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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16. 2023

재수 없던 날

2011/01/16

엊저녁부터 처는 일요일에는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수선을 떨었습니다. 놀이동산에 가는데, 그곳은 2부제로 운영할 정도로 사람이 많이 온다며 일찍 가야 본전을 뽑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홉 시 반부터 두 시 반까지의 1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온 가족은 주중보다 일찍 일어났습니다. 집을 나설 때 처의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되어 있던 것이 이날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날 벌어질 소동은 이렇게 사소한 어긋남으로 불이 붙었고 불행의 연기가 풀풀 나는 것도 모르고 가족은 자가용을 타고 송파로 향했습니다.


놀이동산 표 값을 아낄 겸, 남편은 그 시간 동안 영화 한 편을 볼 자유를 얻었습니다. 헤어지면서 두시 사십 분으로 만날 시간은 정했지만, 장소를 정하지 않은 것은 또 다른 화근이었습니다. 정확히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남편은 그 시간에 가족을 내려준 곳으로 오리라 생각했습니다. 남편은 근처의 영화관에서 최근의 화제작을 보았습니다. 영화가 끝나고도 시간이 남아 커피숍에 들어가 차 한 잔을 마시며 독서도 즐겼습니다. 오후 두 시가 되어 차를 꺼내는 순간 남편은 휴대폰이 수중에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 달음에 영화관과 커피숍으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불과 오 분이 지나지 않았는데 휴대폰은 없어졌습니다. 습득물로 들어온 것도 없다고 합니다. 전화를 빌려 자기 번호를 걸어보지만 받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제 식구를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입니다. 일단 휴대폰은 포기하고 놀이동산으로 향했습니다.


두 시 이십 분. 놀이동산 주변 도로는 차들로 꽉 잠겨 있습니다. 두 시 삼십 분, 1, 2부 교체시간에 들어오는 손님과 나가는 손님의 차들이 엉켜 도무지 속도가 나질 않습니다. 차선을 넘나들고 몇 번 신호를 위반하며 내려준 장소에 가보지만 가족은 없었습니다. 주차장 들어가기도 어려워 그 장소를 한 번 돌아보려 지나치지만, 그건 더 큰 실수였습니다. 처가 삿대질을 하며 화를 낼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거의 삼십 분이 지나서야 놀이동산 주차장에 차를 넣었습니다. 주변의 전화를 빌려 걸어보지만, 처의 휴대폰은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 장소에 가족이 없었기에 혹시 추위를 피해 식사라도 할까 싶어 주위의 식당을 뒤집니다.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할 대형 장난감 가게, 처가 들를만한 옷 가게까지 들러봅니다. 모든 시도가 실패로 끝나고 집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공중전화가 눈에 보입니다. 우리 주변에 공중전화가 이리도 많이 사라졌는지 오늘에야 실감했습니다.


다시 한번 제 전화번호를 눌러보았습니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찾으러 가겠다고 하니 신당동의 중앙시장 근처랍니다. 혹시나 하고 시골에 계신 부모님의 전화번호를 간신히 기억해 냈습니다. '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하고 큰 소리를 내시는 부모님의 목소리에 제 전화 분실은 여러 사람에게 걱정스러운 일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집을 향했다는 소식을 안 것보다 아내가 사정을 알게 되어, 남편의 연락두절을 이해시켰음이 더 마음을 편하게 만듭니다.


신당동 중앙시장에 가니 주차할 곳은 보이지 않는데 사방에 감시 카메라는 많습니다. 게다가 휴대폰을 보관한 한 가게는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주차장을 찾다가 근처 새로 지어진 주상복합건물로 들어갔습니다. 주차하고 올라오니 이번에는 밖으로 나가는 출구를 찾을 수 없습니다. 지하 1층에서 지상 2층까지 출구란 출구는 다 확인하지만 모두 쇠사슬로 잠겨 있습니다. '이놈의 건물은 경비도 없나?'하고 열이 받을 대로 받았을 때 겨우 출구를 찾았습니다.


묻고 물어서 약속한 가게에 가 휴대폰을 찾았습니다. 발견한 경위를 물으니 가게 주인이 주운 게 아니랍니다. 말을 제대로 못 하는 어떤 사람이 제 휴대폰을 들고 횡설수설을 하더랍니다. 간신이 습득물이라는 것을 알고 찾아주겠다며 휴대폰을 맡아놓았답니다. 그 횡설수설한 사람이 왜 송파 근처에서 신당동까지 갔는지, 전화는 왜 받지 않았는지는 아직도 의문입니다. 전화를 찾아 고마울 뿐이었고, 그 가게 주인에게 고맙다고 지갑에 있던 몇만 원을 건네주었습니다.


집에 들어올 무렵 이미 날은 아주  어두워졌습니다. 현관을 열고 들어와 아내의 악다구니를 기대했는데, 웬걸 아내가 울음을 터뜨립니다. 너무 연락이 안 되고, 휴대폰이 중앙 시장에서 발견되자, 혹시 제가 납치되었거나 교통사고라도 난 줄 알았답니다. 남편에게는 몇 시간 동안 휴대폰을 잃어버린 것이지만, 가족은 아빠를 잃어버린 시간이었나 봅니다. 나머지 가족은 자장면과 치킨으로 이미 식사를 했습니다만, 아내는 남편에게만 고기를 구워줍니다. 핸드폰을 잃어버린 재수 없던 날, 남편은 아내에게서 오랜만에 독상을 받아봅니다. 


올겨울 가장 추웠던 날, 집안은 여전히 따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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