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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Dec 31. 2020

한국 (2016)

2020년에 돌아보는 2016년 여행

정말 오랜만이다. 11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으니. 그 당시 방문했을 때도 일 때문에 잠시 방문한 거라 제대로 여행을 다니지 못했었다. 그리고 이번에 어찌어찌 기회가 되어, 아니 기회를 일부러 만들어 2주간 다녀왔다. 9월 18일 호놀룰루를 출발해 10월 14일 돌아오는 일정이다. 오랜만에 가는 한국이라 마음이 약간은 설렐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남대문. 아참 숭례문이라고 해야 하지.


처가에서 3일을 보내고 서울 중심으로 나왔다. 사촌동생 부부와 점심때부터 한나절 이상을 함께 보낸 후 호텔에 짐을 풀었다. 사촌동생이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양수리 쪽의 평양냉면집이었다. 난 갈비탕을 먹었는데 냉면이 유명하다고 해서 한입 먹어봤다. 깔끔한 맛이었다. 한국에 와서 처갓집에서 먹은 집밥을 제외하곤 처음 음식점에서 하는 식사였다. 그리고 예술의 전당에 있는 테라로사에서 커피를 마시고 서초동 사촌동생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양재동(?)인가에 있는 농협 하나로 대형마트에 가서 소피가 사고 싶어 했던 나물 등을 산후 호텔로 왔다. 너무 오랜만이라 동네를 잘 모르겠다. 그냥 데려다주는 대로 가는 게 상책이다.



명동에는 중국 관광객이 엄청 많았다


남산의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가까운 명동으로 나갔다. 듣던 대로 중국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상인들은 심지어 우리도 중국 사람인 줄 알고 중국어로 안내했다. 한국말로 대답하니 상인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다. 아니다. 한국사람... 원래 무표정했었지. 옛날 기억이 하나둘씩 났다. 아~ 사람들이 너무 많다.            


 

명동성당. 서소문 회사에 다닐 때 가끔 왔던 곳이다


명동에서 사람들에 밀려다니다 보니 명동성당까지 왔다. 90년대 초 회사 다닐 때는 이 북창동 먹자골목에서 일주일에 두세 번은 점심을 먹은 것 같다. 북창동 쪽은 구체적으로 어떤 식당이었는지 생각이 잘 안 난다. 서소문, 순화동 쪽은 김치찌개 집, 삼치구이와 된장찌개가 정말 맛있었던 밥집, 처음엔 냄새 때문에 못 먹다가 나중엔 단골이 된 내장탕 집, 메밀 국숫집, 더운 여름 식후에 팥빙수 먹으로 자주 갔던 파리바케트 등 다 생각난다. 그게 벌써 25~6년 전의 일이다. 삼치구이 먹으러 그 밥집에 다시 가보고 싶지만 어딘지 알 수가 없다.     


다음날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서울시내 산책에 나섰다. 서소문에 있는 회사에 다닐 때 점심시간을 이용해 자주 찾았던 덕수궁에 들어갔다. 궁 밖은 많이 변한 듯한데, 궁 내부는 예전 그대로다. 달라진 것은 바로 나였다. 평일 점심식사 후의 짬을 이용해 잠시 산책하러 들렀던 푸릇푸릇한 20대 후반 청년의 모습은 간데없고 어느새 20년간 타국에서 살다가 잠시 방문한 한 중년의 남자가 벤치에 앉아 있다. 인생이란 참.          



