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에 쓴 글을 고쳐 씁니다.
드라마 연출은 배우와 스태프에게 촬영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구령을 합니다. 보통 많은 감독이 '스탠바이, 그리고 '큐'라는 신호를 외칩니다. 그런데 사실 Cue라는 단어는 '신호'라는 뜻이기에 연출이 현장에서 'Cue'라고 외치면 '신호'라고 외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해외 촬영을 하면 외국인 스태프와 협업을 해야 하는데 'Cue'라는 구령은 혼란을 가져올 수 있기도 합니다.
저는 '액션'이란 구령을 씁니다. 현장에서 스태프와 배우가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있다 싶으면, 제 첫 구령은 보통 '카메라?'입니다. 촬영 감독이 준비가 되었으면 보통 '롤링(rolling)', 또는 '스타트(start)'라고 외치며 카메라의 녹화 장치가 구동되었음을 알려줍니다. 그럼 저는 '하나, 둘' 하고 숫자를 센 후에 '액션'을 외칩니다.
초보 감독이 많이 하는 실수가 카메라가 구동되지 않았는데, '액션'을 외치는 일입니다. 감독 마음이 급하다고 해서 스태프들의 준비상황을 확인하지 않은 것이죠. 이렇게 하면 가끔 분명히 촬영했는데, 그 커트가 녹화되지 않는 사고가 발생하곤 합니다. 사실은 동시녹음 기사에게도 '오디오'하고 외치면 녹음을 시작했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이 과정은 '카메라'에게 묻는 과정을 통해 함께 묻는다 치고 생략하곤 합니다.
드라마 촬영은 수천, 수만 컷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드라마 촬영 도중 일일이 '액션'이란 두 글자를 외치는 일은 어느 순간 목이 쉬고 피곤한 일이 되기도 합니다. '큐'보다 한 글자 많은 것이 부담스러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임권택 감독님 같은 분은 이러한 신호마저 조감독에게 시키고 오직 모니터에만 집중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의 영화 촬영 장면이 방송된 것을 보았습니다. 북에서는 감독이 '시작'이라는 순우리말로 신호를 주었습니다. 우리말을 고집하는(?) 북한다운 발상이란 생각했습니다. 저는 '액션'이란 두 글자로 계속 외칠 예정입니다. 이것이 저보다 훨씬 더 고생하는 배우와 스태프의 노고에 동참해 보자는 저의 마음가짐입니다.
한 장면을 마쳤을 때는 주로 '컷(Cut)'이라고 외칩니다. 아마도 필름으로 촬영하던 시절의 영향이 남았는지, '스톱(Stop)'이라고 하지 않고, '컷'이라고 합니다. '컷'은 거의 전 세계 공통인 것 같습니다. 저는 성격이 급해서 '컷'을 좀 빨리 하는 경향이 있다고, 편집기사에게 혼이 나곤 했습니다. 배우의 감정이 한참 무르익어 가는데 '컷'을 외쳐서 더 쓸 수 있는 장면을 짧게 만든다고 말입니다. 일지매 감독판 편집을 하면서 감정을 더 주고 싶어 커트의 길이를 늘이고 싶은데, 제가 '컷'을 빨리 한 장면이 많이 나왔습니다. 뼈저리게 후회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컷'하고 싶으면 마음속으로 '하나, 둘, 세, 넷'하고 숫자를 열 개까지 세고 있습니다. 그 후론 샷의 뒷부분이 짧다고 혼난 적은 없습니다. 촬영 감독에게도 미리 말해두어서 제가 '컷'을 빨리 했다 싶으면 카메라를 끄지 말고, 좀 더 돌려달라고 부탁합니다.
드라마 연출을 하면서 제일 마음이 벅찬 순간은 첫 촬영에서 첫 커트의 '액션'을 외칠 때입니다. 가장 아쉬울 때는 마지막 촬영에서 '컷'을 외칠 때입니다. 모든 일이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데, 드라마 촬영은 처음과 끝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우리 인생이나 경력은 시작은 있지만, 언제가 끝인지 모르는데 말이죠. 이번 삶과 연출 경력의 끝이 아쉽지 않도록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북한 연출자는 '컷'을 뭐라고 우리말로 외칠까요?
그들은 '그쳐'라고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