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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Oct 31. 2023

어떤 한국인의 위선

2005-07-02

예전에 사기 피해자가 TV 뉴스에서 인터뷰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 보도는 다단계 회원 판매 사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580여만 원을 내고 다단계 조직에 가입한 회원은, 자신도 조직원을 많이 모아야 합니다. 모집한 조직원의 숫자만큼 금전적 형태로 불어나기에 아파트 입주권을 쉽게 받을 수 있다는 사기였습니다. 다음은 그 피해자 중 한 분이 카메라를 등지고 한 말씀입니다.    


"나는 설령 피해를 봤다 하더라도 다른 피해자는 안 나와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 잠이 안 옵니다" 


'내 금전적인 손해는 괜찮다. 다른 피해자가 있다니 안 되는 일이다. 다른 피해자의 고통을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란 요지의 좋은 말씀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피해자가 진심을 얘기하고 있다고 믿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진심은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그 돈이 내가 어떻게 모은 돈인데, 이렇게 사기를 당하다니... 다시 그 돈을 못 찾을 생각을 하니 분하고 억울해서 잠이 오질 않는다"


위의 문장이 제가 유추해 본 그분의 진심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카메라 앞이어서인지 솔직하지 못한 인터뷰를 한 것 같습니다. 그것도 카메라를 등지고 뒤통수만 보이고서요. 이렇게 한국인은 돈에 집착하거나 추구하는 자신의 욕망을 숨기려고 하는 위선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돈을 버는 것이 인생을 윤택하게 만들고 삶의 다양한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굉장히 물질적인 삶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돈을 잘 벌고 있느냐로 인생의 성공여부를 저울질합니다. 하지만 말과 행동은 돈과 초연하게 사는 듯하게 비치는 예가 많습니다. 이러한 이중성 때문에 오히려 분쟁이 생기고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경우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1. 어떤 강사가 어디에 특강을 나가는데 강의료 얘기를 분명히 하질 않습니다. 고고한 강사가 부끄럽게 돈 얘기를 하기도 뭐 하고 해서 '알아서 잘 주겠지'하는 막연한 심정으로 강의를 하고, 강의가 끝난 후 열어본 봉투의 허술함에 열받을 수도 있습니다. 


2. 돈을 빌려간, 그것도 잔 돈푼을 빌려간 친구에게 갚으란 얘기하기 쉽지가 않습니다. 사실 빌려준 제 마음속으로는 그 잔돈푼도 굉장히 아쉽습니다. 


3. 뭔가 불안해 보증을 서주기 굉장히 싫은데도 체면과 의리를 생각해서 섰다가 큰 피해를 입습니다.


돈 얘기를 정확하고 당당하게 꺼내지 못해서 속으로 응어리를 앓는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인터뷰의 시민처럼, 어느 정도는 우리의 물질적 욕망에 대해 위선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위선이 음험한 뒷거래를 만들어내는 자양분 노릇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면전에서는 돈 얘기를 하지 않지만, 남이 안보는 뒤에서는 약간 지저분해도 스스로 용납이 되는 것이죠. 그러면 '돈'에 대해서 솔직한 문화를 만들면 우리의 삶이 좀 나아질까요? 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욕망에 대해 인정하고, 그 욕망의 추구에 대해 공정한 룰을 만든다면 그것이 사회가 깨끗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사회는 깨끗해지지 않더라도 돈 갚지 않는 친구 때문에 끙끙거리고 잠 못 이루는 밤은 없어지겠죠. 


p.s:피해를 당하신 분께는 괜히 꼬투리를 잡아 시비를 건듯 합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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