덕수궁 정문


덕수궁 돌담길을 갈까 말까 망설이다 언제 또 가보겠나 싶어 그쪽으로 향했다. 배재학당, 이화여고, 정동교회, 러시아 대사관을 지나 성공회 성당까지 걸었다. 잠시 쉴 겸 성당 내부를 구경하러 들어갔다. 성당 입구에는 60대 초반의 아주머니가 한분 앉아 계셨다. 얼굴만 마주치고 그냥 나가기가 좀 그래서 그냥 지나는 말로 엉뚱한 질문을 했다. "성공회가 영국의 국교로 알고 있는데 로만 가톨릭과는 관계가...?"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다. 그 아주머니는 나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시더니 조금 더 나이 드신 분을 불러왔다. 한눈에 봐도 곱게 나이 드신 인텔리 할머니였다. 그 할머니는 나를 교회 곳곳으로 안내하며 교회 역사와 성공회 서울 주교에 얽힌 일화들을 줄줄이 이야기해주셨다. 처음에는 한 두 마디로 끝날 줄 알았는데 거의 한 시간에 가까운 개인 가이드가 된 셈이다. 그 할머니의 설명은 직접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 생생했다. 고마웠다. 헤어지면서 그분의 이름을 여쭤보긴 했는데 벌써 잊어먹었다.  



서울시청이 많이 변했다. 한국에 살 때는 시청에 들어가 볼 일이 전혀 없었다.


서울시청 바로 앞, 사람들이 곳곳에 앉아있다.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도 있고, 누워서 자는 사람도 있다. 한쪽 모퉁이에는 약 자판기처럼 보이는 것이 있어서 약도 자판기로 사나 보다 했는데 자세히 보니 마음을 치유하는 약을 파는 곳이다. 마음을 어떻게 치유할까?


공사 후 처음 보는 청계천.


한국을 떠날 때만 해도 청계천은 청계고가였다. 그동안 복원되어서 많이 달라졌다는 말을 들어서 직접 보고 싶었다. 청계고가였을 때 승용차로 달리던 생각, 좌우로 다닥다닥 보이던 수많은 가게들이 없어졌다. 시민들이 물가에 참새처럼 앉아있었고 주변에는 그들을 기다리는 음식점, 주점이 가득했다. 청계천 복원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최소한 도심에 이런 공간이 하나 마련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된다.    



예전에 자주 갔던 교보문고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월급의 10%는 책을 사는데 써야지... 그런 생각 때문이었는지 책을 많이 사서 읽을 수 있었다. 미국에 가느라고 지금은 그 많던 책들이 다 없어졌지만, 그때는 내가 번 돈으로 책을 사서 읽는 게 참 행복했다. 나에게 주는 선물 같았다. 만약 그때 월급의 10%를 떼어내서 책이 아니라 주식을 사고, 땅을 샀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잘살고 있지 않을까? 뭐 그랬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때 책을 읽으면서 행복했던 기억이 지금 생각해도 참 좋다. 비록 지금은 그때 읽었던 책의 내용을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럼 뭐 어떤가. 그때 은행에 취직한 한 친구는 월급을 모아서 땅을 샀다고 한다. 적어도 몇백 평은 된다며 은근히 자랑이다. 그 친구는 땅을 사서 행복할까?


                 

대학로 시위


도심지역을 한참 걸어 다니다 보니 다리가 아팠다. 연극을 보러 자주 갔던 옛날 일이 떠올랐다. 그래, 한국말로 공연하는 연극을 하나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났다. 대학로로 깄다. 대학로 지하철역을 나오니 시위가 한창이다. 노동시위인지 대학로 거리에 직장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현수막을 내걸고 땅바닥에 앉아있다. 지방에서도 단체로 많이 올라온 모양이다. 잠시 지켜보다가 연극표 예매하는 곳으로 갔다. 어떤 연극을 봐야 좋을까 생각하다가 낯익은 제목에 눈이 갔다. "심바새매" 옛날에 봤던 것이다. 내용은 생각이 잘 안 난다. 한번 더 봐야지 하고 그걸 샀다. 관객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배우들은 열심히 하는 듯했는데 몰입되지 않았다. 보다 보니 스토리가 약간씩 생각나기도 했다.         


