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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태 May 28. 2024

텃밭에서 연기를 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상추 심은 데 상추 난다.


그럼 잡초는?

어딘 가에서 씨가 날아왔으니 났을 고, 흙이 있어 뿌리내리고, 비 먹고, 햇볕 받아 싹 나고, 잎도 난다.


씨 또는 모종이 직접적 원인인 인(因)이라면, 햇볕과 흙, 비는 간접적 조건인 연(緣)이다. 씨를 뿌리지 않았어도 바람 따라 날아왔기에 뿌리내리고, 흙, 물, 불, 바람의 환경적 조건이 맞아 싹트고, 잎이  나는 법이요, 이중 어느 환경이 맞지 않았으니, 뿌리내리지 못하거나, 싹 틔지 못하거나 잎 나지 못한 것이니, 이것이 연기 (인과 연의 화합에 의한 생기)다.


탓할 그 무엇도 존재치 않는다. 정확히 인이 있었고 연이 닿아 인이 과로 결과 지었으니 인과다.  잘못된 인이나 연을 만나 악업으로 귀결되니 인과응보인 셈이다. 제대로 씨 뿌리고 정성껏 물 주노라면 선업으로 귀결되리니, 이 또한 인과응보, 연기법이다.


“씨가 나빠서…”, “밭이 나빠서…” 서로 남 탓만 한다. 씨가 인이라면 밭은 연이다. 씨가 타고 난 인이란 조건이라면, 밭은 또 다른  조건인 연이다. 벼가 상추나 버섯이 될 수 없듯. 각각 타고난 업성은 바꿀 수 없으나, 어떤 환경을 만나는가에 따라서 그 씨의 결실, 작황은 달라질 수 있다. 사주는 못 바꿔도 팔자는 바꿀 수 있다 했지 않은가?


맹모삼천. 좋은 환경을 찾아 옮기는 노력도 이 때문이다. ‘좋음’ 이란 의미 또한, 좋고 나쁨의 양분법이 아니다. 벼 에게 좋은 환경은 물이 채워진 논, 상추나 감자에게는 물이 잘 빠지는 밭, 버섯에게는 그늘지고 습한 음지다. 각각에게 적합한 조건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척박한 야산  한 모퉁이를 괭이질하고, 삽질도 하며 흙도 북돋아 주고, 돌도 골라서 드디어 나름의 고랑과 이랑이 어우러진 밭을 만들었다.


모종  한 뿌리 한뿌리도 허투루 함이 없다. 한 삽 한 삽 주의를 기울여 심어 간다. 가끔씩 물도 주고, 잡초도 고르며 돌아보지만, 어찌 보면 거기 까지다.

홍수가 이어질 수도, 태풍이 휩쓸고 갈지도, 불볕더위로 가뭄이 이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자연(自然)이다.

자연, 스스로 그러한 듯하나, 다시 돌아보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기 보다는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매 순간 맞게 되는 지금이라는 과정에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듯하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랄까? 인간인 내가 할 수 있는 인(因)에 최선을 다 할 따름이다. 결과는 하늘의 뜻, 수많은 다른 인연들과의 상호 의존관계에 따라 결과됨을 의미한다고 해석해 본다.


그러니, “해서 뭐 해?”가 아니다.
 씨를 뿌리지 않았는데 열매가 맺을 순 없다. 처녀가 아이 낳을 수 없진 않은가?


정성을 다해 맺은 열매가 또 다른 씨가 되어 윤회를 거듭하기에 타고난 씨를 원망하기보단, 원망받지 않을 새로운 씨를 꿈꾸며 오늘에 열심인 이유다.


지금 이 순간은 나 자신은 물론 주위의 모든 과거가 포함되고 있고, 현재의 존재는 나 자신과 주위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파릇파릇 올라오던 어린잎들이 어느새 먹음직스러운 크기의 상추로 나를 맞이한다. 커져버린 잎들을 속아내고, 속잎들에게 자리를 마련해 준다. 뜨거운 햇볕아래 어느새 이마엔 구슬땀이 맺혀가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텃밭삼매다.

지금 이 순간 만져지는 흙과 잎들의 속삭임이 손 끝에 전해온다.
황홀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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