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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주 Oct 23. 2021

포항 해병훈련소(3)

3부. 항명 그리고 참혹한 결과

사고가 터졌다.

훈병 중 고대법대 재학 중에 입대한 친구가 있었다. 검정고시를 봐서 고대법대를 들어간 만큼 정신력과 자존심이 매우 강한 친구였다.

오전 과업을 마치고 고통을 호소하는 이 친구의 옷을 벗겨보니 가슴과 다리의 앞부분 중 많은 부분이 심한 찰과상을 입었으며, 상처가 까맣게 변해가며 진물이 나고 있었다.

어제 새벽 알몸바람 중에 생긴 상처라고 한다.

“올챙이 포복을 하는 순간에 나의 몸을 보호하려고 요령을 피워 팔을 사용하면서 포복하다가, 순간적으로 이러고 있는 나 자신에 화가 나서, 에이 x발 그래 네가 시키는 대로 한번 해보자 하고서, 팔을 뒤로하고 원칙대로 올챙이 포복을 했더니 이러네.”

쓴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는 장 해병이 크게 보였다. 나도 저런 깡이 있지 못함이 부끄러웠다.

훈병중대장이 이 일을 정 하사에게 보고하니 얼굴빛이 달라진다. 약간은 당황하면서 장 해병을 불려 상처를 확인한 후 의무실에 입원시킬 것을 지시한다. 의무실에서 돌아온 훈병중대장은 ‘장 해병은 나머지 훈련 기간에 의무실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아야 한다.’ 라 전한다.

약간 늦게 왔더라면 동상이 걸려 치료 기간이 길어질 뻔했단다.

나머지 훈련 기간 열흘 동안 따뜻한 의무실에서 지낼 그 친구를 생각하니 너무 부럽다.

훈병들 사이에 이상한 기류가 흐른다. 이제 알몸바람하면 원칙대로 올챙이 포복을 하여 나도 의무실에 가야겠다는 비장감이 훈병들 뇌리에 흐른다.

이러한 기류를 눈치를 챘는지 정 하사는 3일 동안 알몸바람을 안 시킨다.

우리들은 ‘이젠 알몸바람은 끝났다.’ 하면서 좋아했다.

4일째 되는 날 새벽 5시.

“후르르르르륵, 신병 2중대, 알몸바람, 철모에 물 가득 채워서 사열대 앞 집합!”

“아니 철모에 물 채우란 건 머여?”

눈을 비비면서 훈병들은 생전 처음 듣는 집합 명령에 투덜거리면서 내복과 팬티를 벗고서 자기의 무장 위에 있는 철모를 집어 든다.

“물이 어디 있지? 화장실에 가야하나?”

“화장실에는 수도가 있고, 식당 앞에 저수조에 물 가득 채워져 있잖아.”

훈병들은 가까운 화장실과 약간 거리가 떨어진 식당 쪽으로 알몸에 철모를 들고서 뛰어간다. 철모에 물을 채워 사열대 앞으로 집합한 훈병은 도착과 동시에 정 하사에게 철모의 물을 점검받는다. 물이 가득 채우지 않은 훈병에게 정 하사는 지휘봉을 어깨에 사정없이 후려친다.

“다시 가득 채워와”

물을 가득 채운 철모를 들은 훈병들은 정 하사의 지시에 따라 4열 종대로 집합한다.

“철모를 머리에 이고서 행군을 시작한다.”

행군은 할 만하였다. 즐거운 마음으로 5분 정도 행군을 하였다.

“지금부터 구보한다. 구보 속도는 행군의 3배 속도다. 구보 시작!”

사열대에서 큰소리로 지시를 하는 정 하사를 보니 외계에서 우리를 잡아먹으려 보낸 괴물처럼 보인다.

우리는 물이 가득 찬 철모를 이고서 알몸으로 구보를 시작한다.

물이 철렁거려서 어깨로 떨어지니 빨리 뛸 수가 없다.

행군의 3배 속도가 어느 정도 속도인지 감이 오지도 않으니 최대한 천천히 뛴다.

이러한 모습을 본 정 하사는 사열대에서 뛰어 내려와 우리와 같이 뛴다.

지휘봉 하나 들고서 뛰는 정 하사에 맞춰 뛰니 이건 장난이 아니다.

물은 출렁거려서 어깨를 통하여 밑으로 내려와 고추를 통하여 다리까지 흐른다.