남산


다음날 아침엔 남산에 올라갔다. 밀레니엄 힐튼이 남산 자락에 있으니 아침 운동하기 좋은 코스다. 천천히 걸으니 기분이 상쾌하다. 옛날에는 볼 수 없었던 자물쇠들이 많다. 연인들이 약속의 의미로 자물쇠를 걸어놓은 것이다. 남산 둘레길이 걷기에 참 좋다. 특히 지금 같은 가을 철에는 아직 단풍이 좀 이르긴 하지만 낙엽이 멋지다. 남산타워를 지나 반대쪽으로 내려가 봤더니 한옥마을이 나온다. 처음 보는 곳이다. 전에는 분명히 없었던 곳이다. 한옥이 살기는 불편하긴 하겠지만 멋지긴 하다. 최소한 미적인 면에서는 획일적인 아파트보다 백배 낫다.


창덕궁
한복을 차려입은 귀여운 아이들


사촌동생과 함께 창덕궁에 갔다. 미리 예약을 하고 가이드를 따라서 구경하는 것이라고 한다. 시간에 맞춰서 가보니 몇몇 일본 관광객들이 있었다. 우리는 처음에는 가이드를 따라다니다가 너무 설명이 지루해 가이드 없이 단독으로 다니기로 했다. 하와이에서 만난 적이 있는 줄리아 리 할머니가 사시던 낙선재도 구경했다. 한복을 빌려주는지 관람객들이 한복을 입고 구경을 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구리 코스모스 축제


전 직장선배와 연락이 되어 만났다. 식사를 하고 갈 곳이 있다며 교외로 빠져나갔다. 본격적인 시기가 약간은 지나긴 했지만 코스모스 축제가 열리는 구리다. 넓은 벌판에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내 사수였던 그 선배는 감성이 뛰어난 분이다. 차에서 비치체어를 꺼내 어깨에 걸어 메고는 코스모스 꽃길을 한참 걷다가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분의 처가 쪽에 물려준(?) 홍천의 시골집에 사는 개 이야기를 한참이나 해주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개 밥을 마련해 주려고 고깃국 같은 것을 사 가지고 가곤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 선배가 가면 엄청 반가워하는 모습을 설명하는데 눈에 보듯이 실감이 났다. 나도 어렸을 때는 개를 참 좋아했는데 나이 들면서 멀어졌다. 귀엽긴 하지만 만지는 것이 꺼려진다.

  

서강대 성 이냐시오 성당


처가에서 호텔로 돌아온 소피와 함께 남산 둘레길을 또 걸었다. 오후에는 신촌으로 갔다. 이화여대 앞과 홍대 앞 상점들을 구경하며 다녔고 카페도 들아가 봤다. 소피와 결혼식을 했던 서강대 내의 성 이냐시오관, 여기서 결혼식을 올릴 때만 해도 불과 2년 후에 하와이로 가서 살게 될 줄은 전혀 몰랐었다. 사람의 운명은 그렇다. 비록 현재에는 어려워 보이더라도 뭔가 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다면 더욱 관심을 갖게 되고 노력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원하던 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내 경우도 우연히 여행 간 후 하와이에 가서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생각이 바탕이 되어 불과 2년 후에 하와이로 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와서 20년 넘게 살게 될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다.


콘래드호텔, 여의도
콘래드 호텔, 룸에서 보이는 선셋


호텔을 여의도로 옮겼다. 호텔에 오래 머물 때는 한 호텔에만 오래 머무는 것보다 다른 호텔로 옮기는 것이 기분전환에 좋다. 밀레니엄 힐튼에서 일주일이면 충분하다. 여의도 콘래드 호텔은 깔끔하다. 나에게는 지리적으로는 남산 둘레길을 걸을 수 있는 밀레니엄이 좋지만 호텔시설 자체는 콘래드가 더 낫다. 호텔을 옮기기 전에 처가가 있는 김포로 가서 소피와 함께 어머니가 계신 용미리 묘소로 갔다. 사촌동생에게 가자고 하면 쉽게 갈 수 있겠지만 그냥 소피와 둘이서 가고 싶었다. 랜트카를 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한국에서 운전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 덕분에 김포에서 벽제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버스를 몇 번 갈아타며 어렵게 갔다. 버스를 타고 천천히 찾아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기로 마음을 먹으니 오히려 그렇게 가는 게 좋았다. 용미리 모소에서 나올 때는 나오는 차가 없어서 조금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장모님, 소피와 함께 김포에 있는 장인어른의 모소도 찾았다. 결혼하기 훨씬 전에 돌아가셨기에 한 번도 뵙지도 못한 분이다. 그래서 아무런 느낌도 없다. 사람이란 그런 것이다. 자신과 얽힌 뭔가 직접적인 경험이 있어야 느낌도 감정도 생기는 법이다.


