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한 노력
크리스천디오르 한국 전시에 초대된 한 패션을 전공하는 학생의 질문이다.
“어떻게 하면 전시된 드레스들이 이렇게나 많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까요? “
짧은 대답은 학생의 질문을 일축한다.
“그냥 열심히 하는 거야!”
전시된 수백 벌 아니 그보다 더 많았을 수천벌의 드레스는 그냥 열심히 했던 그 존경받는 디자이너의 삶이었을 것이다.
언제나 피터슈라이어와 함께 모터쇼를 둘러볼 때면 그를 알아본 학생들이 달려와 묻는 질문에도 “어떻게 하면 디자인을 잘할 수 있나요?”는 등장한다.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하라” 그의 대답이었다. 다를 바 없다. 그냥 하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피겨의 여왕이 된 그녀도, 최고의 일타강사가 된 그도, 최고의 연기를 보이는 닥터스트레인지도, 아예 브랜드 슬로건을 “그냥 해”로 만들어 버린 브랜드도,
그냥 하는 것이다. 무식하다고 할 수도 있다. 자신이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라면 그것이 비도덕적이거나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꿈을 위해서는 그냥 하는 것이다. 그냥 하는 것이다. 꾸준히 될 때까지.
색에 따라 편집된 디자인과정의 기록들은 하나의 작품이 되어 시간을 압축해 놓은 걸작이 된다. 옷과 신발 그리고 가방의 형상이 아름다운 것을 넘어서 이것을 입고 있는 그녀들의 빛나는 순간이 더 아름답다.
단아하면서도 화려한 드레스들은 이것을 디자인한 크리스천 디오르와 그 이후의 많은 디자이너가 주는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일 것이다. 누군가는 아름다운 글로써 누군가는 몸짓으로 누군가는 노래에 담아서 남기는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를 이들은 그들이 빛나게 하는 옷으로 표현했다.
아름답다는 것.
인간이 느끼는 미적인 기준의 정점에 있다는 것.
무엇이 그런 느낌을 가지게 하는지 논리적인 이유는 모르지만 심장을 뛰게 하는 그런 아름다움에는 디자이너의 진심이 담겨있다.
어떤 분야에서도 전문가 수준의 사람들에겐 발전되어 온 흐름에 근거한 헤리티지와 새로움을 위한 크리에이티브를 단번에 가려 논의할 수 있겠지만 패션에는 문외한인 나라도 이 정도의 아름다운 디자인에는 한마디라도 거들고 싶다.
겉으로 드러난 제품을 위한 많은 고민들과 노력들이 런웨이를 더 의미 있게 한다. 사실 그 과정이 더 아름답다. ‘왜?’라는 질문에 대답하고 감각에 대답한다. 마지막으로 믿는 바를 선보인다. 물론 이름이 없다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름을 얻기까지 계속 발견해 나간다. 물론 우연과 이야기가 조화된 공감이 만들어지는 행운이 있다. 그러나 그 행운도 이야기가 될 만한 서사를 만드는 노력이 없다면 우연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공감을 한 번에 알아맞힐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인간관계의 요령으로 두각을 나타 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결국 실력으로 드러나는 탁월함에 있다. 그 탁월함은 시간을 들여 만든 경험의 정수와 같아서 아는 사람이 아는 경지에서 인정받게 된다. 그때까진 계속하는 것이다.
디자이너라는 것,
부르는 명칭이야 어떤 것이든 무언가 편집과 발견을 통해서 스타일을 만들어 내거나 기능을 만들어 내는 것은 어쩌면 숭고한 일이기도 하다. 인기와 부를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과정은 분명, 다른 사람의 창작을 그냥 베끼는 것이 아니라면, 분명 자신을 찾아가며 연구하는 숭고한 작업이다. 거기에 사명감이라는 선한 의지를 담는 다면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것.
그렇게 디자인은 더 나은 것을 위한 선의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