“어휴, 이런 엿 같은 경우가 있어.” 하는 불만을 하면서 헐떡이며 뛴다.

“지금부터 군가를 시작한다. 군가는 ‘해병 곤조가’. 끝나면 다시 시작한다. 군가 시작 하나 둘 셋 넷”

“흘러가는 물결 그늘아래 편지를 띄우고

흘러가는 물결 그늘아래 춤을 춥니다.

처녀 열아홉 살 아름다운 꿈속에 아이러브유

라이라이라이라이 차차차

당신만이 그리워서 키스를 하고요

당신만이 그리워서 편지를 씁니다.

오늘은 어디 가서 땡깡을 놓고

내일은 어디 가서 신세를 지나

우리는 해병대 ROKMC

헤이빠빠리빠 헤이빠빠리빠

때리고 부수고 마시고 조져라.

헤이빠빠리빠 헤이빠빠리빠

아침에는 식사 당번 저녁에는 불침번에

때때로 완전무장 연병장을 구보하니

이것이 쫄병생활 저것이 신병생활

알고도 모르는 게 쫄병인가 하노라.

우리 마누라 키가 작아 키가 작아

싹싹하기는 그만인데 (그만인데)

부엉이 눈깔을 뜰때면 (뜰때면)

자동차 헤트라이트 못당해 (못당해)

Yes OK 나는 좋아 좋아 좋아 ~

Yes OK 나는 좋아 좋아 좋아 ~

가만히 살짝이 오세요 아프지 않게요

언제나 수줍은 어여쁜 우리 마누라”

곤조가를 연달아 3번 부르면서 빠른 속도의 구보를 하니 철모의 물의 상당 부분이 밖으로 흘러나와 뛰어도 밖으로 나오지 않을 만큼의 양만 남았다.

나를 포함한 일부 훈병은 교관이 보지 못하는 틈을 타 물을 찔끔찔끔 버렸다.

일부러 버린 것을 들킨 훈병은 그 자리에서 철모에 머리를 대고 꼴아박아(원산폭격)를 당한다.


크리스마스이브다.

위문품과 훈병의 돈을 각출하여 마련한 음식이 각자의 앞에 놓여있다. 라면땅, 롯데자야, 캐러멜, 등과 같은 과자류와 빵과 소주도 눈에 띈다. 음식을 먹으면서 복도 한가운데에는 사회를 보는 훈병이 흥을 돋우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다.

“예 다음은 우리의 인기가수인 남진의 고향 목포에서 온 ‘남머시기군’이 저 푸른 초원을 부르겠습니다.”

사회의 멋들어진 소개에 맞추어 나온 전라도 훈병이 나와 수저를 꽂아놓은 소주병을 들고서 목에는 군용 목도리를 두르고 앞에 내놓은 한쪽 다리를 흔들면서 노래를 부른다.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임과 한평생 살고 싶어

봄이면 ........”

일부 훈병들은 자리의 앞 복도에 내려와 같이 춤을 춘다.

“예, 전라도에서 온 남머시기에 맞서 부산의 자랑 나훈아의 동네에서 잠시 놀다 온 나거시기군이 나와 머나먼 고향을 부르겠습니다.”

“머나먼 남쪽 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  사랑하는 부모‧형제 이 몸을 기다려”

훈병 전체가 같이 부르기 시작한다.

“천리타향 낯선 거리 헤매는 발길  한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셔도

마음은 고향 하늘을 달려갑니다.”

훈병들 대부분은 같이 큰 소리로 부르면서 눈물을 흘린다.

“천리타향 낯선 거리 헤매는 발길 한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셔도

마음은 고향 하늘을 달려갑니다.”

노래를 마친 훈병 몇들은 엉엉 울고 있고, 몇몇은 소매로 눈물을 닦고 있는가 하면, 소주잔과 소주병을 들이키면서 굳게 결의를 다지고 있는 훈병도 있다.

한참 후 훈병중대장이 말을 한다.

“야, 우리가 이렇게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내일 새벽 또 무슨 일 당할지 모르니까 자제하자. 선배들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훈련소에서는 파티 다음 날 기합이 있다고 하더라. 빠진 군기를 잡으려는 속셈인데 우리의 웬수 정 하사가 당직인 이상 우리는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다.”

“야, 중대장, 우리도 이제는 말년인데 계속 끌려다닐 수 없잖아. 딱 일주일 남았는데 계속 새벽에 알몸바람에 휘말릴 수 없잖아.”

