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이 삶을 바꾸는 순간
새로운 모빌리티 시나리오를 위한 연구프로세스
자동차 디자인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이번엔 D 세그먼트 세단을 만들자"처럼 정해진 카테고리의 후속작을 만드는 경우가 있고, "가족이 함께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는 차"처럼 미래의 특정 상황을 설정하고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어느 쪽이든 먼저 그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을 때의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리고 거기에 필요한 조건들을 하나씩 떠올린다. 이후 현실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정말 중요한 요소만 추려낸다.
그렇게 추린 요소들을 감성과 형태의 언어로 풀어내면 스타일링이 되고, 기능과 생산의 논리로 접근하면 엔지니어링이 된다. 사람과의 관계에 집중하면 마케팅이나 홍보가 된다. 결국 디자인이란 세상의 움직임에 공감하고, 그 안에서 필요한 것을 걸러내며, 아이디어를 모아 가상의 형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스케치를 그리고 품평을 받고, 다시 그리고 또 평가받으면서 점점 완성도를 높여간다. 이 일련의 흐름이 바로 디자인 사고의 본질이다.
사람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 또는 앞으로 하게 될 현상 속에서 의미를 읽어낸다. 그중 중요한 부분을 선택해 정보를 모으고, 삶의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엮는다. 이 과정을 통해 결과적으로 삶의 작은 개선이 일어난다.
디자이너의 본능에서 나오는 직관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하지만 디자인은 결국 많은 사람에게 받아들여져야 하는 예술이다.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이해받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자동차 디자인은 초창기 카로체리아 시대와 달리, 이제는 거대한 자본과 인프라가 뒷받침되는 산업이다. 개인이 작은 사무실에서 혼자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매달 열리는 품평회에서는 수많은 이해와 공감, 그리고 각자의 주장이 뒤섞이며 고객을 위한 최선의 답을 찾아간다.
이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디자인 사고다. 그리고 지금은 산업혁명급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틀, 즉 미래 사고라는 개념이 필요한 시점이다. 10여 년 전 등장한 디자인 사고는 단순히 대량생산의 컨베이어 벨트처럼 일직선으로 진행되는 과정이 아니라, 도전과 개선을 반복하며 나아가는 나선형 과정을 제안했다. 그 과정에서 실패는 낭비가 아니라 성공으로 가는 가장 효율적인 손실이 되었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바로 그 실패 속에서 탄생했다.
한편 세상의 변화는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불확실성이 일상이 되는 뉴노멀의 시대가 시작됐다. 그래서 '미래'라는 단어는 더 이상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곧 다가올 순간을 의미하는 선택으로 바뀌었다. 중요한 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선택을 어떻게 '잘' 하느냐다. 그게 바로 미래라는 이름의 영역이 맡아야 할 본질이다.
미래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한 오늘의 내일이다. 디자인 사고를 넘어선 미래 사고는 바로 그 내일을 구체화하기 위한 방법이다.
디자인 사고와 미래 사고의 만남
만약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 알았다면, 주식을 팔았거나, 관계를 끝냈거나, 그 일자리 제안을 주저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문제는 언제나 현재의 순간에 그런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미래 사고를 비즈니스와 개인 생활 모두에서 사고의 표준으로 삼으면, 불확실성 속에서도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하는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 다양한 콘셉트 모델과 디자인 전략은 기본적으로 디자인 사고의 방법론을 따른다. 사용자에 대한 이해, 그들의 필요를 향한 통찰, 아이디어 도출과 테스트, 그리고 시장에 내놓기 위한 비즈니스 모델 구축까지, 초반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집중된다. 이는 오늘의 문제를 창의적이고 사용자 중심적으로 해결하는 데 탁월하게 작동해 왔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간과된 점이 있다. 사용자 역시 매일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려 하기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시나리오로 제시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게 바로 미래 사고의 역할이다. 날씨 예보처럼, 미래 사고는 다가올 가능성이 높은 여러 상황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중요한 기회를 포착하고, 필요한 연구를 미리 시작하며, 나아가 미래상을 조직 안에서 구체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렇다면 예측에 기반한 미래 사고와, 제품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한 디자인 사고는 어떻게 비교되고, 또 어떻게 서로를 보완할 수 있을까? 두 과정은 뚜렷한 차이를 갖지만 동시에 이어질 수 있는 관계다.
발산과 수렴의 혼합
두 과정 모두 발산과 수렴 단계를 거친다
디자인 사고는 아이디어를 테스트하고 구체화해 결국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최종 개념으로 수렴한다.
