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프리카>
의식 한 스푼, 무의식 한 스푼.
휘휘 저으면 당신이 원하는 꿈이기를
영화, <파프리카>
2019.01.18 기록,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년 1월 28일에 <퍼펙트 블루>를 봤었는데 꼭 일 년이 지난 오늘 곤 사토시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사실 별생각 없이 본 건데 딱 일 년이라니. 곤 사토시가 남긴 장편이 5편이니까 앞으로 3년간의 1월에는 곤 사토시를 만날 수 있겠구나. 솔직히 지난 일 년 사이 태어나서 가장 밀도 높게&많이 영화를 감상했었음에도 <퍼펙트 블루>는 잊기 힘든 영화였다. 영화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충격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스토리 연출은 물론이고 이미지면에서도 문득 생각나면 오싹할 정도로. 그래서 쉽사리 다음 작품을 볼 수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 곤 사토시 영화는 일 년 정도가 쿨타임(?)인 걸까.
영화의 매력은 다양하지만 곤 사토시의 영화들을 보다 보면 분명 영화가 주는 다른 매력을 느낄 것이다. 나에게 그것은 '오싹한 무언가'였다. 현실이 전혀 아닌 영화를 보면 판타지로 넘기기 마련인데 어떤 영화는 되려 나의 현실을 침투하면 어쩌지?라고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퍼펙트 블루>를 보고 그렇게 내내 시달렸지만 사실 <파프리카>는 나에게 그 정도의 충격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단순히 스토리와 표현적 측면에서는 말이다. 그런데 '오싹함'의 측면에서는 <파프리카>도 못지않다. 더 현실적인 오싹함이랄까. 왜냐면 나는 오늘도 꿈을 꿨기 때문이다.
다룰 수 없는 것 일수록 더 알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무의식의 세계, 꿈이다. <파프리카>는 꿈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른 사람 꿈에 들어가고 싶다(내 꿈에 다른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 "스펀지밥"에서도 봤을 만큼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꿈을 조종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짜릿한 일인가. 현실에서 느끼는 감각들로 상상한 것들을 느낄 수 있다니 말이다. 심지어 '꿈'이 가지는 허상이라는 특징은 인간이 속해서 살아가기 위해 눌렀던 것들을 살살 건드린다. "어차피 꿈인데 뭐 어때." 하지만 제어할 수 없는 욕망은 화를 부르기 마련이다.
갈등과 해결이 그렇게 복잡한 영화는 아니다. 단지 곤 사토시 특유의 현실과 상상(여기서는 꿈)의 경계를 허무는 표현 때문에 영화 줄곧 '내가 보는 게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퍼펙트 블루>를 보면서도 느낀 것인데 이 두 세계의 경계를 딱 잘라 구분하는 것을 곤 사토시가 의도한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그 모호함 자체를 즐기는 영화로 받아들인다.(+능력 부족) 여하튼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아!' 하게 하는 순간들을 보여준다. 그러다 영화가 끝나 있고 그럼 나는 멍하게 크레딧을 본다. 마치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말이다.
꿈의 제어라는 질문과 시작은 너무 좋았다. <퍼펙트 블루>에서도 그렇듯 '꿈에서 깨어나 현실에 와있는 듯 하지만 그것 또한 꿈이었음'의 장면들이 좋다. +달리는 장면도!
계속해서 플래시백 하여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 조금씩 바뀌어있는 상황들도 좋다. 어떻게 저런 상상력을 지닐까 싶다. 작화 음악 그냥 미친 듯이 빠져든다. 그런데 대립(악당)의 정체가 짠! 하고 나오는 순간부터 갑자기 단순하게 흘러가는 느낌을 받았다. 오프닝에서의 그 압도감이 끝까지 갔으면 좋았을 걸.
재패니메이션은 왜?라는 비판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영웅이라도 여성이면 피해 갈 수 없는, 시각의 대상화. 팬티 보여주는 것 좀 그만하자(험한 말). 몇몇 불필요한 장면들은 아무리 10년 이상 지난 작품이라고 해도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아무 의도 없이 여성 캐릭터를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활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도 없이 활용했다는 것은 그만큼 대상화가 만연하게 문제의식이 퍼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건 분명 잘못되었음을 지금은 알고,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파프리카>의 주인공의 캐릭터는 일종의 영웅이다. 참 이상하게 파프리카의 결말 즈음에 와서 여성 영웅이 도저히 이해 안 가는 남성 캐릭터에게 사랑이자 모성을 느낀다는 것이다. 언니... 능력도 좋으면서 왜 그래... 아... 동일시가 와장창 깨지는 순간. 그렇게 예쁘고 능력 좋게 묘사되는 여성이 오타쿠의 전형적 캐릭터(단지 외형이 아니라는 것-아물 론 외형도 중요한 게 여성은 엄청 '예쁘고 젊게' 나온다)를 가진 남성을 감싸고 사랑하게 된다는 결말은 누구의 판타지인가.
아쉬움이 남는 건 좋은 영화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정말 별로인 영화는 아쉬움은커녕 어서 기억에서 사라지길 바랬을 것) 곤 사토시가 조금 더 많은 작품을 남겼다면 어땠을까 늘 궁금하다. 여하튼 내년에 다시 만나길.
(+)
꿈 얘기를 더 해보자면 나는 꿈과 꽤 가까운 사람인 것 같다. 일단 꿨던 꿈을 잘 기억하는 편이다. 그리고 가끔 꿈속에서 자기 의지로 움직였던 경험이 있다.(이걸 뭐라고 했는데 기억이 안 난다) 악몽을 꾸면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애쓰는 방법 중 애용(?)하는 것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꿈속의 나에게 끝없이 '깨어나야 해'하고 떨어지면 꿈에서 깨는데 그때의 기분이 참 묘하다.
그러는 반면 꿈이 영화처럼 상영될 때가 있다. 그때 '나'인 것 같은 인물을 내가 지켜보는 것인데 그것도 신기하다. 지켜보는 나는 전지적인 역할은 또 아니어서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꿨던 꿈에서 나왔던 소재들이 가끔 그 날 현실에서 겪었던 사람/사건/경험이 될 때가 있다. 신기하면서 묘한 경험들이다. 정말 무의식이라는 게 있다면 꿈이 무의식과의 만남이라는 게 거짓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파프리카 (Paprika, 2006)
�애니메이션, 미스터리/ 일본/ 90분
�곤 사토시
�하야시바라 메구미(파프리카/아츠코 치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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