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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미국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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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Sep 22. 2023

미국일기 1

2004년 7월 3일 쓴 글

드디어 인터넷과 케이블 TV가 연결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안되니 세상이 온통 깜깜한 느낌이었습니다.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더군요. 이제야 저의 집도 문명의 혜택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꼬뮨 회원들께서는 극본 공모 하시느라 시달리셨을 것이고, 또 한층 달궈진 날씨의 한 여름을 보내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곳도 만만치 않게 덥습니다. 햇볕은 따갑고 후텁지근해 한국의 여름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이 참 넓은 곳이란 생각이 듭니다. 서부인 캘리포니아에서 몇 달 생활한 적은 있었으나, 동부인 뉴저지에 터를 잡고 보니, 서부와는 확연히 다른 인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서부는 상당히 낙관적이고 편안하며 느긋합니다. 사람들은 서로 눈을 쳐다보며 'HI'를 연발합니다. 교통신호를 잘 지키고, 기다릴 줄 아는 미덕이 있습니다. 대화의 속도도 상당히 느립니다. 동부인 이곳은 서로 제 살길에 바쁜지 서로 눈조차 마주치길 꺼려합니다. 이곳에 와서 'Stop' 신호를 지키는 미국인은 거의 보지 못했고, 조금만 늦어지면 뒤에서 크랙션 소리가 연방 들립니다. 말이 빨라서 헛갈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서울에서 사는 것과 비슷한 도심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어느 곳을 보고 미국을 잘 안다고 자랑하는 것은 성급한 일일 수 있겠단 생각을 합니다. 


그 사이에 한국에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곳은 오히려 이라크 전쟁에 대해 논쟁이 덜한 것 같습니다. 전쟁을 자주 치러본 국민의 만성적인 반응이랄까요? 한국에서 취급하는 뉴스의 2/3 정도만 다뤄집니다. 미 해병대원이 얼마 전 살해되었는데도 그리 관심도가 뜨겁지는 않더군요. 오히려 200만 불을 넘어간 미국판 로또 복권의 열풍은 거세다고 할까요?


미국으로 살림을 옮기는 일은 굉장히 복잡한 일이었습니다. 아주 큰 이삿짐들은 서울에 계신 친지의 집에 맡겨야 하고, 살면서 필요한 물건은 미국으로 가져와야 하고, 그 사이에 많은 것들을 버려야 하고, 또 새로운 것을(사실은 한국에서 다 있던 것들을) 다시 사야 합니다. 웬만한 봉급생활자의 한 달 급여만큼 집세를 내야 하니, 이곳에 머무는 몇 년 간은 저축을 포기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준비해 일부러 자동차 등은 한국에서 버릴 수 있게 운영해 왔지만, 그래도 비경제적인 행위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이러한 소비가 제 인생에서 낭비가 아니라 건전한 투자가 될지는 저 또한 의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삼엄한 감시가 필요합니다. 나중에 미국에 잘 갔다 왔다고 자랑할 수 있게 저에게 계속 채찍을 휘둘러 주세요.(200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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