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 개구리와 황소/허영과 비전

디자이너를 위한 이솝 우화

by Utopian

개구리와 황소 — 디자인의 허영과 비전의 간극에 대하여

어느 여름날, 연못가에 살던 늙은 개구리가 들판에서 거대한 황소를 보았다. 황소는 묵직한 발걸음으로 대지를 울리며 지나갔다. 그 웅장한 몸집에 압도된 개구리는 연못으로 돌아와 새끼들 앞에 섰다.

“내가 저 황소만큼 커질 수 있다. 봐라.”

개구리는 배에 잔뜩 공기를 들이마셨다. “이만하면 되었느냐? 내가 황소만큼 커졌느냐?” 새끼들은 고개를 저었다. 개구리는 더욱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만하면?” 새끼들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개구리는 온 힘을 다해 배를 부풀렸다.

그 순간 — 펑.

개구리의 배가 터져버렸다.

이 이야기의 진짜 비극은 크기가 아닙니다.

개구리가 황소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문제가 생긴것이 아닐까 합니다.

- 황소가 지닌 것에 대한 맹목적인 욕망과, 자신이 무엇인지에 대한 망각-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개구리는 황소가 그 몸집을 갖게 된 이유나 생태계 안에서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한 채 오직 외형만을 복제하려 했습니다. 또한 스스로도 어떤 존재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내려놓는 순간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터져버립니다.

강자를 모방할 때, 아니 더 강해지거나 나아지고 싶을 우리는 결과만을 보고 과정과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만을 자신의 몸에 이식하려 할 때, 몸은 반드시 거부 반응을 일으키고 원하는 곳에 다다르지 못하게 됩니다.

— 스타트업 개구리와 플랫폼 황소

이솝의 우화는 지금 우리 주변의 일들로도 비칩니다. 특히나 최근 플랫폼 경제가 낳은 몇몇 거대한 황소들 — 애플, 구글, 아마존 — 앞에서 수많은 스타트업 개구리들이 날마다 숨을 들이마시고 있습니다. 작은 아이디어를 크게 할 수 있는 수많은 도구를 통해 시도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도야 말로 진정 황소가 되기 위한 최선의 방법입니다. 지금의 그 황소들도 분명 그런 과정을 거쳤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황소가 되는 것은 그 과정에서의 태도가 반영하는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실리콘밸리 한 구석, 작은 스타트업이 있었습니다. 직원은 열두 명, 사무실은 공유 오피스의 작은 방 하나였지만 시장에 필요한 아이디어로 창업을 했습니다. 그들은 간결한 할 일 관리 앱을 만들었고, 사용자들은 그 단순함을 오히려 더 활용하는 이유였습니다. 앱을 열면 딱 세 가지 버튼만 있었습니다

— 오늘 할 일, 내일 할 일, 완료. 복잡한 세상 속에서 그 명료함 자체가 위안이었습니다.

어느 날 창업자는 애플의 신제품 발표 이벤트를 보게 됩니다.

수만 명이 환호하는 거대한 무대, 수십 개 기능이 탑재된 생산성 플랫폼, 전 세계 수억 명의 사용자.

그는 연못으로 돌아와 팀원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어. 소셜 기능 추가하자. AI도 넣자. 캘린더, 화상회의, 문서 편집, 프로젝트 관리 — 모두 하나로.”

팀은 6개월간 숨을 들이마시며 기능을 쌓아 올렸습니다.

앱은 점점 커졌고 스플래시 화면은 화려해졌고, 온보딩 튜토리얼은 17단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단순함 때문에 이 앱을 사랑했던 사용자들은 하나 둘 떠나갔습니다. 투자금은 소진되었고, 팀은 지쳐갔습니다. 앱 스토어 리뷰에는 이런 글이 남아 있었습니다 — “예전이 더 좋았는데.”

결국 그들은 지나친 확장으로 어느 것 하나 특별하지 않는 서비스를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그들이 황소처럼 부풀었을 때, 개구리의 배는 터졌습니다.