여의도


여의도에서는 남산처럼 둘레길이 없으니 아침에 산책할 만한 곳이 마땅찮다. 한강공원, 여의도공원을 걸었다. 가까운 KBS 도 방문해 구경했고, 국회의사당 도서관에도 들어가 봤다. 군대 시절 있었던 서울대학교에도 갔었다. 거의 3년 가까이 있었던 곳이니 옛날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군대 동기들과 선후배 동료들 얼굴이 생각났다. 지금은 다들 어디서 뭐하며 살고 있을까? 아무리 괴롭고 힘든 시기도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리 기쁘고 행복한 일도 지나고 나면 그냥 생각날 때 잠시 웃음 짓게 하는 다 지나간 추억일 뿐이다. 서울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은행나무 낙엽을 치우던 일, 눈을 치우던 일, 관악산 연주대까지 오르던 일, 신림동 순대 사 먹던 일 등이 여전히 기억에 선하다.


  

테라로사 양평


친가 쪽 식구들을 여의도에서 만나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셨다. 어릴 땐 제일 가까운 형제들이었어도 성장하고 오래 떨어져 사니 조금 서먹했다. 콘래드에 방을 하나 더 예약해 사촌동생 식구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친하게 지내던 중학교 동창들을 오랜만에 만나 시내에서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했고, 대학 친구들을 여의도에서 만나 취하도록 마시기도 했다. 신림동에 살고 있는 직장 선배와 신림동에서 만나기로 했기에 전날 숙취로 고생하면서도 만나러 나갔다. 또 술을 마시자고 했지만 나는 한잔도 못 마시고 해장국만 먹었다. 내 사수였던 직장선배와는 부부동반으로 또 만났다. 선배의 부인도 예전에 하와이로 가족여행 온 바 있어 안면이 있다. 내가 커피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양평 테라로사로 함께 갔다. 가는 길에 교외의 음식점에 들러 저녁을 먹었다. 한국에는 이렇게 교외에 예쁘장한 음식점, 주점이 참 많아서 좋다.


강화도 전등사


마지막 날에는 처가가 있는 김포로 갔다가 강화도 전등사에 갔다. 절도 구경하고 동동주와 막걸리도 먹었다. 그러고 보면 옛날에 강화도에 여러 차례 왔었던 것 같다. 교외로 다니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강화도는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당일 코스로 좋았다. 나중에 여기서 동동주 집이나 하나 하면서 살까 생각한 적까지 있을 정도다. 감자전과 동동주 먹는 것은 좋지만 그런 가게를 운영하려면 웬만한 인내심 없이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 곳에 주저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생활은 나에게는 전혀 맞지도 않을 것이다.


호텔로 돌아와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가방을 다시 싸고 하와이로 돌아가야 한다. 2주간의 짧은 기간 동안에 참 여러 곳을 갔었고, 많은 사람을 만났다. 20년의 세월이 지난 만큼 환경도 사람들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사람들의 겉모습과 지위는 달라졌지만 아직도 그들에게서 옛날 내가 알고 있던 바로 그 사람들임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변하면서도 잘 변하지 않는다. 다음에는 언제 또 한국을 방문할 수 있을까? 10년까지 안 걸릴 수도, 더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또 올 것이 분명하다. 아직도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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