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깨기
간화선(看話禪) 또는 간화두선(看話頭禪),
볼 간(看), 말씀 화(話), 머리 두(頭), 고요할 선(禪)
불가의 선방에서 하는, 화두를 들고 고요함으로 젖어드는 수행이란다.
말 대가리를 보는 참선 수행이라던가....
말 대가리, 말의 앞에 무엇이 있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인해 그런 말로 표현되었을 것이다.
근데 그 생각은 어디서 나왔을까?
나의 행복한 또는 꿀꿀한 마음(상태)으로 인해 그런 긍정적인, 때론 부정적인 생각들이 일어나게 되고,
그런 생각들이 말로 터져 나왔으니, 결국은 시발점인 마음을 살펴봐야 본질을 알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직지인심(直指人心), 마음을 바로 뚫어 본다.
어떤 물건을 보고, 물병이란 말로 표현하는 순간, 우리의 사고는 물을 담는 용기로 한정되고 만다.
말에 메인다고 해야 하나? 고정관념에 빠져, 내가 맞다는 아집에 빠져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랄까?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그 물건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면, 깨소금도 담아둘 수 있고, 밀가루 반죽을 밀어 칼국수를 빚기도 좋고, 유리로 만든 놈이라면, 밤길 치한방어용 호신무기로도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쓰기에 따라, 마음먹기에 따라, 무한한 응용이 가능함에도 고정된 생각, 한정된 언어에 갇혀서 그 무한의 가능성(空)을 보지 못하고, 고통받는다. 비워져야 비로소 보이고, 채울 수 있는 데 말이다.
오래전 읽었던 소설 만다라에 등장했던 화두, "병 속에 갇힌 새"가 다름 아닌 우리 모습이란다.
원래 있지도 않은 병 속에 스스로 갇혀서 어떻게 하면 병을 깨뜨리지 않고 병에서 나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물고 괴로워한다. 생각은 생각일 뿐인데...
그 무엇도 바꿔놓지 못하는데 말이다.
우리는 이런 어리석음 속에 살고 있다
오만가지 생각으로 스스로 머릿속을 꽉 채워 놓았으니, 지금 여기 이 순간에 펼쳐진,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 광경을 하나도 보지 못한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 그 속을 유심히 살피는 오리 떼와 두루미, 바람에 하늘거리는 이름 모를 풀잎들,
바삐 오가는 사람들...
알프스 산맥인들, 파리 에펠탑인들, 하얀 백사장인들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몸뚱이만 와 있을 뿐.
어차피 온갖 잡동사니들로 가득 차, 지나가버린 과거에 대한 미련, 후회,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
두려움이 지금 이 순간을 가로막고 있으니, 장님일 뿐이고, 우물 안 개구리, 병 속에 스스로 갇힌 새일뿐이다.
Mindful(알아차림)이 아니고 Mind Full(생각으로 가득 참)이다.
이런저런 생각에서 벗어나 천천히 눈을 뜬다.
보려던 생각에서 벗어나자, 이제 어렴풋이 다시 보인다.
참 아름답다!
감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