이 현대의 우화에서 가장 아픈 지점은 창업자의 처음 의도가 나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장하고 싶었고, 더 많은 사람에게 닿고 싶었으며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성장의 방향이 내부의 본질에서 출발하지 않고 외부의 황소를 모방하는 데서 출발했을 때 — 자신이 왜 사랑받는지를 잊었을 때 — 성장은 자기 파괴가 되었습니다. 이 교훈은 디자인의 세계에서 특히 날카롭게 작동합니다.

제품 디자인 — 부풀어 오른 형태의 대가

제품 디자인의 역사는 크기와 과시의 유혹에 굴복한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더 많은 기능, 더 큰 화면, 더 고급스러운 소재, 더 화려한 디테일 — 이 모든 것이 종종 ‘개구리의 숨 들이마시기’로 귀결됩니다. 그리고 그 결말은 언제나 예측 가능합니다.


삼성 갤럭시 노트 7 — 물리적 폭발이라는 결말

2016년 삼성전자는 애플에 대한 오랜 도전의 정점으로 갤럭시 노트 7을 출시했습니다.

당시 삼성이 노트 7에 부여한 목표는 하나의 슬로건으로 요약됩니다 — “역대 가장 얇고 가장 강력한 갤럭시”.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삼성은 당시 기술의 한계를 넘어선 고밀도 배터리를 탑재했습니다. 배터리 용량을 키우면서 두께를 줄이기 위해 배터리 셀의 안전 마진을 최소화했고, 그 결과 제조 공정에서 미세한 결함이 발생했습니다.

결과는 전 세계적인 리콜이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자동차 안에서, 사용자의 주머니 속에서 기기가 불을 뿜었다. 미국 연방항공국(FAA)은 항공기 내 노트 7 반입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삼성은 결국 출시 두 달 만에 노트 7을 단종시켰고, 손실액은 엄청난 수준이었습니다. 황소의 크기를 흉내 내기 위해 자신의 몸체가 감당할 수 없는 내압을 만든 개구리 — 그것의 물리적 결말은 폭발이었습니다. 물론 이후 실패에서 얻는 교훈은 제품을 더 경쟁력 있게 했습니다.


이 사건이 디자인 윤리의 관점에서 더욱 비극적인 이유는 노트 시리즈 자체가 아이폰과 다른 정체성으로 출발했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큰 화면, 스타일러스 펜, 생산성 도구로서의 스마트폰 — 이 정체성은 노트 시리즈만의 것이었습니다. 그 정체성을 끝까지 밀고 갔다면, 황소를 흉내 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자동차에고 기능에 기능을 위한 기능에 의한 경우가 생깁니다. 분명 몇 가지 사례에 의해 검증되었다고 생각한 기능을 위해 디자인이 진행되고 제품화되었으나 오히려 고객의 취향에는 맞지 않는 것일 경우가 생깁니다. 그래서 더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Juicero — 복잡성 자체가 가치라는 착각

2016년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Juicero는 400달러짜리 인터넷 연결 착즙기를 출시했습니다.

창업자 Doug Evans는 이것을 “주방의 테슬라”라고 불렀습니다. 기기는 전용 주스 팩을 삽입하면 최대 4톤의 압력으로 눌러 주스를 추출한다고 했습니다. Wi-Fi에 연결해 앱과 연동되었고, 자체 QR 코드 인증 시스템을 갖추었습니다. 1억 2천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고, 구글 벤처스도 투자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2017년 블룸버그 기자들이 단순한 실험을 했습니다. 전용 팩을 손으로 그냥 쥐어짰고 동일한 주스가 나왔습니다. 기계 없이, 400달러 없이, Wi-Fi 없이. 이 보도가 나가자 Juicero는 하루아침에 실리콘밸리 과장의 상징이 되었고, 1년 만에 폐업했습니다.


Juicero의 실패는 기술의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설계의 실패였고 필요 혹은 가치의 혼란이었습니다. 더 정확히는, 복잡성을 가치와 동일시하는 개구리적 허영의 실패였습니다. 황소처럼 보이기 위해 쌓아 올린 기술적 장치들이, 실제로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사용자의 진짜 필요는 신선한 주스였습니다. 4톤의 압력과 Wi-Fi가 아니라.



Braun — 내쉼의 미학


1950년대 말 서독의 가전제품 회사 Braun은 디자이너 Dieter Rams를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했습니다. 당시 독일 가전 시장은 과도한 장식, 화려한 크롬 마감, 복잡한 노브와 버튼으로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 모두가 황소처럼 보이려 했습니다.


