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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17. 2023

찬란한 효주

2009-07-20

요즘 SBS에서 제일 성과가 좋은 드라마는 '찬란한 유산'입니다. 지난 토요일 시청률 39%, 일요일 42.8% 가 나왔습니다. 전 국민의 42%가 일요일 밤 [찬란한 유산]을 보고 있었다는 겁니다. '찬란한 유산'은 신데렐라 이야기지만 모든 캐릭터에게 부여된 당위성과 개연성으로 억지스럽거나 진부하지 않습니다. 못된 계모에게도 나름의 당위성이 주어진 것이 저는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역시 화제의 중심은 우리 효주 양이지요.


세상에는 못된 사람이 잘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근데 효주 양이 잘되는 걸 보면 이 말이 꼭 맞지는 않나 봅니다. 극에 나온 은성이와 효주의 캐릭터는 상당히 유사한 측면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착하고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저는 효주 양을  [일지매]의 은채역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마침 당시 효주 양의 매니저였던 L군이 저와 오랜 친분이 있었기에 캐스팅 초반부터 효주 양에게 은채역을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효주 양은 사극이 무척 싫었던가 봅니다. 첫 번째 제의를 거절하더군요. PD도 거절당하면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전 한 번 캐스팅 제의를 거절한 배우는 두 번 다시 제의를 하지 않곤 합니다. '나와는 인연이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네, 저 소심한 A형입니다.) 그런데 효주 양에게는 이상하게 포기가 안 되더군요. 그래서 세 번이나 제의를 했고 마지막 세 번째에 효주 양은 받아들였습니다.


[일지매]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극 초반 은채의 비중은 크지 않았습니다. 역할이 일지매가 본격 활동을 시작해야 커지는데 일지매의 발동이 조금 늦게 걸렸습니다. 5회인가 6회에서는 편집을 하니 대본과 달리 방송의 엔딩이 잡히면서 은채가 아예 나오지 않기도 했습니다. 나름대로 주인공인데 효주 양의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그 회 편집을 끝내고 효주 양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은채 아씨, 이번 회에 안 나올 것 같아. 엔딩 점이 바뀌어서 아무리 편집을 다시 해도 은채가 나올 수가 없네. 미안."


효주 양이 대답했습니다.


"감독님, 전 은채가 나오건 안 나오건 일지매란 드라마를 너무 좋아해요. 전 괜찮으니까 계속 수고하셔요."


아..... 효주 양의 성숙함이란. 전 은채가 살아서 나타난 줄 알았답니다. 그 후 마지막 촬영일이 되었습니다. 예산의 추사 고택에서 매화를 바라보며 우는 은채의 마지막 장면을 찍었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일지매'를 그리는 눈물이 자연스레 은채의 얼굴에 맺혔습니다.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효주 양은 글썽글썽 눈물을 흘리며 스태프들과 포옹했습니다. 그 후에 들은 얘기입니다. 효주 양은 이제는 독립해 다른 배우의 매니저가 된 L군에게 전화를 했답니다.


"L 이사님, 저를 일지매에 출연하게 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L 매니저는 지금도 저를 만나면 이 이야기를 다시 합니다. 도대체 대한민국 배우 중에 현 매니저도 아닌 전 매니저에게 전화해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배우가 어디 있냐고요. 다들 잘 되면 자기 탓, 못되면 남 탓하는 것이 업계의 현실인데요. L 매니저는 효주 양의 그 전화가 자신의 매니저 생활에 가장 큰 보람이었다고 합니다.


[찬란한 유산]이 잘 되어서 너무 좋습니다. 똑똑하고 성실한 진 혁 감독이 빛을 봐서 좋고, 우리 은채 여신이  돋보여서 좋습니다. 착하고 성실하고 예의 바른 효주 양이 더 큰 별이 되기를 바랍니다. 쫑파티 때 술 한잔 해야겠습니다.



이 글을 쓴 것이 벌써 14년이 지났군요. 한효주씨의 더 많은 작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2023/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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