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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미국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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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Oct 11. 2023

미국일기 13

김치는 폭탄이다. 2005년 4월에 쓴 글

타국 생활을 하니 더욱 김치가 간절해집니다. 식사할 때마다 당연한 듯 식탁 한 구석에 놓여 있는 게 김치입니다. 살아온 동안 언제 어디서나 자연스럽게 먹은 것이 김치입니다. 식사 때 본 척 만 척 홀대한 적도 있는데, 지금은 정말 '김치 없인 못살아'를 외치며 하루하루 보내고 있습니다. 


엊저녁 김치가 떨어져서 한인마켓에 장을 보러 갔습니다. 최근 맛을 알게 된 굴김치 한통을 구입해 익힌다고 부엌에 놓고 잠을 잤습니다. 새벽에 밀린 숙제를 하려 일어났는데, 부엌에서 '피 ~ 쉬이' 하는 소리와 비닐봉지가 부스럭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쥐 나 고양이 같은 동물이 부엌에  들어온 것으로 알고, 일전의 각오로 부엌을 봉쇄했습니다. 그러나, 긴장감의 끝에 알아낸 진실은 밤새 발효된 김치가 밀봉된 유리병 속에서 가스를 만들어내 압력을 높이며 병뚜껑을 밀어내는 소리였습니다. 그 덕에 이미 김치 국물이 바닥에 흐르고 있었습니다. 조심스럽게 병뚜껑을 열자 약 10cm가량 김치가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 김치를 결사적으로 받아내 별도의 용기에 보관했더니 동이 트기 시작합니다. 


과거 김치를 구하기 힘들 던 시절 한인 학생에게 있었던 웃지 못할 일을 들었습니다. 미국 동부에 살던 한 한인 학생의 부모가 서부에서 공부하는 자식을 보러 가는 길에 김치를 담아 비행기를 탔습니다. 더운 날씨에 발효가 된 김치는 어느 순간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했습니다. '뻥'하는 소리에 기내가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김치가 식품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인데 학생의 부모는 얼마나 비행기 안에서 당황스러웠겠습니까. 미국인 승무원들은 폭탄이 터진 것으로 생각했겠지요. 좁은 공간에서 퍼진 냄새야 오죽했겠습니까?


지금은 한국음식을 먹어보지 않은 미국인도 없을 정도이고, 김치와 두부, 비빔밥은 건강식으로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 한국인들은 음식 때문에 수모를 많이 겪었다고 합니다. 70년대에 미국에 연수를 다녀오신 제 아버지 말씀으로는 된장을 대변으로 오해할까 싶어 함부로 담그지도 보관하지도 못했답니다. 이제 그런 시절은 다 지났고, 김치를 자국의 음식인 것처럼 홍보하는 나라도 있다고 합니다. 한국인의 음식 문화가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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