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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Oct 28. 2023

미국일기 14

영어는 나의 적

저도 대한민국에서 자랐으니 중학교부터 십 년 넘게 영어 공교육을 받았습니다. 대학 졸업할 무렵에는 영어 사교육 기관에 많이 드나들었습니다. 그 결과 영어 쓰는 외국인을 만나면 대충은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메일로 간단한 영어 편지를 보낼 정도의 실력은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공부하면 내심 제 영어 실력에 지대한 발전이 있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래도 1년 이상 있을 것인데 제가 안 늘고 배겨?”


이것이 솔직한 제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1년 정도 지냈더니 저의 희망은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단순히 영어 사용 지역에 1년 정도 머문다고 영어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저와 같은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 착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유학 생활이 오래되면 당연히 영어가 늘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영어로 공부하는 것’과 ‘영어를 공부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수업 시간의 대부분은 교수의 말을 들으면서 지나갑니다. 말을 듣는 것이지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간혹 세미나를 하더라도 외국인에, 영어에 대한 불안함으로 최소의 발언을 하기 때문에, 학교 수업은 제 영어실력의 발전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강의실에서 교수가 하는 말은 가장 듣기 쉬운 영어입니다. 수업에서 다뤄지는 주요 어휘를 대충은 알고 있고 미리 교과서를 읽고 가기에 문맥을 짐작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생전 처음 보는 외국인이 다가와 뜬금없이 뭘 물어볼 때 막막한 경우가 많습니다.


둘째, 서양 친구를 사귀면 영어가 늘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전혀 사귀지 않는 것보다야 당연히 도움이 되겠지만 이것도 사실 영어가 느는데 기여하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인과 친해지면 제 영어실력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제 말을 이해하는 실력이 더 늘기 때문입니다. 친구는 우리가 더듬거릴 때 기다려주고, 그리고 대충 알아들어 줍니다. 여기에 평소 쓰는 말만 자꾸 반복하게 되어 그렇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한국말 잘 못하는 서양인 만나면 우리가 어찌 대해주는지 생각해 보면 이 상황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유학을 가거나 미국에서 오래 산다고 영어가 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미국에 오래 살아도 한국인이 많이 사는 공동체에서 머문다면 영어를 전혀 쓰지 않고 살 수도 있습니다. 


영어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영어를 공부’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 공부에 왕도는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언어를 새로 배우듯 자주 쓰는 문장을 머리가 외우고, 외치고 실생활에서 써야 합니다. 그렇게 익숙한 문장의 수를 점점 늘려 나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글쓰기를 위해서는 적당한 영자신문이나 잡지를 찾아서 매일 읽고, 좋은 문장을 따라 써 봐야 합니다. 이러면 영어로 얘기할 소재도 많아지고 고급 문장을 구사한 영어 작문 실력도 늘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에 유학 가거나 장기간 생활하시는 분에게 위와 같은 훈련을 꾸준히 하실 것을 권합니다. 완전히 몸에 베인 문장이 있어야 원어민을 만나도 입에서 절로 튀어나옵니다. 그럼에도  ‘a’와 ‘’the’ 같은 관사는 해결되지 않는 숙제입니다. 하지만 한국에 있더라도 위의 훈련을 계속한다면 어느 날 영어에 자유로워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학연수는 돈 낭비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행스러운 건 영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욱 많다는 것입니다. 이제 영어는 한 나라의 언어라기보다는 전 세계 인이 구사하는 글로벌 언어가 되었습니다. 영어 원어민 사이에 영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지 못해도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네가 알아서 새겨 들어라'하는 마인드로 자신 있게 영어를 쓰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과 한국어 대화를 할 때 우리가 어떤 자세로 그들을 대하는지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실 겁니다.


그런데 진짜 외국어 실력을 늘리는 비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외국인과 결혼을 하든지 연애를 하는 것입니다. 24시간 부대끼면 정말 영어 실력이 늘지 않을 수 없나 봅니다. 제 주변에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하는 사람은 대부분 외국인과의 애정사가 있더군요. 또 한 가지 비법은 그곳의 문화에 흠뻑 빠지는 것입니다. 어릴 적부터 영어 소설이나 드라마를 좋아한다거나, 일본 문화에 덕후 수준으로 빠진 분이 그 나라 말을 수월하게 구사하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저는 많은 시간과 돈을 영어를 잘하고자 노력했지만 정말로 그곳의 문화를 좋아하거나 연애를 해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영어를 제2외국어로 쓰는 외국인의 수준을 벗어나지는 못했기에 아직도 '영어는 저의 적'입니다.



2005년 5월에 쓴 글을 2023년 10월 28일에 고쳐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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