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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17. 2023

<마더> 당연한 것에 대한 야유

2009/06/05

'전원일기'는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들의 판타지였습니다. 할머니를 모시는 가부장적인 가정, 그럼에도 그 마을은 '농촌'이 아니라 '전원'이어서 풍족했습니다. 그런 가정의 중심에 국민 엄마 '김 혜자'가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전원일기'가 많은 사람의 아쉬움을 뒤로 막을 내린 데는 비단 방송사의 수지 타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 전원을 탈출하고 픈 엄마 김 혜자의 반란이 있었음을 전해 들은 바 있습니다. 여하튼 그런 엄마 배우 김 혜자를 캐스팅해 봉준호 감독은 수십 년간 그녀가 만들어 낸 엄마라는 판타지를 깨어버렸습니다. 그 속내가 참 짓궂습니다.  


'김 혜자'가 연기한 '엄마'는 사실적이어서 충격적입니다. 수많은 예술인이 아름답게 미화하고 포장해 온 엄마의 실체를 봉준호 감독은 까발렸습니다.  부모는 자식이라는 가장 성스러운 존재를 섹스라는 저속한 행위를 통해 잉태하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추하고, 저속하며, 욕심꾸러기이고 저돌적입니다.  자식을 위해서 엄마가 어느 극단적인 일을 벌일지 관객들은 미리 예상하지 못하기에 이야기의 충격파에 숨을 멈추게 됩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신파의 저주를 면한 것입니다.  


봉 준호 작품의 가치는 이런 진실성에 있습니다. 그의 솔직함에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방송 드라마의 울타리에서 가정의 가치와 미풍양속을 무의식적으로 지지해 온 저의 허위의식이 '마더'를 보면서 심하게 공격받았습니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관계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봉 감독처럼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 가장 죽이고 싶을 정도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는 가족 관계의 솔직한 면을 표현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신선했습니다.   


연대기적으로 이 영화는 봉준호의 인장이 강하게 찍혀 있습니다. 특히 [살인의 추억]을 연상시키는 이야기의 대비는 흥미롭습니다.  [살인의 추억]에서 해결하지 못한 살인자의 정체가 [마더] 속에서 드러난 것 같습니다. 여전히 단순 무식한 공권력은 머리가 아닌 체력으로 수사를 하고, 여전히 억울한 피의자들이 경찰서에 잡혀 들어옵니다. 공권력에 대한 조롱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음울하고 어두운 영상 톤, 한쪽으로만 치우친 단순한 캐릭터들이 [살인의 추억]과 비슷하게 충돌합니다. 그 캐릭터의 충돌은 마치 우주 공간 속 진공의 상태 속에서 우아하게 표류하던 별들이 부딪힌 것과 같습니다. 슬로 댄스처럼 음울한 움직임은 캐릭터의 충돌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킵니다. 경박하지도 빠르지도 않지만 메시지의 여진은 대단합니다.  새로운 캐릭터는 진태(진 구)인데 그래서 이질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개성적인 인물임은 분명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소수자(小數者)로서의 정치의식이 담겨있습니다. 그는 주류 영화를 제작하며 상업적인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여전히 삐딱하게 보는 마이너리티 의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영화의 삐탁함은 우파에 대한 경멸도 있으나 좌파에 대한 조소도 있습니다. 권력에 대항하는 약자(弱者)가 정의라고 믿고 추구한 목표가 결국 허구였음이 밝혀졌을 때,  많은 이들은 그 허구를 솔직히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지나온 삶이 헛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엄마의 투쟁은 결국 자신이 원치 않던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허벅지에 굵은 바늘을 찌르고 망각을 택하는 엄마의 모습이 제게는 더 큰 상징으로 느껴졌습니다. 마지막 '넌 엄마 없어?'라는 대사는 이제야 상대의 입장을 실감한 탄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허구를 위해서 상대의 진실이 매장되었음을 느끼는 탄식입니다. 그래서 제게 [마더]는 단순히 모정의 깊이를 재는 영화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여전히 우리를 사로잡은 흑백 논리를  봉감독은 조롱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나의 진실이 허구일 수 있다는 속 깊은 야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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