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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Nov 17. 2023

두 번씩 산 음반

2006년 5월에 쓴 글

바보 같은 일이지만 한 음반을 두 번씩 산 적이 있습니다. 그 옛날 외국 음악을 들을 길이 없어 해적판으로 듣다가 국내에 정식 라이선스 LP나 CD가 발매된 후 새로 구입한 앨범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CD를 두 번씩 산 것입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지만 두 번씩 산 음반을 정리해 봐야겠습니다.


캐나다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Klaatu의 데뷔 앨범과 2집 Hope의 합본인 이 CD를 두 번이나 샀습니다. 라디오에서 이들의 음악을 듣고, 음반을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해 청계천을 뒤져 겨우 해적반을 구했습니다. 지글거리는 잡음과 함께 귀가 닳도록 [Calling Occupants of Interplanetary Craft]를 들었습니다. 정작 CD를 구입하고는 처음 들었을 때의 신비감이 사라졌는지 CD를 이미 구입했다는 사실을 잊고 또 한 번 주문했습니다. 비틀스 멤버들이 모여 만들어낸 프로젝트 앨범이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그 소문은 헛소문이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세월이 지나 들어도 여전히 세련된 음악이지만 이제는 그렇게 자주 듣지는 않습니다. 너무 그리워하다 막상 소유하고 보니 신비감이 훼손되어서일까? (참고로 Calling Occupants ~는 카펜터스의 카렌의 목소리로 아름답게 리메이크한 버전도 있습니다. 정작 오리지널을 구하지 못했을 때는 카펜터스 버전도 열심히 들었습니다.)



Duke Jordan의 [Flight to Denmark]는 사실 세 번이나 구입했습니다. 97년 이 CD를 틀어놓고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당한 혼란의 와중에 CD를 잃어버렵습니다. 그 뒤에 다시 구했지만, 또 한 장을 더 구입한 것을 이사 후에 정리하면서 발견했습니다. 두 장을 가지고 있어도 아깝지 않은 앨범이지만 이제는 너무 대중적인 음반이 되어서 좀 매력을 잃었습니다. 그래도 가끔씩 들어보면 73년도 앨범치고 녹음 상태가 좋아 흐뭇한 마음입니다.



동호인들이 흔히 [팽만식] 형이라 부르는 Pat Metheny의 삼인조 앨범입니다. 겉포장의 중간 아래에 동그랗게 구멍이 뚫려있고, 그 아래로 플라스틱 재킷의 무지개가 보이는 재치 넘치는 디자인 때문에 항상 눈길이 가던 CD입니다. 팻 메쓰니의 음악에 심취된 사람으로서는 자주 듣지 못하는 정통 재즈 풍의 앨범입니다. 그의 팬으로서 그의 기타에서 '부 앙'하고 품어 나오는 그 만의 소리를 기대하는 면이 있어서 정말 괜히 혼자 아쉽게 느껴진 음반이었습니다. Pat에 대한 불경함을 속죄하려는 잠재의식이 발동했는지 또다시 한 장을 더 구입했고 첫 트랙 [Go get it]을 듣는 순간 나의 실수를 알아차렸습니다. 세월이 흘러 다시 들어보니 괜찮습니다. 듣는 사람이 나이가 들고 마음이 변하니, 음악이 더욱 좋게 들립니다.


여러 번 구입한 앨범 중 최고는 Pink Floyd의 [The Wall]입니다. 그 옛날 1980년대에 이 음반은 전면 금지곡이었습니다. 몰래 이 음반을 구해 듣던 시절에는 음질 좋은 해적판을 찾아 두어 번씩 돈을 날렸습니다.  1987년의 민주화 이후 금지곡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CD로 발매되자마자 냉큼 라이선스 CD를 사들였습니다. 그 후에 일본에서 거장 알란 파커 감독이 이 음반을 토대로 만든 영화 [The Wall]의 비디오를 샀으며, DVD가 발매되자 얼른 DVD를 구입했습니다. 처음 구입한 CD는 커팅 과정의 실수로 첫 번 CD의 마지막 곡이 여음을 잘라먹으며 발매되었습니다. 그게 아쉬워 다시 한번 구입해 두 개가 되었습니다. 최근 Remastered 앨범이 나와 다시 마음이 동하는 중입니다. 아마 금지된 것을 소망하던 저의 심리가 이 앨범에 대한 그리움을 그리도 자극했나 봅니다. 금지가 해제되었기에 이제는 매력이 떨어졌나 봅니다. 요즘은 라이선스 버전 L 'The Wall'의 재킷을 '벽'에 붙여 놓았을 뿐입니다.


이렇게 모아 놓고 보니 공통점이 발견되었습니다. 항상 가지고 싶어 하던 음반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리워했기에 소유하고 나니 정작 흥미를 잃은 것 같습니다. 항상 내 주위에 있지만, 존재감은 뚜렷하지 않은 '가족' 같은 음악이기에 두 번씩 사게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이 앨범을 어느 밤 CD장을 뒤적이다가 찾지 못하면 또다시 한 장 더 주문할지도 모릅니다.



모든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듣기 시작한 이즈음. 정말 '내가 어릴 적에 말이야'란 투정과 같은 글입니다. 이 음악은 다시 다 찾아 듣고 싶습니다. (2023년 1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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