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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Dec 28. 2020

라스베이거스-세도나-그랜드캐년 2015

2020년에 돌아보는 2015년 여행


20015년에는 어디를 갔나 생각해봐도 생각이 잘 안 난다. 기록을 해놓지 않은 것이다. 어딘가에 뭔가 있겠지 하고 한참 찾아보니 단 한 줄의 기록이 있다. 

"Travel 10/4-12 vegas-flagstaff-sedona-grand canyon-vegas "

이걸 근거로 지나간 여행기를 쓰려니 막막하다. 구글 포토에 저장된 사진을 보면서 기억을 더듬어봐야겠다. 띄엄띄엄 생각나겠지만 그 기억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써야겠다. 앞으로 여행을 다녀오면 꼭 여행기든 메모든 나중에 돌아볼 수 있는 뭔가를 남겨놓아야겠다는 마음이 절실하다. 


  



분수쇼로 유명한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


저장된 구글 포토를 보니 라스베이거스로 떠나기 이틀 전 차 사진이 있다.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를 누가 살짝 긁어놓은 거다. 옆쪽에 세워진 차를 살펴보니 자국이 있다. 내 차의 페인트가 그 차에 묻어있는 거다. 폴리스 리포트를 했다. 여행을 앞두고 마음은 좀 찝찝한데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여행에 차질을 줄 수는 없는 일이다. 마음속에서 털어버렸다. 그리고 떠났다.


라스베이거스에는 밤에 도착한 것 같다. 첫 사진의 풍경을 보니 스트립이다. 호텔을 어디로 잡았는지 지금 기억하려니 확실치 않다. 우리는 주로 힐튼으로 가니 아마 스트립의 트로피카나 (Tropicana) 아니면 핸더슨의 힐튼 가든인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짐을 풀고 바로 스트립으로 나왔는지 벨라지오 호텔 분수쇼가 저장되어 있다. 신기하게도 분수쇼가 시작되면서 나온 노래가 지금도 생각난다.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이다. 마음이 경쾌해진다. 차 긁힌 찜찜함이 싹 사라진다. 그때 보스턴에 있는 세라에게 전화를 했던 기억도 있다. 2015년 10월이면 세라는 이제 막 3학년을 시작할 무렵이다. 목소리 톤에서 자기도 가고 싶은 듯 조금 부러워하는 느낌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이 소피와 단둘이서 하는 첫 여행인 것 같다. 아니다. 전에 시애틀과 포틀랜드에 갔을 때가 처음인 것 같다. 세라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우리의 여행에 대부분 같이 따라다녔다. 굳이 우리 까리 가겠다고 떼놓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렸을 때 데리고 다니던 여행하고 다 커서 함께 가는 여행은 많은 차이가 있다. 어렸을 때보다는 다 큰애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사실 더 힘들다. 특히 세라가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라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나랑 가끔 부딪치기도 한다. 소피는 상대의 의견을 많이 존중해주는 성격이라서 (따라다니면서도 즐긴다) 중간에서 어느 쪽에 맞춰야 할지 헷갈릴 것이다. 


 

후버댐


다음날 랜트카를 해서 9일 일정을 시작했다. 동쪽으로 쭉 가서 그랜드캐년을 돌아오는 것이다. 먼저 후버댐에 갔다. 후버댐 사진 전에 한식당 음식 사진이 있는 것을 보니 라스베이거스 어딘가에서 아침으로 설렁탕을 먹은 것 같다. 기억에는 두 곳의 식당이 떠오르는데 그중 한 곳 같다. 두부집이 있어서 갔다가 아직 문을 열지 않아서 근방의 다른 한식집에 갔던 것 같다. 후버댐은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에서 차로 40분 거리다. 그때 비가 조금 왔었고, 원래 일정에는 없었지만 지나다가 잠깐 들렀다. 규모가 엄청났었다는 기억이 난다.