“야 그럼 어떡해. 항명이라고 하잔 말이니?”

“우이 x팔, 내일 새벽에 알몸바람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예수 탄생일에 무슨 알몸바람이노. 알몸바람은 알몸으로 나오신 예수님에 대한 도전 아인가?”

기막힌 농담에 훈병들은 까르륵 웃는다.

“하여튼 내일 알몸바람 피하려 정 하사에게 맥주랑 통닭이랑 상납하였는데 통할지 모르겠다.”

“에이 x펄, 이제부턴 알몸바람 절대 나가지 말자. 이젠 우리도 고참 아인가!”

술기운에 힘을 얻은 훈병들은 이러한 항명제안에 동조하기 시작한다.

성탄절 새벽이다.

아무런 일도 없이 잘 지나갔다.

당직실 바닥에는 맥주병, 소주병 널브러져 있고 탁자 위에는 먹다 남은 안주 등이 어지럽게 놓여있으며 정 하사는 당직실에 없다.


26일 새벽

“‘호르르르르르륵’, 신병 2중대, 알몸바람, 철모에 물 가득, 사열대 선착순 집합!”

“어휴 x팔, 또 이건 먼고?”

경상도 훈병의 목소리를 필두로 짜증 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엄마, 저 상렬의 새끼, 아직 살아있네. 정말 환장허겠네 잉”

“어휴, 정말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해병대에 들어왔지?”

웅성거리는 와중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에 확 들어온다.

“야, 우리 나가지 말자. x발 며칠 남았다고 지랄이여, 저 x새끼.”

“안 나가도 될란가?”

“야 우린 100명이고 저 새낀 혼자다. 우리가 개기면 지 혼자 어떡하겠어. 나가지 말자.”

그제 취중에 한 약속이 효과를 발휘한다.

“야, 중대장 우리 나가지 말자.”

한 훈병이 못을 박는다.

“야, 너희들 그러면 나 혼자 책임 못 진다.”

훈병중대장은 살짝 꼬리를 내린다.

내무반의 훈병들은 행동 통일을 약속하고 나갈 생각을 안 한다.

이때 한 훈병이 밖에서 다시 들어온다. 제주도 친구이다.

훈병 중 제일 동작이 빠르고 선착순은 언제나 일등인 친구로서 키는 165~7cm인 작은 키로서 깡마른 몸집을 하고 있으며, 얼굴은 까무잡잡하고 눈은 와이셔츠 단춧구멍과 같이 작아 좀처럼 크게 뜨지 않으면 눈동자를 보기 힘이 든다.

훈병들 사이에 진정한 해병대라 하여 진해병이란 별명으로 불린다.

이 친구 혼자서 우리가 웅성거리고 있는 사이에 철모에 물을 가득 채우고 나갔다가 우리들이 안 나오니 다시 안에 들어온 것이다.

“야 너희들 안 나오고 뭐 해? 너희들 죽으려고, 미쳤나?”

“야 X새끼야, 니 혼자 살겄다고 나갔노? 우린 안 나가기로 했다.”

경상도 친구의 살기 어린 목소리다.

“어휴, 그럼 우린 큰일 나, 나 혼자라도 재게 나갈란다.”

진해병은 물 가득 채운 철모를 들고 다시  연병장으로 뛰어나간다.

3~4분 후 내무반의 연병장 쪽의 문이 덜컹 열리고 조그마한 정 하사가 들어온다. 오른손에는 사열대의 분리대로 박혀있던 쇠파이프를 들고 있다.

“야, 이 개새끼들아. 너희들 뭐 하는 짓거리야. 이 x팔 새끼들아. 그래 내가 너희들 다 쳐 죽일 거다 이 개새끼들아”

눈에 살기를 가득 안고서 쇠파이프를 닥치는 대로 휘두른다.

“빨리 옷 벗고 못 나가! 이 X새끼들!”

“아이고, 사람 죽네!” “알았어요, 아이고”

쇠파이프에 맞은 훈병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한쪽으로 가 옷을 벗고 밖으로 뛰어나가고, 파이프 춤을 추는 정 하사를 피한 훈병들과 이를 보면서 두려워하는 훈병들도 옷을 벗고 연병장으로 뛰어나간다.

10여 분 동안 광란의 파이프 춤을 추면서 연병장으로 훈병들을 다 쫓아낸 정 하사는 눈에 독기를 품고 사열대 위에서 오른손에 쇠파이프를 들고 서 있다.