반면 미래 사고는 정확한 답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중요한 점은 이 시나리오들이 곧 디자인 사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래 사고가 그려낸 로드맵은 디자인 사고로 연결되며 하나의 과정은 다른 하나를 열어주는 문이 된다.
목표와 마인드셋, 그리고 다른 산출물
디자인 사고의 목표는 창작을 고무하는 데 있다. 그 결과물은 오늘의 세계를 위한 제품, 서비스, 경험이다. 과정 속에 모호함이 있더라도 결국 원하는 결과에 도달할 것이라는 낙관적 자신감의 마인드셋이 이를 뒷받침한다.
반면 미래 사고는 영감을 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앞으로 몇 년간 우리가 맞이할 수도 있고 놓칠 수도 있는 기회에 대해 더 크게 사고하게 만든다. 이는 불확실한 내일에 대비해 사고를 단단하게 다듬기 위한 것이다. 핵심은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실용적 실행으로 이어질 수 있는 태도를 기르는 데 있다.
이 마인드셋을 경험 가능한 매체로 변환해 제시하는 것, 그것이 곧 미래를 드러내는 디자인의 역할이다.
디자인 사고는 오늘날의 세계와 가까운 미래를 위해 창작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영감 단계는 보통 현재와 바로 직전 과거(몇 년 전)만 조사하는 데 집중한다.
미래 사고는 10~15년 후의 가능성을 조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과거 10~15년을 돌아보며 역사를 이해하고, 과거가 미래에 미칠 영향을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디자인 사고는 즉각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래서 주로 오늘날 조직에 직접적으로 연결된 요인들—사용자, 기술적 제약, 비즈니스 필요—에 집중한다.
반면 미래 사고는 장기적 성격을 띤다. 따라서 훨씬 더 체계적인 접근을 취하며, 당장의 요인뿐 아니라 앞으로 몇 년간 조직의 맥락을 형성할 거시적 요인까지 고려한다.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연구가 필요하고, 제안하려는 미래상은 명확한 시각화로 드러나야 한다.
하지만 두 과정은 몇 가지 유사점도 분명하다.
두 과정 모두 영감을 얻기 위해 주변부를 바라본다. 디자인 사고는 선도 사용자와 후행 사용자를 관찰해 숨겨진 필요를 드러내고, 유사한 시스템을 참고해 기회의 영역을 포착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점차 정교화한다. 반대로 미래 사고는 오늘날 나타나는 미약한 변화를 포착해 그것이 10~15년 뒤 어떤 모습이 될지 추측한다. 이때 직관적으로 사회적 맥락을 읽고 실행으로 연결하는 감각이 필요하다.
두 과정 모두 페르소나와 프로토타입을 통해 추상적 개념을 생생하게 만든다. 디자인 사고에서는 사용자 필요와 제품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잠재적 사용자가 반응할 수 있도록 하고, 그 과정에서 유용한 피드백을 얻는다. 미래 사고에서는 미래의 삶을 그린 시나리오를 구체화해, 그 세계의 실제 아이템처럼 이해관계자 앞에 제시한다.
이처럼 두 과정은 유사점과 차이점을 함께 지니며, 그 자체로 모두 가치가 있다. 며칠을 두고 논의할 수도 있겠지만, 핵심은 결국 둘 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미래를 위한 길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경영학의 거장 피터 드러커는 그의 책 최고의 질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is to create it.” 미래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그것은 예측의 기술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용기다.
디자인 실무자들에게 더 큰 질문은 결국 이렇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미래 사고를 디자인 과정에 도입하면 진짜 도움이 될까?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가능성을 열어줄까?”
두 방법론을 결합하는 가장 큰 장점은 단순하다. 더 미래 지향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당장의 사용자가 오늘 사고 싶어 하는 물건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용자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할지를 조금 더 깊게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디자인은 그 사람과 함께 진화할 수 있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를 위해 부모가 대학 등록금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과 비슷하다. 당장은 필요 없어 보여도, 미래의 어느 시점에 반드시 쓰이게 된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단순히 브랜드와 고객 사이의 짧은 관계가 아니라, 제품과 서비스 전반에 기반한 더 길고 단단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한 가지 방법은 명확하다. 미래 사고에 전념하면서 디자인 사고와 병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0년에서 15년 후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한 시나리오 세트를 만들어 놓고, 우리의 디자인 활동을 그 비전과 계속 정렬시키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많은 디자이너가 아직 그 도약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당장은 중간 단계가 필요하다. 즉, 미래 사고에서 몇 가지 연습 방법만 빌려와 디자인 사고 프로세스 안에 섞어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이다.
