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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06. 2023

<관상>2013

2013/09/24



단종의 폐위와 수양대군의 집권을 이뤄낸 쿠데타 계유정난은 사건의 비극성과 목숨을 건 캐릭터들의 충돌로 지금까지 많은 드라마, 영화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어린 왕의 안타까운 죽음과 세조의 뒤늦은 후회와 절명으로 인해 호사가들의 입담으로 계속 전승되었을 것입니다. 


'한재림' 감독의 영화 <관상>은 이렇듯 계유정난의 이면을 둘러싼 이야기입니다. 역사의 의미와 극성이 대단한 만큼, '관상'의 이야기가 힘 있고 역동적인 것은 당연합니다. 그 추진력으로 영화를 보는 두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송강호, 이정재, 조정석, 이종석 등의 연기가 이야기와 잘 조화를 이뤄 꽃을 피웠습니다. 그런데 송강호가 분한 관상가 김내경의 캐릭터가 허술한 것은 이 영화의 생동감을 떨어뜨렸습니다. 굉장히 공을 들여 이야기의 결을 세웠지만 어쩐지 자연스럽지 못해 잘 만들어진 조화(造花)를 보는 듯한 어색함이 있었습니다.


모든 드라마나 영화는 초반에 관객에게 극의 규칙 또는 논리를 제시합니다. 세계관이라고도 하죠.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가 나오는 시대라면 미래에서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시간 여행을 할 때는 벌거벗고 이동해야 합니다. 그들의 미래는 기계들이 지배하고, '터미네이터'라는 포기하지도 않고 지치지도 않는 살인 기계가 인간을 살육한다는 이야기의 규칙을 관객에게 내세우는 것이죠. 그 후의 이야기는 그 규칙 안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관상]에서 내세운 영화의 가장 큰 규칙은 바로 내경이라는 캐릭터입니다. 그는 관상을 보고 손님의 직업과 신분을 맞출 정도의 경지를 가진 술사입니다. 그런 관상가로 재능은 영화 후반의 역사의 격랑 속에서 슬며시 사라집니다. 단종이 즉위할 즈음에 영화에는 '관상을 볼 줄 아는 '관상가'로서의 내경의 존재는 사라집니다. 충성과 부정(父情) 사이에서 방황하는 내경이 남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장면은 내경이 가짜 수양대군을 만날 때입니다. 연홍(김혜수)의 거짓말을 간파한 내경이, 관객이 보기에도 가짜로 보이는 수양대군을 오판하는 장면은 영화의 규칙을 무시한 대표적인 장면입니다. 이 약점은 배우들의 연기와 이야기의 힘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아쉽게 남았습니다.


배우의 연기로 볼때는 이정재가 더욱 돋보였습니다. 이정재는 이제 그는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어울리는 캐릭터를 찾은 것으로 보입니다. 겉으로는 말끔하지만, 속으로는 양아치의 피가 끓는 연기는 최근 이정재의 성공한 필모그래피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습입니다. 그의 선구안에 박수를 보냅니다.


[대풍수]를 연출한 저로서는, [관상]의 이야기 진행 방식이 시사하는 바가 더욱 컸습니다. 이런 흐름이 이야기가 아마 시청자가 바라는 이야기였을 것이라고  다시 한 번 반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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