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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도 용기가 있어야 한다

교육을 벗어난 디자인을 위한 창의력

by Utopian


1. 패스트팔로워의 틀 속에서 자란 우리


인문학은 책상에 앉아서 외우는 학문이 아니라, 손으로 만지고 발로 뛰며 통찰을 얻는 활동이다. 나는 디자이너로서 이 말을 자주 떠올린다. 하지만 한국에서 자란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이런 활동적인 태도는 늘 낯설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패스트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을 최선으로 여겨왔다. 앞서가는 이들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대신, 그들이 내디딘 발자국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따라가는 데 집중했다. 제조업 강국으로 성장한 우리의 역사는 이 전략의 성공을 증명한다.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처럼, 정해진 틀 안에서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은 우리를 선진국 문턱까지 이끌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교육도, 사회도, 심지어 개인의 사고도 그 틀에 맞춰졌다. 학교에서는 질문보다 답을 외우는 것이 중요했고, "왜?"라는 호기심은 "빨리 따라와"라는 명령에 묻혔다. 창의적인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위험으로 여겨졌다. "튀는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처럼, 정해진 흐름에서 벗어나는 이는 눈총을 받았다. 나 역시 어릴 적 그림을 그리며 "이건 왜 이렇게 그렸니?"라는 질문에 "이상하다"는 반응을 들었을 때,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창의력은 부정적인 시선 앞에서 숨을 죽였고, 그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안전한 길을 택하는 법을 배웠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우리는 어느새 스스로 늪에 빠져들었다. 사교육의 덫은 "저기 가면 될 거야"라는 막연한 희망을 심어줬고, 부모와 학생들은 맹목적으로 그 길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그 이상은 점점 더 멀어졌고, 우리는 보이지 않는 유리벽에 부딪히며 헤매기 시작했다. 패스트팔로워의 성공 공식은 더 이상 미래를 열어주지 못했다.



2. 창의력은 왜 용기를 필요로 하는가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이 오래된 속담을 다시 꺼내 본다. 서양에서는 활동성을, 한국에서는 꾸준함을 강조했던 이 말은, 나에게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구르는 돌이 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이끼는 익숙함과 안정의 상징이다. 하지만 그 이끼를 털어내고 굴러가려면, 익숙한 틀을 깨고 모호함 속으로 뛰어드는 결단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처럼 창의적 표현이 부정적으로 여겨졌던 곳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디자이너로서 나는 이 용기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낀다. 예를 들어, 새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이 버튼을 이렇게 배치하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바로 이어지는 생각은 "이게 너무 튀면 고객이 싫어할지도 몰라"다. 패스트팔로워의 잔재는 여전히 나를 붙잡는다. 남들이 이미 성공한 사례를 따라가는 게 안전하다는 속삭임은, 새로운 시도를 꺼리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묻는다: 안전한 길이 정말 우리가 가야 할 길일까?


사회도 마찬가지다. 선진국으로 넘어가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더 이상 따라가는 데 만족할 수 없다. 미래를 만드는 리더가 되려면 질문이 필요하다. "왜 우리는 이렇게 해야만 할까?" "이 문제를 다르게 풀어보면 어떨까?" 이런 질문은 두려움을 동반한다. 정답이 없는 모호함 속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그 모호함을 받아들이고 시도하는 순간, 창의력이 피어나기 시작한다고.



3. 디자이너로서의 공감과 실천


디자이너는 단순히 예쁜 것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람들과 공감하며, 그들의 삶을 개선하는 경험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패스트팔로워의 시대에는 제품을 효율적으로 찍어내는 제조업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사용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플랫폼과 서비스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앱을 디자인한다고 해보자. 버튼의 위치나 색상 하나를 바꾸는 작은 결정이 누군가의 하루를 더 편리하게, 혹은 더 즐겁게 만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나는 항상 사용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뭘 원하나요?"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내가 이걸 바꾸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이런 공감과 실천은 용기에서 시작된다. 몇 년 전, 나는 한 프로젝트에서 기존의 틀을 완전히 깨는 차량을 제안했다. 사내 관련 부문에서는 "실용성이 없고 서비스 개발이 어렵다"라고 걱정했고, 이것은 어떻게 해야 공감대를 얻을까 하는 고민의 연속을 만든다. 하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세계적인 전시에 공개된 콘셉트 모델에 대해 "새로운 가능성에 있다"는 피드백을 주었고, 그 경험은 내게 창의력이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실천으로 완성된다는 걸 가르쳐줬다.


교육 체계에서도 이런 변화를 꿈꾼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정해진 일상에 얽매여 선택 장애를 겪고 있다. "이걸 해도 될까?"라는 고민 속에서 창의력은 자라지 못한다. 부모가 "너는 뭘 상상하니?"라고 묻고, 선생님이 "틀려도 괜찮아, 시도해 봐"라고 격려하는 세상이 필요하다. 나도 디자이너로서 학생들과 작업할 때 "정답은 없어, 네 생각을 보여줘"라고 말한다. 그들의 눈이 반짝이는 순간, 나는 우리가 틀을 깰 수 있다는 희망을 본다.



4. 미래를 여는 자발성과 창의력


패스트팔로워의 시대를 넘어, 이제 우리는 스스로 미래를 열어야 한다. 외부에서 주어진 정답을 찾으려는 습관을 버리고, 내 안의 통찰을 믿는 연습이 필요하다. 디자이너로서 나는 이 과정을 이렇게 표현한다: 배워 익히는 것에서 벗어나, 배워 실천하며 나만의 언어로 디자인하는 것. 완벽한 지식을 외우는 대신, 부족하더라도 시도하고 반성하며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것.


기업도 변해야 한다. 제조업 중심의 시스템은 이제 사용자와 공감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단순히 물건을 파는 대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는 기업이 주목받는다. 이런 변화는 자발성을 가진 창의력을 필요로 한다. 나와 사회를 개선하려는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모일 때, 그 힘이 세상을 바꾼다.


나는 불완전한 내 생각을 스케치북에 옮기며 묻는다: "이 디자인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까?" 답이 모호해도 괜찮다. 그 모호함 속에서 굴러가는 돌이 되어, 이끼를 털어내는 과정 자체가 보람이다. 한국의 패스트팔로워 문화를 넘어, 질문하고 창조하는 리더가 되는 길은 멀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 첫걸음은 이미 시작됐다. 어릴 적부터 틀에 갇혔던 우리 젊은이들이, 그리고 나 자신이, 감히 상상하고 표현하는 용기를 내는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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