실전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1.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내다보기
디자인 사고에서는 주로 사용자의 이야기, 즉 과거 경험을 데이터로 삼는다. 하지만 미래 사고는 이 데이터들을 단순히 모으는 것이 아니라 연결해 궤적을 읽어내는 데 초점을 둔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생각해 보자. 처음에는 단순히 전화와 문자만 가능했지만, 점점 인터넷, 카메라, 지갑 기능까지 통합되었다. 사용자의 행동과 선호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면 그 궤적이 명확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스마트폰은 무엇을 담아야 할까? 혹은 전혀 새로운 형태의 개인 기기가 등장할까?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2. 신호 수집과 군집화
디자인 사고에서는 주로 사용자와 서비스를 직접 관찰하며 통찰을 얻는다. 반면 미래 사고는 좀 더 넓게, 주변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한다. 처음에는 무관해 보이는 현상일지라도 거기서 미래의 기회가 싹틀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요즘 젊은 세대가 전자책보다 오히려 종이책을 다시 찾는 현상이 있다. 또 한편에서는 AI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내는 시대다. 얼핏 무관해 보이지만, 둘을 묶어 보면 ‘디지털 피로 속에서 인간이 원하는 감각적 경험’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떠올릴 수 있다. 이런 것이 바로 신호를 연결해 새로운 인사이트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3. 미래 예측
디자인 사고에서는 보통 얼리어답터를 통해 미래의 주류 사용자를 예측한다. 하지만 미래 사고는 좀 더 구조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금의 주변부 변화가 언제 어떻게 주류로 편입될지, 그리고 오늘의 주류가 어떻게 쇠퇴할지를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유 자전거와 킥보드는 몇 년 전만 해도 도시 주변부 서비스였다. 하지만 지금은 주요 교통수단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반대로 CD나 DVD는 주류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디자이너는 이런 흐름을 미리 읽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세대를 위한 제품을 제대로 준비할 수 있다.
4. 예상치 못한 가능성 드러내기
디자인 사고에서는 브레인스토밍으로 많은 아이디어를 만든다. 미래 사고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여러 신호들을 ‘매시업’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
예를 들어 ‘AI 음악 생성 서비스’라는 신호와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아날로그 악기를 배우려는 트렌드’를 결합해 보면, ‘AI와 아날로그를 결합한 새로운 악기’라는 기회를 떠올릴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전혀 다른 두 가지를 합쳐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미래 사고는 익숙하지 않으면 모호하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디자인 사고도 처음 배울 때는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것은 익숙해지려는 시도 자체다. 이렇게 조금씩 두 가지 접근법을 섞다 보면, 디자이너로서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고 전략가로서도 성장할 수 있다.
사실 우리 업계에서도 이런 접근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몇몇 자동차 회사들은 10년 뒤 모빌리티 시나리오를 그려 놓고, 거기서 파생된 신사업 아이디어를 지금부터 실험하고 있다. 자율주행차, 구독형 차량 서비스, 차량 내부의 생활 공간화 같은 개념은 모두 이런 식으로 미래 사고와 디자인 사고를 연결한 결과물이다.
결국 디자인은 단순히 예쁜 것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디자이너는 본질적으로 미의식을 갖춘 동시에 이타적인 사람이다. 예전에는 화려한 스케치와 멋진 말솜씨가 좋은 디자이너의 조건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세상을 위해 옳은 일을 하고, 사람들의 삶에 의미 있는 변화를 주는 사람이 좋은 디자이너다.
스타 디자이너들의 가치를 떠올려 보자. 단순히 멋진 제품을 만들고 쇼맨십을 보여준 것이 전부였을까? 아니다. 그들의 디자인에는 사회적 맥락과 사람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었다.
오늘날 디자이너에게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진심이다. 제품을 쓰는 사람들의 목적에 맞게, 그들이 미처 요구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미리 준비해 주는 태도 말이다. 요즘 많이 쓰는 ‘Bespoke’라는 개념이 있다. 맞춤형 냉장고에서 시작했지만, 이제 자동차에서도 개인 맞춤형 옵션이 필수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히 마케팅 전략이나 제품 콘셉트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정말로 사용자의 삶을 이해하고, 그 안에 스며드는 솔루션이 되어야 한다.
결국 우리가 가진 디자인 철학은 미래 사고와 연결된다. 어제의 성공을 단순히 반복하는 게 아니라, 그 기반 위에서 미래를 선택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디자인은 예술이면서 동시에 삶을 바꾸는 실천이다. 그리고 그 실천의 도구가 바로 이런 사고방식들이다.
