이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군대용 프라이팬을 오른손에  반합을 왼손으로 들고서 차례로 배식을 받는다. 프라이팬에다 밥을 받으며 부식은 밥 위에 얹어준다. 반합에 국을 받아 자리에 앉는다. 처음 배식을 받은 훈병은 마지막 배식을 받은 훈병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한다.

“식사 시작!”

중대장 훈병이 힘차게 외친다.

“잘 먹겠습니다.”

훈병들의 가장 즐거운 시간인 식사 시간에 엄청난 식욕을 과시하면서 먹는다.

적은 양은 아니지만, 운동량이 엄청나게 많은 젊은이의 식사로는 많이 부족하다.

오늘은 멀리 떨어진 수류탄 투척 훈련장으로 가는 날이기 때문에 식사 시간을 최대한 단축해야 한다는 정 하사의 지시가 있었기에 먹는 속도가 다른 때보다 빠르다.

“야, 빨리 먹어야 혀. 오늘 멀리 가야헌게 빨리 먹어야 헌다고 혔어.”

한 훈병이 주변의 전우들에게 이야기한다.

뒤에서 훈병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정 하사는 시계를 본다.

훈병들이 식사하는 중앙에 와서 정 하사는, 윗주머니에 넣어둔 호루라기를 꺼낸다. “후르륵, 식사 끝 30초 전”

“어휴, x펄 반도 못 묵었는디….”

훈병들은 눈을 크게 뜨고 밥과 반찬을 입에 쑤셔 넣느라 정신이 없다. 반합의 국을 프라이팬에 있는 밥에다 붓고서 밥과 반찬과 국을 우걱우걱 입에다 밀어 넣는다.  

 “식사 끝! 전원 일어서. 3분 후 식당 앞 집합!”

채 반도 못 먹은 밥을 들고서 식당 출구에 마련되어있는 남은 음식을 버리는 퇴식통으로 가는 도중에 밥을 우걱우걱 입에 집어넣는다.

이에 지휘봉과 발로 때리고 차는 정 하사를 뒤에서 보니 칼 들고 춤추는 무당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서 나도 밥, 반찬, 국을 입에다 밀어 넣는다.

“야, 개도 밥 묵을 때, 때리지 않는데, 절마는 와 지랄이노!”

“해병대 훈병은 개만도 못 혀.”

식당 앞에서 집합 중에 두 훈병은 투덜거렸다.

(‘전쟁 중 악조건 속의 식사를 가정하여 「식사 끝 30초 전」도 훈련의 한 과정이다.‘ 는 것은 실무 부대에서  선배의 말을 듣고 알았다.)  - 3부로 연결됨 -

작가의 이전글 포항 해병훈련소(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