Rams는 반대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그가 제시한 디자인 원칙 10가지는 하나의 정신으로 수렴합니다 — “Less, but better(적게, 그러나 더 낫게)”. 그는 제품에서 무언가를 추가하기 전에 먼저 물었습니다. “이것이 정말 필요한가? 이것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가?” 대답이 아니오라면 그것은 제품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Braun의 계산기, 면도기, 오디오 시스템은 경쟁사 제품보다 기능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각각의 기능이 어디 있는지를 설명 없이도 알 수 있습니다. 손에 쥐었을 때 그 무게와 질감이 정직했습니다. 켰을 때 소리가 예상 가능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Braun의 제품들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영구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조너선 아이브(Jonathan Ive)는 아이폰을 디자인할 때 자신이 가장 많이 참고한 것이 Dieter Rams의 작업이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개구리가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했을 때 — 황소들이 그 노래를 배우러 온 것이 아닐까요.



MUJI — 비어 있음으로 팽창하기


1980년 일본에서 탄생한 MUJI(無印良品, 무인양품)는 이름 자체가 철학입니다. ‘상표 없는 좋은 물건’. 브랜드 로고 없음, 불필요한 색상 없음, 과도한 포장 없음. 세이유(Seiyu) 슈퍼마켓의 자체 브랜드로 시작한 이 라인은 처음부터 황소가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일본 소비재 시장은 소니, 파나소닉, 카시오 같은 황소들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광고, 복잡한 기능, 강한 브랜드 아이덴티티. MUJI는 그 반대편에 섰습니다. 텅 빈 선반처럼, 무인도처럼, 비워냄으로써 존재를 드러내게 됩니다.


오늘날 MUJI는 전 세계 31개국 1,000개 이상의 매장을 가진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MUJI가 가장 강력하게 표방하는 것은 ‘없음’ — 로고 없음, 과잉 없음, 허영 없음입니다. 팽창하지 않음으로써 황소보다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한 개구리. 그것이 MUJI의 역설입니다.



다이슨 — 엔지니어링이라는 정체성의 고수


1993년 James Dyson이 백리스 청소기를 출시했을 때, 기존 시장의 황소들 — 후버(Hoover), 일렉트로룩스(Electrolux) — 은 이를 무시했습니다. 진공 백 없는 청소기는 시장이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Dyson은 자신의 특허를 이들 대기업에 팔려했으나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Dyson은 황소들의 판단을 모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 엔지니어링을 미학으로 만드는 사람. 투명한 통으로 먼지가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Dyson만의 언어였습니다. 오늘날 Dyson은 청소기 시장을 재편했고 헤어케어, 조명, 공기청정기까지 자신의 엔지니어링 미학을 확장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Dyson이 확장했을 때 그 방향이 항상 동일한 원점에서 출발했다는 점입니다 — ‘내부 구조를 보여준다, 기계적 원리를 미학으로 만든다’. 이것이 황소를 모방한 팽창과 자기 본질에서 출발한 성장의 차이입니다.



패션 디자인 — 실루엣이 말하는 진실


패션은 어쩌면 이솝 우화의 개구리가 가장 자주, 가장 극적으로 등장하는 영역일 것입니다. 패션 산업은 구조적으로 ‘더 크게 보이고 싶은 욕망’을 착취합니다. 매 시즌 새로운 황소가 등장하고, 그 황소를 모방하는 수십 개의 개구리들이 배를 부풀립니다. 그리고 그 결말은, 이솝이 예언한 대로, 언제나 같습니다.



발렌시아가 — 과장이 정체성이 될 때


Cristóbal Balenciaga는 20세기 최고의 쿠튀리에 중 하나였습니다. 그의 재단 기술은 완벽한 건축적 구조를 추구했습니다 — 과잉 없이, 허영 없이, 오직 형태의 완성만을 위해. 코코 샤넬은 그를 “우리 모두의 스승”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브랜드가 Demna Gvasalia(뎀나 바잘리아)의 손에 넘어간 2010년대 후반, 발렌시아가는 다른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거대한 로고, 의도적인 추함(ugliness as aesthetic), 아이러니의 미학. 패딩을 지나치게 부풀린 재킷, 굽이 10인치에 달하는 플랫폼 부츠, 쓰레기봉투를 형상화한 핸드백. 이 도발은 처음에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MZ세대가 열광했고 매출이 급증했습니다.