비스포크라는 말은 원래 영국에서 맞춤 정장을 만들 때 쓰던 단어다. 고객이 원하는 원단과 디자인을 직접 고르면, 재단사가 그에 맞춰 옷을 만들어 주는 방식이었다. 말 그대로 ‘한 사람만을 위한 주문 제작’이라는 뜻이다. 이 개념이 제품과 서비스에도 옮겨오면서, 브랜드들은 점점 더 사용자 개개인의 취향과 생활 방식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사례 중 하나는 가전제품이다. 삼성전자의 비스포크 냉장고는 사용자가 원하는 색상, 재질, 크기를 직접 조합할 수 있게 했다. 과거에는 냉장고가 그저 ‘흰색 또는 은색의 전형적인 가전제품’이었다면, 이제는 집안의 인테리어와 어울리는 맞춤형 가구 같은 존재로 변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주방 전체를 파스텔톤으로 꾸미고 싶어 하고, 또 다른 사람은 금속 질감의 모던한 분위기를 원한다. 브랜드가 미리 정해 준 ‘표준 옵션’이 아니라, 소비자가 직접 선택하는 과정이 가능해진 것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예전에는 자동차의 색상이나 내장재 선택지가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롤스로이스 같은 럭셔리 브랜드뿐 아니라 미니(MINI) 같은 대중 브랜드까지 개인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고객이 원하는 색조합, 스티치, 심지어 개인의 이니셜이나 취향을 반영한 디테일까지 적용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소유자의 개성과 삶의 이야기를 담은 오브제가 된다.
패션과 테크 분야도 빠지지 않는다. 나이키의 ‘나이키 바이 유(Nike By You)’ 서비스는 소비자가 원하는 색상, 소재, 그래픽을 골라 자신만의 운동화를 만들 수 있게 했다. 어떤 사람에게 운동화는 단순한 운동 기구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자신을 표현하는 캔버스가 된다. 또 애플의 애플워치 스트랩 커스터마이징도 마찬가지다. 기본 제품은 같아도 스트랩을 바꾸는 것만으로 각자의 라이프스타일과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
현재 비스포크 개념은 단순히 “취향 맞춤형 제품”을 넘어서고 있다. 이제는 소비자의 삶의 맥락과 연결되는 맞춤형 경험으로 확장 중이다. 예를 들어 가전제품이 집안의 IoT 시스템과 연결되면서, 사용자 생활 패턴에 맞춰 스스로 동작을 최적화한다. 자동차 역시 운전자의 습관과 목적지를 학습해 맞춤형 내비게이션이나 좌석 환경을 제안한다. 말하자면, 제품 자체가 ‘사용자의 연장선’이 되어 가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비스포크는 더 이상 럭셔리 브랜드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제는 일상 속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개념이 되었고, 제품 그 자체를 넘어 서비스와 경험 전반을 개인에게 맞추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중요한 건 단순한 옵션의 다양화가 아니라, ‘사용자의 삶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태도’다. 이 태도가 담겨 있을 때, 비스포크는 마케팅 전략을 넘어서 진짜 의미 있는 디자인 철학으로 자리 잡는다.
모빌리티에 반영되는 디자인 방향성은 더 많이 팔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더 많이 고려하고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제 기업이 이 마음을 담지 못하면 단순히 이익 창출이라는 고전적인 존재 이유뿐 아니라 실질적인 가치의 발전도 이뤄낼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왜 PBV라는 운송 기기가 이렇게 거창한 사명을 가져야 하는가?
지금까지의 수익은 제품 가격을 최적화하고 더 나은 품질을 가진 차량을 판매해서 얻는 것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를 수 있다. 제품을 사용하는 사용자의 ‘좋아요’가 곧 기업의 이익이 될지도 모른다.
스마트폰 플랫폼을 떠올려 보자. 여러 플랫폼이 있지만 어떤 플랫폼이 더 많이 쓰이느냐에 따라 광고와 서비스가 몰리고, 영향력이 커지면서 사용자가 늘어난다. 그 과정에서 하나의 문화가 형성된다. 마찬가지로 운송 기기는 이제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움직이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사회적 가치를 품게 되고, 이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는 단순히 물건을 잘 만드는 차원을 넘어, 그것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 고민해야 한다.
이제 소재의 친환경성은 기본 조건이 된다. 더 중요한 건, 이 운송 기기를 통해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때 제조사가 어떤 지원을 지속할지에 대한 내러티브를 미리 고민하는 것이다. 단순히 차량 판매가 아니라 서비스 이용이라는 관점에서 전 과정을 설계해야 한다. 어쩌면 기아 같은 회사는 더 이상 ‘제조업체’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서비스 기업’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치 있는 일을 돕습니다.”
