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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Jan 26. 2021

This is life

하와이 사는 이야기

하와이에 살기 시작한 지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었다. 1997년 1월에 왔으니 현재 만 24년이 넘었다. 세월이 참 빠르다. 지나간 일들을 기록해 놓은 것이 있어 이것을 하나씩 읽어보면서 그때를 되새기고 또 지금의 생각도 약간 덧붙여서 하와이에 사는 이야기를 남겨놓으려 한다. 

  


2002년 세라의 초등학교에서 열리던 핼러윈 행사 


8월 어느 일요일 오후. 채 8살이 안된 세라 얼굴이 오늘은 약간 시무룩하다. 매주 일요일 오후에 놀러 오는 친구 티파니가 오늘은 못 온다는 전화를 받은 뒤였다.  


“Daddy, What are you going to do today?” (아빠, 오늘 뭐 할 거야?)


평소에 아빠보다 티파니와 노는걸 더 좋아하던 아이가 오늘은 갑자기 내 스케줄을 묻는다. 쉬는 날이면 서점에 가서 시간을 죽이는 걸 아이도 익히 알고 있는 터인데, 새삼스레 묻는 이유가 뭐지…. 분명 속 깊은(?) 다른 뜻이 있어서 일거다. 


“왜?” 

“Let’s do something else, Daddy … like adventure or you know” (뭔가 딴 거 하자, 아빠… 그니까 어드벤처 같은 거 있잖아) 

“Let me think…OK, Let’s go somewhere” (글쎄… 그래 오늘은 어디 가보자) 


그래, 오늘은 어딘가로 가자. 산 넘어가든지, 비치에 가든지. 아니면 섬을 한 바퀴 돌든지… 비싼 기름 도로에 쫙~ 뿌리러 한번 나가보자. 


“세라야, 엄마한테 물어봐 엄마도 가고 싶나” 

“Daddy, She wants to go, too” (아빠, 엄마도 가고 싶대) 


물 한병 챙겨서 운전대를 잡았다. 시간은 오후 1시가 되어가고 있었고, 햇살은 여전히 따갑다. 근데 어디 가지…?

집을 빠져나왔다. 일단은 잘 안 가던 서쪽으로 핸들을 돌린다. 일요일 오후가 한창인 시간, 다행히 도로에 차는 밀리지 않는다. 서쪽으로 30분 달리면 일단 펄리지 샤핑센터가 나올 거고, 그다음은 와이켈레, 와이파후, 마카하 비치… 머리를 굴리며 갈 곳을 더듬는다. 마땅히 당기는 곳이 없다. 마카하 비치를 넘어가면 서쪽 끝인 카에나 포인트뿐이다. 그곳은 바다와 산뿐, 하와이에서도 깡촌이다. ‘경치가 더 좋은 북쪽이 낫겠지… ’ 다운타운을 지나면서 재빨리 북쪽으로 핸들을 꺾는다. 팔리 하이웨이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 이 길은 언제나 갈 때마다 경치에 취하는 길이다.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칼 같은 산자락. 멀리 보이는 높고 가느다란 폭포. 정글이 우거진 숲. 그 속으로 숨바꼭질하는 태양. 서늘한 바람… 구름… 햇살… 나무…


“아… 조오오오오 타…” 

“팔리 룩 아웃(Pali Lookout)에 들렀다 갈까?” 


소피는 운전사 맘대로 하라는 표정을 짓는다. 팔리룩아웃이란 와이키키가 있는 호놀룰루에서 북쪽 카네오헤로 넘어가는 산의 고갯마루, 백만 불짜리 경치 감상 명소다. 바람이 장난이 아니어서 한국 사람들에게는 ‘바람산’이라고 통한다. 이곳에서 뜨고 싶으면 팔랑대는 치마를 입고 가라. 그렇지 않으면 바지를 입는 게 좋다. 오늘도 여전히 바람이 상당하다. 가만히 있으니 날아갈 것 같다. 