“이 새끼들, 너희들이 감히 항명해. 군대에서 가장 무거운 죄가 항명이다. 항명의 대가가 무엇인지 지금부터 내가 똑똑히 알려주겠다.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지옥이 무엇인지를 똑바로 알려주겠다.”

“4열 종대로 헤쳐모여!”

“헤쳐모여”

훈병들은 바짝 기합이 든 목소리로 신속하게 움직인다.

“나를 향하여 우향우, 가운데 너 기준”

“기준”

지명받은 훈병은 큰소리로 외친다.

“체조 대형으로 벌려!”

“체조 대형 벌려!”

기준을 중심으로 훈병들은 양팔을 벌려서 널찍하게 옆으로 벌리면서 옆줄과 앞줄을 보면서 간격을 맞춘다.

“뒤로 취침”

“뒤로 취침”

취침 자세를 잡는다.

“야 아까 혼자 나왔던 놈, 나와.”

진 해병이 앞으로 나간다.

“넌 화장실과 주방에 가서 있는 양동이 전부에 물을 가득 채워서 여기다 갖다 놓고 너는 들어가서 옷을 입고 난로 옆에서 푹 쉬고 있어.”

“좌로 소이동”

“좌로 소이동”

오른편 골문에서 시작한 소이동이  왼 골문까지 계속된다.

“멈춰.”

“멈춰.”

“우로 소이동”

“우로 소이동”

우측 골문까지 소이동을 계속한다.

이렇게 골문 사이를 몇 번 오가는 사이 진 해병은 정  하사가 시키는대로 양동이에 물을 담아 사열대 앞에 세워놓고 있다. 있는 양동이 모두라고 했으니 양손으로 들고 와 사열대 앞에 2줄로 스무 개 이상이 세워져 있다.

“야, 저 새끼, 우리들을 아예 죽이려고 하나, 적당히 가져오지.”

아직 정신이 있는 친구가 늘어나는 양동이를 바라보면서 원망한다.

“야 되었다. 넌 그만 들어가서 쉬어!”

20개를 훌쩍 넘은 양동이를 본 정 하사는 흐뭇하다는 듯이 말한다.

“멈춰”

대열이 사열대 가까이 오자 정 하사는 대열을 멈춘다. 사열대 바로 뒤에 서 있는 가로등 3개가 훈병들을 다 비추고 있다.

“취침 자세”

“취침 자세”

훈병들은 하늘을 쳐다보고 누웠다. 오늘따라 하늘에 별들이 총총히 빛난다. 훈병들 입에서는 단내가 나는 하얀 입김이 수증기가 되어 피어오른다.

정 하사는 물이 가득 든 양동이를 가져와 앞에 있는 훈병들부터 가슴과 하체에 들이붓는다.

한 양동이로 다섯 명씩 붓는데 물은 거의 옆으로 새지 않고 정확하게 훈병들의 몸에 떨어진다.

“억억, 살려주세요!” “음매, 나 죽네” “오오, 살려주세요.” “아이고 아이고”

여러 가지 신음이 터져 나온다. 물벼락을 맞은 훈병들은 온몸을 움츠린 채 고추를 부여잡고 신음을 내고 있다. 하지만 처음의 알몸바람에서 나왔던 울음소리는 안 나온다.

“어휴, X팔, 올챙이포복 안 하나? 한번 제대로 올챙이포복하자!”

의무대에서 편히 쉬고 있을 장 해병을 따라 의무대로 입원하기를 바라는 훈병들의 악에 찬 소리가 들린다.

“전체 일어서!

물을 다 뿌린 정 하사는 훈병들의 의도를 알아차린 듯, 올챙이포복은 안 시킨다.

“전체 앉아”

“양손 귀 잡아. 지금부터 오리걸음으로 연병장을 돈다. 구호는 오리잡고 퀙퀙. 첫 줄부터 열두째 줄까지는 오리잡고, 열셋째 줄부터 끝줄까지는 퀙퀙. 구호 시작 하나 둘 셋 넷.”

“오리잡고”

“퀙퀙”

“오리잡고”

“퀙퀙”  

“오리잡고”

“퀙퀙”

앉은 자세 오리걸음으로 연병장을 도는 훈병들은 공포의 알몸바람이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독 오른 정 하사는 끝낼 기미를 안 보인다.

“연병장 3바퀴 더 돌고 식당으로 행군한다.”

