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디자이너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디자인이 삶을 바꾸는 순간

by Utopian

사상가나 정치가가 세상을 바꾸어 온 역사적 사례는 많다.

그리고 디자이너도 또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어 왔다.

바우하우스 시대를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예술가와 건축가, 공예가들이 모여 단순히 아름다움이 아닌 새로운 생활양식에 맞는 도구와 환경을 만들고자 했던 시도가 바로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정립시켰다.

“Designare”라는 말은 본래 무언가를 표시하고 정의하며 보여주는 활동을 뜻했지만, 산업혁명 이후 이 개념은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 해결의 방법론으로 확장되었다. 표준화된 제품, 대량 생산, 그리고 기능적이면서도 미학적인 만족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노력 속에서 전문 디자이너들이 등장했고, 그들의 역할은 단순히 사물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디자이너는 더 이상 가구나 의복, 생활 도구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의 시각 환경을 형성하는 그래픽 디자인, 생활공간을 정의하는 인테리어 디자인, 그리고 산업 전반을 움직이는 제품·운송기기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관여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에서는 ‘디자인’이 표면을 아름답게 꾸미는 행위로 축소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디자인은 도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통합적 과정이며, 기능과 미학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디자이너들은 스케치, 모형 제작, 데이터 기반 가상물 등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이상을 현실로 구현한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디자이너는 어떻게 미래를 바꾸는가? 특히 자동차 디자이너는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가?


이제 자동차 디자인은 단순히 외형의 아름다움이나 성능의 효율성을 넘어선다. 자동차는 지난 100년간 인간의 삶을 가장 크게 바꾼 도구 중 하나였다. 자동차는 단순한 운송수단이 아니라, 새로운 도시 구조와 생활양식을 가능하게 만든 촉매였다. 교외 주거지의 탄생, 고속도로 문화, 자동차 극장이나 드라이브 스루 서비스 등은 모두 자동차가 만들어낸 새로운 생활의 형태다. 이는 건축가와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이 만들어낸 세상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자동차 디자이너가 마주한 과제는 과거와는 다르다. 내연기관의 성능 경쟁이나 외형의 스타일링 경쟁을 넘어, 새로운 모빌리티라는 패러다임 속에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묻고 있다. PBV(Purpose Built Vehicle) 같은 개념은 이 전환점을 잘 보여준다. PBV는 단순히 이동을 위한 기계가 아니라, 사람들의 다양한 목적을 담아낼 수 있는 이동하는 공간이자 플랫폼이다. 누군가에게는 이동 중의 사무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휴식 공간, 혹은 소규모 상점이나 의료 서비스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이 지점에서 자동차 디자이너의 역할은 기존과 전혀 다른 차원으로 확장된다. 외형을 멋지게 만드는 일을 넘어서, 삶의 시나리오를 디자인하는 역할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자동차 디자이너는 형태와 기능을 결합하는 감각적 조율자일 뿐 아니라, 사람들이 이동 속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가치를 얻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경험의 설계자가 된다.


앞서 TCO(Total Cost of Ownership)라는 개념이 있었다면, 이제는 TVE(Total Value of Experience)라는 새로운 척도가 필요하다. 단순히 차량을 소유하는 데 드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차량을 사용하는 전체 기간 동안 얻게 되는 경험의 질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 경험은 디자인의 힘을 통해 결정된다. 자동차 디자이너가 배치하는 공간의 구조, 재료의 선택, 인터페이스의 직관성, 그리고 무엇보다 사용자가 느끼는 감성적 만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이런 점에서 자동차 디자이너의 책임은 단순한 제품의 미학을 넘어선다. 그들은 어떤 경험을 설계함으로써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를 생각해야 한다. 더 나아가 자동차는 이제 움직이는 플랫폼이자 서비스의 기반이 되며,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경험은 기업의 새로운 이익이자 사회적 가치로 돌아온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기업의 전략을 주도하는 위치에서 미래를 설계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디자이너는 단순히 예쁜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디자이너는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며, 사회적 변화를 촉발하는 역할을 한다. 자동차 디자이너는 특히 이동이라는 인간의 근본적 행위에 관여하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더욱 크다. 자동차를 넘어 모빌리티라는 개념으로 확장될 때, 자동차 디자이너는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고 변화시키는 새로운 플랫폼의 창조자가 된다.

앞으로 자동차 디자이너가 세상을 바꾸는 방식은 더 이상 차체의 곡선을 얼마나 아름답게 다듬는가에 있지 않다. 그것은 사람들의 필요와 경험을 중심에 두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데 있다. PBV, 자율주행차, 그리고 모빌리티 서비스는 모두 그 연장선상에 있다. 디자이너가 만들어내는 미래는 단순히 도로 위의 풍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과 사회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힘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정치가는 제도를 바꾸고 사상가는 인식을 바꾸지만, 디자이너는 삶의 방식을 바꾼다. 그리고 자동차 디자이너는 이동이라는 근본적 행위 속에서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하며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것이다.