그러나 2022년, 아동을 성적으로 암시하는 광고 논란이 터졌습니다. 발렌시아가는 즉각 사과했지만 이미 브랜드에 대한 신뢰는 균열을 일으켰고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과장이 정체성이 되는 순간 그다음 단계는 더 큰 과장뿐이라는 것입니다. 매 시즌 더 도발적이어야 하고, 더 충격적이어야 하고, 더 크게 배를 부풀려야 합니다. 그 구조는 지속 불가능합니다. 발렌시아가의 매출은 이후 수년간 하락세를 기록했고, 브랜드의 정체성 자체에 대한 내부 검토가 이루어졌습니다.


창립자 발렌시아가가 지켜낸 것 — 형태의 정직함, 재단의 완성, 과잉 없는 우아함 — 이 브랜드가 그 이름을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황소를 흉내 내기 시작한 것은 그 이름을 배신한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패스트패션 — 황소의 걸음을 따라 하다


2000년대 ZARA와 H&M이 주도한 패스트패션모델은 그 자체로 하나의 황소였습니다. 주 2회 신상품 입고, 트렌드 발생 2주 안에 제품 출시, 전 세계 수천 개 매장. 이 모델은 기존 패션 산업의 규칙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문제는 수백 개의 작은 브랜드들이 이 황소를 맹목적으로 모방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ZARA가 그 모델을 구축하기까지 40년간 쌓아온 공급망 인프라, 물류 시스템, 데이터 분석 역량을 이해하지 못한 채 오직 ‘빠른 회전’이라는 외형만을 따라 했습니다. 더 자주 신상을 올리고, 더 싸게 만들고, 더 많은 스타일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2010년대 후반, 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MZ세대의 가치 소비 전환이 시작되었습니다. 패스트패션의 환경 파괴가 미디어에서 집중 조명을 받았습니다. 그 압박은 황소인 ZARA와 H&M도 흔들었지만, 그들을 맹목적으로 모방했던 중소 브랜드들은 더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에게는 황소가 위기를 버티는 데 필요한 규모의 경제도, 브랜드 자산도 없었습니다.

황소가 강한 이유를 이해하지 않고 황소의 걸음만 따라한 개구리들. 그 결말은 이솝이 예고한 바 그대로였습니다.



마르젤라 — 황소라는 개념을 해체하다


1988년 Martin Margiela는 벨기에 앤트워프 출신의 신진 디자이너로 파리 패션위크에 데뷔했습니다. 그의 첫 번째 쇼는 당시 기준으로 충격이었습니다. 런웨이는 파리의 허름한 골목이었고, 모델들은 맨발이었으며, 초대장은 찢어진 종이 조각이었습니다. 봉제선이 겉으로 드러난 재킷, 의도적으로 분해된 드레스, 얼굴을 완전히 가린 헤드피스등 다른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Margiela는 황소를 흉내 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황소라는 개념 자체를 해체했습니다. 패션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럭셔리란 무엇인가, 왜 우리는 이렇게 입어야 하는가 — 이 모든 질문을 옷이라는 매체로 던졌습니다. 브랜드 레이블에는 이름도, 로고도 없었습니다. 하얀 천 레이블에 숫자 0~23이 동그라미로 표시된 것이 전부였습니다. 황소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로고를 그는 애초에 지워버렸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Maison Margiela는 패션사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이름 중 하나입니다. 그가 남긴 유산은 특정 실루엣이 아니라 패션을 대하는 태도 자체였습니다. 개구리가 자신의 크기를 받아들이고 그 크기로 세계관을 만들었을 때, 그 세계관은 황소들도 흡수할 수 없을 만큼 독자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르메르 — 조용한 부피


Christophe Lemaire의 이력은 화려합니다. 라코스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 에르메스의 여성복 수석 디자이너를 역임했습니다. 에르메스 — 그것은 패션계에서 황소 중의 황소입니다. 그는 그 황소의 뿔 바로 옆에 섰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2010년 자신의 브랜드 Lemaire를 론칭하면서 그가 선택한 방향은 반대였습니다. 럭셔리 마케팅 없음, 시즌 트렌드와의 경쟁 없음, 스펙터클한 런웨이 없음. 절제된 색채(아이보리, 카키, 브라운, 흑), 정직한 소재(리넨, 울, 코튼), 인체를 감싸는 자연스러운 실루엣. “옷은 사람을 지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습니다.