간 행적을 보니 먼저 애리조나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플래그스탭(Flagstaff) 에 호텔을 잡은 듯하다. 그곳을 베이스로 삼아 그랜드캐년 일대를 여행하는 일정을 세운 듯하다. 중간에 애리조나의 루트 66 (Route 66)를 따라서 운전하다 기념품점을 발견했다. 루트 66은 하이웨이가 생기기 이전에 미국의 여러 주를 잇는 메인 도로로 사용되었던 길이다. 메인 도로이니 그 주변으로 비즈니스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이웨이가 새로 생기면서 잘 이용되지 않는 도로로 남게 되었다. 그래도 옛날의 명성이 있어서 지금도 일부러 루트 66을 따라서 여행하는 낭만파 여행객들이 적지 않다. 우리는 랜트카로 운전하면서 우연히 루트 66을 지나게 되었고, 중간에 옛날에는 주유소로 사용되었던 기념품점을 우연히 방문하게 된 것이다.


 

루트 66, 옛날 주유소


내가 미국 태생의 미국인이었다면 이런 곳을 지나면서 옛것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을 진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다 쓰러져가는 듯한 건물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 진다. 늘 그렇듯 옛것은 새것에 밀려 설곳이 없어진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장면은 가슴 한구석에 아련함을 준다. 아예 철거하지 않고 옛날 그대로 남겨두는 이유는 그런 아련함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것일까? 


플래그스탭에서도 아마 힐튼호텔이나 햄튼인에 숙소를 정했을 것 같다. 지금 기억으로는 플래그스탭은 지대가 높은 곳이었다. 그걸 느낀 것은 어지러움 때문이 아니라 도시에 들어서면서 기온이 갑자기 낮아지는 느낌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이미 늦가을이나 초겨울 차림이었다. 그다음 사진은 우파키 (Wupatki)라는 곳이다. 우파키는 AD 500년경 인디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곳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이 인디언 유적지는 반경 50마일의 크기에 100여 개 이상의 집이다. 물론 집이라고 해야 구덩이처럼 생긴 유적지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집단 서식지다. 이들은 주변을 사냥하며 여기에서 살았을까? 유적지에 가면 늘 느끼는 세월의 무상함이 다시 느껴진다. 우리가 현재라고 부르면서 지금 사는 곳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유적지라 불릴 것이고, 후대인들이 와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그들도 무상함을 느낄 수 있을까? 그런 관념조차 없어질까? 


구름에 가린 그랜드 캐년


다음 사진부터는 그랜드캐년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아뿔싸! 날씨가 흐리면서 구름이 잔뜩 끼었다. 잘 안 보인다. 그랜드캐년은 감상하는 포인트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우리는 차를 가지고 있어서 그랜드캐년 감상 포인트를 웬만하면 다 들렀다 갈 생각이었다. 사진은 구름이 아주 많이 가렸을 때이지만 구름 속에서 살짝살짝 얼굴을 내미는 경치는 일품이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포인트는 오히려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너무 큰 기대를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위에서 보는 것보다는 아래로 내려가서 올려다보는 것이 훨씬 웅장한 느낌을 줄 것 같았다. 비가 오는데도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우비를 입고 구경하고 있었다.       


     

El Tovar Hotel and restaurant


그랜드캐년에서 가장 전망 좋은 레스토랑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엘 토바르(El Tovar)를 꼽겠다. 호텔과 식당을 겸하고 있는 이곳은 규모가 큰 오래된 곳이다. 무엇보다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좋았다. 우리는 그냥 식당을 찾다가 발견한 곳인데 알고 보니 꽤 유명세가 있는 곳이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넓은 공간이 사람들로 꽉 차있어서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조금 기다리다가 자리를 안내받은 것 같았다. 재미있는 건 거기서 뭘 먹긴 했는지, 먹었으면 뭘 먹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난다. 어떤 방으로 안내를 받아서 자리에 앉은 것 같은데 그랬으면 분명히 뭔가 먹었을 텐데 생각이 안 난다. 내가 먹는 것에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지 않아서일까? 와인을 마신 것 같기도 한데... 기억력이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 다음에 오면 이 호텔에서 한번 묵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세도나, 애리조나

 

다음 날 세도나에 갔다. 세도나는 경치가 멋진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사암(Sandstone)으로 이루어진 바위들이 오렌지색, 붉은색을 내뿜는 모습이 일품이다. 이런 기묘하게 생긴 산처럼 큰 바위들에서는 볼텍스(Voltex)라는 기(자기장)가 뿜어져 나온다고 한다 특히 볼텍스가 가장 강력하다고 하는 벨락 (Bell Rock)에 올라가 봤다. 나무들이 뒤틀려있어서 뭔가 기가 있긴 한 것 같은데 뭐가 확실히 다른지 잘 느낄 수는 없었다.   


