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주 Oct 23. 2021

포항 해병훈련소(4)

4부. 수료식, 그리고 포항은 나의 운명

수료 1일 전이다. 내일 오전 중에 수료식을 마치면 각자 배당받은 부대로 떠난다. 훈병들 대부분이 대청도, 연평도 등 섬으로 발령이 났다.

훈병 100명 중 12명만 김포여단으로 명령이 났는데 나도 그 명령에 포함되었다.

당연히 오늘 새벽도 알몸바람이 있을 것이라 각오를 하고 잤기에 새벽에 호출되는 알몸바람은 가벼운 마음으로 응한다.

12월 말의 추위라서 그런지 다른 날보다 훨씬 많은 추위를 느낀다.

취침 자세에 이어 우로소이동 좌로소이동을 시킨 후 정 하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하늘을 봐라. 하늘에는 뭐가 보이나?”

하늘을 보니 많은 별이 오늘따라 총총히 선명하게 보인다.

“별이 보입니다.”

“한 훈병이 큰 소리로 말한다.”

“이 새끼들 정신들 덜 차렸구먼. 좌로소이동, 우로소이동, 좌로소이동.....”한참 동안 연병장에서 이리저리 돌린다.

그때 진해에서 전반기 교육을 받을 때 마지막 정신훈화 시간에 중대장의 특강이 생각났다. 이 중대장은 간부후보생 출신의 해병 중위로서 해병대치고는 약간 약해 보이는 하얀 피부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장교 훈련을 받을 때 병사나 하사들이 받았던 훈련보다 몇 배나 힘든 훈련을 받았다.”

약간 거만한 자세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엄청나게 훈련이 힘이 들었지만, 꼭 해내겠다는 해병 정신을 가지고 비록 선두에 서지는 못하였지만, 그 힘든 훈련을 이겨낸 것을 본인은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훈련 수료 전날 밤 교관이 우리들을 연병장에 누워놓고 이리 저리 소이동을 한 시간가량 시키는 동안 우리들 모두는 배 속에 있는 것들 다 토해냈다. 그런 다음 하늘을 보니 하늘에는 별들이 쏟아질 것처럼 떠 있었다. 교관은 우리에게 ‘하늘에는 뭐가 보이나?’하고 물었다. 전우들이 ‘별이 보입니다.’ 하니 ‘이 새끼들 너희들 정신 상태가 틀려먹었어.’하고 다시 연병장을 이리저리 돌린 후 다시 취침 자세를 취한 후 ‘하늘에 무엇이 보이는가?’하고 다시 물었으나 똑같은 대답이 나오자 계속 돌렸다. 한참을 돌린 후 교관은 ‘하늘에 무엇이 보이는가?’하고 또다시 물었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한 전우가 ‘다이아몬드가 보입니다.’하고 울부짖자 교관은 웃으면서 ‘좋아, 다 일어서!’ 하였다. 이것은 훈련소의 마지막 기합이었다.”

이러한 생각이 들자 나는 옆의 전우들에게 “야 다음에 물으면 막대기가 보인다고 말해야 해.”하고 말하니 옆 전우들도 “맞어, x펄. 막대기가 보인다고 해야 혀.”한다. 수료 후 바로 받을 계급인 이등병을 뜻하는 막대기가 생각이 났다.

“멈춰, 너희들 하늘을 다시 똑바로 바라봐라. 하늘에는 뭐가 보이나?”

“예, 막대기가 보입니다.”

나를 포함한 훈병 몇이 함께 큰소리로 대답하였다.


오늘은 수료식이다. 며칠 동안 연습하였던 사열식을 마치고 각자의 부대로 향하는 날이다. 훈병들은 서해의 대청도와 연평도, 김포여단으로 발령을 받았기에 포항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 용산역으로 이동 후 거기에서 각자 도서 지방과 김포로 가는 전우들은 헤어진단다.

포항 해병훈련소가 있는 오천에서 포항역까지 군용트럭을 타고 이동한다.

트럭에 탑승하기 전, 말쑥하게 다린 군복을 입고 각진 팔각모를 쓴 훈병들은 각자의 배낭을 메고 사열대 앞에 비교적 자유롭게 서 있다. 정 하사는 사열대에서 훈병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다.

“신병 여러분!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말이 경어로 바뀌었다.

“절마 갑자기 왜 말을 올리노. 이젠 우리가 제대로 사람처럼 보이는가?”

뒤에서 훈병 하나가 옆에 있는 전우에게 소리죽여 말한다.

“이제 여러분은 진정한 해병 이병으로 탄생하셨습니다.  훈련기간 동안에 여러분에게 가혹하게 대하였던 점 사과드립니다. 해병은 한 가족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비록 지금은 헤어지더라도 우리는 영원한 해병입니다.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해병입니다. 각자 자대에서 진정한 해병으로 거듭나기를 진정 바랍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정하사가 촉촉한 작별 인사를 하는 말미에 손등으로 눈을 닦는 훈병들이 보인다.

나도 콧등이 시큰거린다.

“정하사, 절마 눈물 흘린다. 와 나도 기분이 이상하다.”    


트럭을 타고 포항역으로 이동한다. 오른쪽에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 “안전제일” 구호 등이 적힌 푯말을 새워둔 포항종합제철이 보인다. 제철소의 끝 무렵에 형산강이 보인다. 형산강 다리를 건너면서 나는 나에게 다짐을 하였다. “내가 생전에 포항 쪽을 향하여 오줌도 안 눌 것이여. 어휴 이 지랄 같은 포항.”


 5년 후, 1981년 11월 말, 포항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린 나는 택시를 탄다.

“아저씨, 포항종합제철 의료실 가주세요.”

“종철 의료실요? 난 모르겠는데요.”

“이 안내서에는 포항종합제철 연수원의 아래쪽이라 되어있는데요.”

“아, 종철 연수원이요. 연수원은 알죠. 모하러 그리 가능교?”

“포항제철 신입사원 신체검사 하러 갑니다.”

포항사람들은 같은 지역에 있기에 포항을 빼고 종합제철을 줄여 종철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탄 택시는 형산강 다리를 건너가고 있었다.

다리 건너편 왼편에는 5년 전에 해병대 후반기 훈련을 마친 후 자대 배치받은 후 군용트럭을 타고 형산강 다리를 건너가기 전에 보았던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 ‘안전제일’ 등의 구호를 명시한 푯말이 나의 눈에 들어온다.

당시에 형산강 다리를 건너가는 도중에 내게 다짐하였던 결심이 생각났다.

 “포항 쪽을 바라다보면서 오줌도 누지 않을거여.”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하느님께서 1976년 12월 포항 오천 해병훈련소의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 연병장에서 내 삶의 터전으로 포항을 이미 점지하여 주신 것을…….”  

 - 포항 해병훈련소 끝 -

작가의 이전글 포항 해병훈련소(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