이런 태도에서 출발하면 자연스럽게 공간에 대한 고민이 뒤따른다. 사람들의 필요에 맞는 공간, 필요할 때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삶을 도와야 한다. 우리가 잘하는 운송기기 제작의 역량을 발휘해 PBV라는 이동 플랫폼을 서비스로 제공하게 되는 흐름은 여기서 만들어진다. “우리가 도구를 드릴 테니, 여러분은 이를 활용해 더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십시오.”라는 메시지 속에, 기업의 이익이 단순한 수익이 아니라 사회적 기여로 혁신되어야 한다는 바람이 담겨 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상황은 다르다. 프로젝트마다 처리해야 할 아이템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위에서 말한 철학적인 얘기들은 겉돌아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는 결국 “왜 그렇게 디자인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주는 역할을 한다.
아직도 그래픽 프로그램을 다루는 게 디자이너의 역할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30년 전만 해도 디자인을 상업적인 그림을 그리고 도안을 짜는 일로만 보았다. 그때는 어도비 같은 그래픽 툴을 잘 다루는 능력이 중요했고, 심지어 디자인 자격증을 만든다는 얘기까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다양한 앱을 활용해 생각을 시각화하고 형상을 구현하는 건 기본적인 도구 사용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그 도구를 쓰면서 디자이너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다.
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디자이너의 가치가 시작된다고 본다. 생각하는 순간, 즉 무엇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하는 순간 말이다.
기업을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에 비유할 수 있다. 선장, 기관장, 의사, 항해사처럼 각각의 역할이 있고, 환경에 따라 그 역할은 변한다. 마찬가지로 기업 안에서도 디자이너의 역할은 더 다양해지고 있다. 단순히 형태를 만드는 일을 넘어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영역이 넓어졌다. 디자이너의 가치가 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결국 디자인은 문제를 느끼고, 그것을 고민해, 해결책을 제안하는 과정이다. 여기에 미의식을 더한 것이 디자이너의 힘이다. 지금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대응이 필요한 시대에는, 이 힘이 기업의 경영이나 인사, 특히 기획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Design Management.
디자인 경영은 상품, 서비스, 조직에 디자인의 개념을 구체화해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지식 경영 방안이다. 디자인 경영은 상품 미학을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행위이므로, 시작하는 순간 모든 영역에 창의적으로 접근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디자인 경영(Design Management)’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상품과 서비스, 조직 전반에 디자인의 개념을 구체화해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지식 경영 방식이다. 단순한 스타일링이 아니라 문제 해결로서의 디자인, 발상의 전환을 통해 전혀 다른 설루션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이 접근을 적용하고 있다.
Human Resource
한 사회, 또는 국민경제가 필요로 하는 재화와 용역의 생산에 투입될 수 있는 인간의 노동력, 거시적 관점에서의 인적 자원은 그 나라의 경제활동인구의 규모에 의해 결정되며, 미시적으로는 생산적인 재능, 기술, 지식을 갖춘 노동자의 수에 의해 그 양(量)이 결정된다. 이에 반대되는 개념은 물적 자원으로서 원자재, 기계, 설비, 건물, 토지 등을 일컫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적자원 (사회복지학사전, 2009. 8. 15., 이철수)
앞에서 이야기한 이타적인 디자이너의 노동자 즉 사람을 대하는 가치관은 지금의 HR이 사람다운 사람들의 일을 하게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디자인 경영을 먼저 이야기했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을 자원으로 보는 관점을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마음으로 바꾸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의 성격과 성향을 고려해 창의적인 환경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그로부터 혁신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사람이다. 인적 자원을 ‘노동력’이나 ‘생산 도구’로만 보는 관점은 오래전 산업화 시대의 사고방식이다. 사전적 정의를 보면 ‘인적 자원에 반대되는 개념은 물적 자원’이라고 되어 있다. 사람을 원자재나 기계와 같은 자원으로 본다는 뜻이다. 필요할 때 쓰고, 다 쓰면 버린다는 무시무시한 발상이다.
디자이너가 가진 이타적인 태도는 바로 이 부분에서 의미를 갖는다. HR, 즉 사람을 다루는 분야에서 디자이너는 사람을 자원이 아닌 ‘사람 그 자체’로 대하는 가치를 불어넣을 수 있다. 성격과 성향을 고려한 창의적 환경을 만들고, 그 속에서 혁신을 이끌어 내는 역할 말이다. 디자인 경영이 기업에 필요하다면, 사람을 다시 사람으로 보는 관점은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