홀리 크로스 채플


바위 위에 세워진 작은 교회 홀리 크로스 채플 (Chaple of Holy Cross) 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아주 작은 채플인데 바위 위에 십자가 모양으로 서있다. 밖에서 보면 교회 건물 자체가 십자가 모양이다. 그 채플 안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너무 아릅답다. 저절로 경건함이 든다. 그리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선셋이 멋지다는 에어포트 메사에 올랐다. 그런데 여기서 자리 잡고 선셋을 볼 것인가 호텔이 있는 플래그스탭으로 돌아갈 것인가 갈등이 생겼다. 선셋을 구경하는 것은 좋은데 플래그스텝에서 세도나로 오면서 운전했던 길이 너무나 험악했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해가 진 후 헤드라이트에만 의지해 꼬불꼬불한 산길을 운전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선셋이 아니라 그 전의 경치만 감상하고 할 수 없이 언덕을 내려왔다. 만약 지금이라면 선셋을 보고 내려왔을까? 아무리 고생이 되더라도? 순식간에 계곡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는데도? 아니 그보다는 세도나에서 적어도 1박을 하는 일정을 잡는 것이 나을 것 같다.  


Grand Canyon again


다음날에는 월넛 캐년 (Walnut Canyon National Monument)에 갔다. 이곳도 인디언 부족들이 AD 1100 년경부터 살던 곳이다. 이곳은 'Sinagua'라고 불리는데 스페인어로 '물이 없는'이라는 뜻이다. 어떻게 물이 없는 곳에 살았을까? 비가 오면 그 빗물을 엄청 아끼며 살았을 것이다. 계곡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데 메아리가 잘 울릴 정도로 바위산으로 빙 둘러 형성된 재미있는 지형이다. 가만히 있으면 고요함이 적막감마저 준다. 이곳에 살던 인디언들은 AD 1250년 경에 갑자기 사라졌다고 한다. 학자들은 여러 가지 추측을 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물이 없어서"와 "다른 부족의 침입이 두려워서"가 유력하다고 한다. 그때 살았던 사람이나 기록이 없으니 추측에 불과할 것이다. 이곳 거주지역의 재미있는 점은 계곡의 비탈진 바위산에 구멍을 뚫고 거주한 점이다. 80여 개의 동굴형 거주지가 남아 있다. 


다음날 날씨가 화창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랜드캐년을 다시 올라갔다. 날씨가 좋을 때 구름 걷힌 그랜드캐년을 보기 위해서다 불과 이틀 만에 다시 찾는 곳이어도 또 다른 느낌이 났다. 그런데 이틀 전 구름 사이로 살짝살짝 보였던 경치가 더 멋진 듯했다. 구름이 주는 신비로움 때문이었다.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


아주 먼 길을 운전해 라스베이거스로 돌아갔다. 벨라지오 호텔의 멋진 실내정원도 구경했고, 유명하다는 시저스 뷔페 식사도 먹어봤다. 벨라지오 분수쇼도 또 보고 카지노에도 갔다. 라스베이거스에서 호텔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호텔, 칵테일, 카지노, 쇼... 라스베이거스에서는 할 것이 많다. 자연 경치만은 못하지만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즐길 것을 참으로 많이도 만들어 놓았다. 역시 라스베이거스다. 세도나에서 본 레드락이 생각이 나 하루는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에서 20여분 거리에 있는 레드락 캐년에 가봤다. 차를 타고 빙 둘러가면서 볼 수 있고 중간에 내릴 수도 있는 곳이다. 세도나까지 멀리 가지 않고 레드락을 보고 싶으면 이곳도 당일치기 여행으로 좋은 것 같다.


레드락
라스베이거스에서 묵었던 힐튼 트로피카나 


어느덧 9일 일정의 여행이 끝났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호텔에서는 그야말로 잠만 자고 나갔다. 이런 수영장에서 반나절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겠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도 각 호텔들마다 구경할게 하도 많아서 수영장에 머물 틈이 없었다. 라스베이거스는 앞으로도 자주 올 것 같다. 더 나이 들어서도 얼마든지 올 수 있는 곳이다. 수영장에는 그때 가자. 아무튼 올해 여행도 이렇게 마무리지었다. 내년에는 어디를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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