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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16. 2023

<파괴된 사나이>

2012/12/02

 [파괴된 사나이]는 관객의 흥미를 끌 여러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김명민'과 '엄기준'이란 파괴력이 큰 배우를 캐스팅했습니다. 한 번 들으면 잊기 힘든 매력적인 제목을 지었었습니다. 뻔한지만, 그 결말이 실현되길 바라는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면 관객은 자신의 기대가 실현되지 못했음을 느낍니다. 왜 이런 설정을 가지고도 영화는 관객에게 실망을 안겨주었을까요?  관객의 기대를 배반한 몇 가지 요소가 좋은 연기, 안정된 연출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생명을 단축시켰습니다.

[파괴된 사나이]는 제목에서 주는 약속과는 달리 '파괴된 사나이'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김명민이 연기한 주영수 목사는 딸을 유괴범으로부터 되찾아야 합니다. 아이를 잃은 뒤 그가 과거와는 다른 인물이 되었다는 게 영화의 주장입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주 목사는 그렇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한 인간이 파괴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관객에게 주영수 목사는 아이를 유괴당한 아비로서 자연스러운 변화를 겪은 것으로 보입니다.  한 인간이 파괴되었다면 아이를 구할 정도의 여력도 없어야 하지만, 끓어오르는 父性앞에서 그는 파괴된 사나이가 아닙니다. 잘 뛰고 집요하고, 잘 싸웁니다. 맷집도 좋습니다.  이 영화는 제목을 책임지지 못했습니다. 관객이 제목을 보고 기대한 캐릭터의 변화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이 듭니다.

제목이 관객을 실망시킨 것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파괴된 사나이]란 제목으로 영화를 선택한 관객은 '파괴된 사나이'가 구원받기를 기대합니다. 다시 말해 '파괴된 사나이'와 '혜린이를 되찾자'란 두 가지 키워드가 별개로 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관객은 파괴된 사나이가 구원받고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는 것을 무의식 중에 바라고 있습니다. 더 복잡하게 설명한다면 주목사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딸의 구조에 성공하는 이야기를 원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차라리 주목사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8년 동안이나 아이를 구하지 못했다면 이야기의 맥락은 맞아떨어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주목사의 인간성이 회복되면서 딸을 구했다면, 이 이야기는 관객에게 개운한 만족감을 주었을 것입니다. 더불어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에서 철학적인 깊이를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제목뿐 아니라 영화는 여러 가지 설정을 준비해 놓고 거두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잘 나가는 외과 의대생이었고, 전직 목사였고, 현재는 의료기를 수입하는 주인공이 주영수입니다. 8년 동안 주영수 부부에게 시달리던 구 형사도 있습니다. 그의 캐릭터적인 특성으로 주인공의 목적을 추구한다면 이야기는 칼로 찌르고 차로 쫒는 단순한 범인 추격극 이상의 심층성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10년 이상을 유괴로 취미생활을 즐겨온 최병철(엄기준 분)은 지극히 즉흥적이고 도발적인 범행을 저질러서, 그의 범행 현장은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좋은 설정으로 봄에 씨를 잘 뿌리고 가을에 수확을 못한 예로 볼 수 있습니다.

아이가 유괴당한 이야기는 시청자의 혐오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시청자의 즉각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에 흥행 전선에 문제가 생기기 쉽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택한 관객은 사실 다른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이가 돌아오는 것보다, 파괴된 사나이가 구원받기를 더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파괴된 만큼 악당을 파괴해 주길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파괴된 사나이는 영화의 에필로그씬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구원받지 못했고 그의 응징은 일차원적입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관객의 기대를 배반한 영화이기에 [파괴된 사나이]는 올해 서늘한 여름을 보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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