식당 앞 저수조로 오니 날이 훤하게 밝아온다. 식사하러 온 근무병 및 원외 거주 하사관들이 식사 배식을 기다리고 있다.

“아니 정** 저 또라이 새끼, 훈병 기합을 지금 이 시간까지 시키면 어떡해.”

정하사의 선배이거나 동기생인 듯한 하사가 이야기한다.

정하사는 훈병들을 저수조 앞에 정렬시킨다.

“앞줄부터 2줄씩 저수조에 들어가서 물에다 머리 박으면 뒤에서 열까지 센다. 그 후에 나온다. 다음에 또 2줄 똑같이 계속 시행한다. 실시”

장 하사는 완전 눈이 돌아가서 실성한 것 같다.

훈병들은 정 하사의 지시대로 2줄씩 한 번에 8명씩 저수조에 들어가 물속에 머리까지 잠그면 뒤에서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한다.

실제로 머리를 물에 박고 있으면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대부분 열을 세기 전에 머리를 드는데, 이때는 정 하사의 쇠파이프가 춤을 춘다.

그렇지만 기다리고 있는 훈병들을 위하여 교대시킨다.

잠수 후 저수조 옆에서 덜덜 떨고 있는 훈병들에게 제자리 뛰기를 시킨다.

잠수가 다 끝났다.

“제자리 멈춰. 야, 이 새끼들아. 너희들은 항명을 한 죄로 오늘의 고난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알몸바람으로 나오라면 바로 나와야지, 안 나오고 버티면 그냥 넘어갈 줄 알았나. 해병대 생활을 하면서 그따위 행동은 바로 황천객으로 가야 될 행위이다. 그에 따른 대가를 죽음으로 보여주어야 하나 시간상 오늘은 이 정도로 한다. 하지만 그따위 행동이 다시 나오면 오늘의 고통보다 몇 십 배, 몇 백  배의 고통을 맛보게 될 것을 명심해라.”

정 하사는 주변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는 근무병과 기타 군인들에게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듯  외친다.

“전체 좌향좌! 지금부터 연병장 3회 구보 후 내무반으로 입실한다. 군가는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 구보 시작 하나 둘 셋 넷”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공장아가씨

하루에 한갑 두갑 낱개로 열 두갑

치마 밑에 숨겨 넣고 정문을 나서다

……………………”

구보로 1~2분 걸리는 내무반이지만 동상을 막기 위하여 연병장을 구보시킨다.  

정 하사에 대한 분노를 누르면서 내무실에 도착한 훈병들은 수건을 가지고 옆 전우와 자기를 번갈아 가며 닦아준다.

아 이러한 고난의 세월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입대한 지 3개월밖에 안 되었는데 나머지 해병대 생활을 살아서 무사히 제대할 수 있을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든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오랫동안 할 여유가 없다. 빨리 과업 준비를 하고 나가야 한다.


다음날 새벽이다.

“‘호르르르르륵’, 신병 2중대 알몸바람 사열대 선착순 집합”

정 하사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리니 훈병들은 벌떡 일어나 총알같이 팬티를 벗어 던지고 밖으로 나간다. 오늘은 불만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번호”

사열대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승리의 미소를 지으면서 서 있는 정 하사는 소리친다.

“하나, 둘, 셋, 넷 ...........구십오, 번호 끝”

“보고합니다. 총인원 100명, 현인원 96, 결석 4, 결석 사유 동침 2, 석탄보급 1, 의료실 1 이상!”

옆에 나와 있던 훈병중대장은 정 하사에게 인원보고를 한다.

“너 기준”

 앞에 있는 훈병을 기준으로 하여 4열 횡대 집합을 시킨 정 하사는 훈병들을 살펴본다.

“오늘은 집합 시간이 평상시보다 많이 빨랐다. 앞으로 많이 남은 해병대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오늘과 같은 정신과 행동으로 할 것을 명심해라. 알았나!”

“예”

기합이 바짝 든 훈병의 목소리에 정 하사는 만족한 미소를 짓는다.

“오늘은 연병장을 구보로 5바퀴만 돌고 들어가 주변 정리 및 과업 준비를 하도록 한다. 좌향좌! 구보 시작 하나 둘 셋 넷, 군가는 여군 미스 리를 반복한다. 군가 시작 하나 둘 셋 넷”

**를 홀랑 벗고 **도 벗고 해병대에 몸을 바친 여군 미스 리

……………………”   - 4부로 연결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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