지난 100년간 거주를 위한 공간을 새롭게 제시한 인물들을 떠올려 보면, 르꼬르뷔지에, 미스 반 데어 로에, 루이스 칸 같은 건축가들이 있다. 이들의 작업은 단순한 건축물을 짓는 행위를 넘어서, 삶의 방식 전체를 새롭게 정의하는 제안이었다. 주거는 더 이상 벽과 지붕을 얹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시대의 기술과 미학, 그리고 인간의 생활양식이 교차하는 지점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자동차 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어쩌면 그 연장선상에서 또 다른 삶의 공간을 제안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동차는 원래 이동을 위한 기계였다. 하지만 이제 자동차는 이동 그 자체보다 머무름과 경험의 의미를 점점 더 강하게 요구받고 있다. PBV(Purpose Built Vehicle) 같은 새로운 모빌리티는 이 전환점을 잘 보여준다. 주차장에 가만히 멈춰 있는 비공간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다양한 목적을 수행하는 이동하는 장소로 변모한다. 어떤 경우에는 작은 상점이 되고, 다른 경우에는 진료실이 되며, 또 다른 상황에서는 나만의 휴식 공간이나 모임의 장이 될 수도 있다. 이때 자동차 디자이너의 작업은 단순한 기계 설계가 아니라, 새로운 거주 방식에 대한 제안이 된다.


장소라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위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장소는 사람이 머무르고, 경험을 쌓고, 의미를 만들어내는 과정 속에서 형성된다. 건축가들이 만들어온 건물들이 물리적 구조물을 넘어 생활의 패턴과 문화를 바꾼 것처럼, 자동차 디자이너가 제안하는 모빌리티 또한 삶을 위한 또 하나의 무대가 된다.

예를 들어, 도심 한복판에서 작은 PBV가 커피숍으로 기능한다고 해보자. 단순히 카페라는 서비스가 아니라, 도심 속에서 예상치 못한 장소가 생성되는 경험이 된다. 또는 교외 지역에서 이동하는 PBV가 의료 서비스 공간으로 쓰인다면, 이는 단순히 차량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건강을 제공하는 장소로 기능한다. 이렇게 이동하는 장소는 물리적 제약을 뛰어넘어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며, 새로운 형태의 거주를 확장시킨다.

이제는 사람의 경험과 장소의 의미가 핵심이 된다. 내부 공간은 단순히 좌석 배열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외부 디자인 또한 기능을 담으면서도 새로운 장소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동차 디자이너는 더 이상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이동하는 건축을 설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작은 PBV 하나가 도심 속에서 새로운 생활의 단위를 제안한다면, 이는 건축가가 신도시를 설계하던 것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차이가 있다면, 자동차 디자이너는 건물을 짓는 대신 움직이는 장소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자동차 디자인이 새로운 장소를 제공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능적 확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곧 더 나은 삶에 대한 제안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경험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 이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자동차 디자인의 새로운 역할이다. 장시간 이동 중에도 쾌적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이동 사무실, 도시의 빈 공간을 채우는 이동식 문화공간, 혹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동형 헬스케어 서비스 등은 모두 삶을 개선하는 장소의 재정의다. 이런 시도들이 쌓이고 확산된다면, 100년 전의 건축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의 자동차 디자이너들도 미래 세대에게 삶의 방식을 바꾼 선구자로 기억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제안하고 있는 PBV나 새로운 모빌리티 개념들은 아직 실험적이고 과정 중에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이동하는 기계에서 머무는 장소로의 확장, 그리고 단순한 제품에서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는 플랫폼으로의 전환은 이미 시작되었다.

100년 전, 르꼬르뷔지에와 미스 반 데어 로에, 루이스 칸이 오늘의 주거 형태의 틀을 제안한 것처럼, 100년 뒤에는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만든 모빌리티가 거주와 삶의 새로운 패턴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단순히 기술적 성취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한 노력으로 축하받을 것이다.

따라서 자동차 디자인은 이제 자동차 산업의 한 기능적 부문이 아니라, 새로운 장소를 제안하고 삶을 재구성하는 문화적 실천이다. 그리고 이 문화적 실천 이야말로 자동차 디자이너가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유산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PBV가 UAM(Urban Air Mobility)과 통합되어 유연하게 기능하는 허브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할 수 있다. 이러한 허브는 공항이나 터미널처럼 공간성과 기능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장소가 될 수 있다.

이런 모빌리티-건축 통합 아키텍처는 공간은 더 이상 분리된 인프라가 아니다. 도시 설계와 연계된 모바일 구조, 즉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변화하고 재배치 가능한 모듈형, 유연한 구조체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이미 1950–60년대 Yona Friedman의 “모바일 아키텍처” 이론에서 등장한 개념으로, 사용자가 직접 정의하고 이동하며 재구성할 수 있는 건축적 환경을 제안하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또한 아키그램이 주장하는 플러그인 시티와 프로그래시브 한 워킹 시티라는 주장으로도 제시된 적이 있다.

공간이 단순한 정적 구조를 넘어 센서와 액추에이터를 통해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변화하는 시스템을 제안하는 반응형 건축에도 이어진다. 이 개념은 모빌리티 공간이 사용자와 환경에 따라 형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또한 키네틱 아키텍처(Kinetic Architecture)는 건축물이 움직이면서 기능이나 형태를 변화시키는 개념을 포함하며, 이러한 건축 철학은 미래 모빌리티의 물리적 구조 설계에 중요한 영감을 준다.


시도와 제안은 늘 있어 왔고 지금 이 순간도 그것이다. 새로운 삶의 형태를 원하는 것도 지금의 불편함을 개선하고자 하는 정성이다. 물론 예상치 못한 반작용이 있고 당연한 듯 생각되는 것 들에서도 새로운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그 어떤 것도 이런 시도와 제안이 시작이었다. 같을 제안이라도 수 없이 반복되었고 조금씩 개선되어 간다. 더군다나 우리는 움직이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업의 본질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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