오늘날 Lemaire는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의 선구자로 꼽힙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2022년 이후 패션계 전체가 이 방향으로 이동했다는 점입니다. 로로피아나, 아크네 스튜디오, 토즈 — 황소들이 개구리를 모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팽창하지 않음으로써 중력을 얻은 개구리. 가장 역설적이고 가장 아름다운 승리입니다.



요지 야마모토 — 검정의 철학


1981년 Yohji Yamamoto와 Rei Kawakubo(꼼데가르송)가 파리에 진출했을 때, 파리 패션계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내놓은 것은 화려한 색채도, 관능적인 실루엣도 아니었습니다. 검정. 비대칭. 해어짐. 불완전함.


당시 파리 언론은 이것을 “히로시마 시크(Hiroshima chic)“라고 비웃었습니다. 서구 패션의 황소들은 이 동양 개구리들을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야마모토는 물러서지 않았고 황소들의 기준 — 완벽한 프로포션, 여성성의 과시, 럭셔리 소재의 과잉 — 이 전제 자체를 거부하며 자신의 미학을 밀어붙였습니다.


오늘날 Yohji Yamamoto는 패션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이름 중 하나입니다. 그의 검정은 황소들의 화려함보다 더 오래, 더 깊이 기억됩니다. “완벽한 옷이란 입는 사람의 삶이 스며들어 변해가는 옷”이라는 그의 말은 과잉의 시대에 가장 급진적인 선언이었습니다.



디자이너에게 — 개구리의 지혜


개구리와 황소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개구리는 처음부터 이미 완성된 존재였습니다. 연못의 수질을 지키고, 벌레를 잡고, 그 생태계 안에서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했습니다. 개구리의 비극은 크기가 작다는 것이 아니라 — 그것을 부끄러워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디자이너들은 매일 황소를 봅니다. 애플의 생태계, 나이키의 글로벌 마케팅 파워, 루이비통의 브랜드 자산. 그것들은 눈부시게 크고, 무겁고, 강합니다. 그리고 우리 손에는 스케치북이 있고, 작은 스튜디오가 있고, 27인치 화면이 있습니다. 그 앞에서 자신의 작업을 부끄럽게 여기는 순간 — 숨을 들이마시기 시작하는 순간 — 이솝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가 됩니다.


가장 위대한 디자인들은 황소를 모방하지 않았습니다. 디터 람스의 계산기는 IBM 메인프레임이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MUJI의 노트는 몰스킨이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마르젤라의 드레스는 샤넬 슈트가 되려 하지 않았고 야마모토의 검정은 이브 생 로랑의 화려함이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연못 안에서 숨을 내쉬었습니다 — 그리고 그 내쉼 속에서 역사가 되었습니다.


이솝이 살았던 시대와 지금이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늘날의 황소들은 화면 속에 살며 24시간 우리를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인스타그램 피드, 트렌드 리포트, 경쟁사 분석 대시보드 — 이 모든 것이 개구리에게 끊임없이 황소의 크기를 상기시킵니다. 그 속에서 자신의 연못을 지키는 것, 자신의 소리로 노래하는 것 — 그것이 오늘날의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가장 어렵고 가장 중요한 역량입니다.



개구리는 황소가 될 수 없다. 그러나 개구리는 황소가 될 필요도 없다. 개구리는 개구리의 정체성으로 성과를 내게 됩니다.


진정한 디자인의 성실함은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가장 완전한 형태로 실현하는 데 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은 패배가 아니며 그것은 가장 정직한 형태의 용기입니다. 개구리가 배를 부풀리지 않고 연못 속에 머물렀다면 — 그것이야말로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연못은 계속해서 맑았을 것입니다.


누군가 혹은 더 나은 어떤 것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가치에 기반한 비젼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