“춥다. 그만 내려가자”

 

8월의 뜨거운 하와이. 하지만 팔리에서는 5분만 있어도 추워진다. 추운 줄도 모르고 바람에 날아가기 놀이를 하던 아이의 표정은 ‘좀 더 있었으면…’이었지만 별 군소리 없이 따라온다. ‘암, 핸들은 내가 잡았거든…’ 팔리 고개를 넘으면 바로 내리막길. 강원도 미시령만큼은 아니지만 가파르기는 여기도 만만찮다.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 자꾸 잡으면 괜히 뒤차가 신경 쓰인다. 브레이크에 무리를 줄이려고 기어를 낮춰가며 최대한 브레이크를 적게 밟으려 애쓴다. 10년 된 우리 어코드가 오늘 고생 좀 한다. 10만 마일이 넘었는데 아직도 잘 달린다. 언덕에서는 젊은 차들 따라가느라 헐 떡 헐 떡 숨차 하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아직도 쓸만하다. 고개를 거의 다 내려가 직진하면 카일루아 비치다. 카일루아 비치는 자주 가는 편이니까 오늘은 카네오헤 쪽으로 가야지. 하와이 퍼시픽대학 앞에서 좌회전, 계속 달린다. 왼쪽에 코올라우 산맥이 열두 폭 병풍을 펼쳐놓은 듯 장엄하게 서있고, 산 위쪽에는 ‘어이 병풍에 구름이 빠지면 쓰나’ 하며 구름이 봉우리에 턱 걸터앉아 있다. 하와이에 살면서 섬 일주를 수없이 했지만, 이번에는 좀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큰길은 거의 다녀봤어도, 큰길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새로운 집들과 동네가 펼쳐지는데 가봐야지 하면서도 항상 그냥 스쳐 지나갔다. ‘그래, 오늘은 하와이 속의 하와이로 좀 더 들어가 보자’ 언덕으로 올라가는 골목으로 들어가니 멋진 주택들이 늘어서 있다. 한국 같으면 저거 다 카페 감인데… 여기서는 그냥 사는 집으로, 별장으로, 또는 베케이션 랜탈 (휴가 오는 사람들에게 단기간 빌려주는 곳)로 사용하는 곳이 많다. 건축가들이 자기만의 개성을 살려서 한껏 멋을 부려놓은 집. “어이, 지나가는 길손 아저씨, 나 이뻐요?” 집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 이쁘다 이뻐, 하지 마 남의 떡인걸..” 요모조모 뜯어보며, 실컷 구경한다. 살고 싶은 집이다. 소피한테 한마디 한다. 


“이야, 저기 살면 글이 줄줄 나오겠다” 


소피는 대답 대신 피식 웃는다. 뒷좌석이 조용해서 휙 돌아보니 아이는 그 아름다운 경치도, 집들도 관심 없다. 얼마 전에 산 게임보이 삼매경에 빠져있다. 언덕을 내려와 이름 모를 비치에 들렀다. 넓은 비치에 파라솔 한 개 있고 그 아래 서너 명이 앉아 있을 뿐 아무도 없다. 한적하다. 슬리퍼를 벗고 모래사장에 들어가니 발에 닿는 모래 감촉이 밀가루 밟는 것처럼 부드럽다. 파도가 연신 밀려온다. 


“옷 안 젖고 누가 멀리까지 갈 수 있나 할래?”

“I’m short, you are tall” (나는 조그맣고 아빠는 크잖아) 


세라는 자기가 질 것에 대비해 불리하다는 점을 미리 확인해두려고 애쓴다. 파도가 밀려갈 때 우리는 바다를 향해 총공격, 파도가 들어올 때 우리도 작전상 후퇴. 세라가 재미있어한다. 단순한 놀이지만 재밌다. 건너편 비치의 수도에서 발을 씻고 다시 달린다. 왼쪽은 산, 오른쪽은 바다가 계속 펼쳐진다. 중간에 어느 마당 넓은 집 같기도 하고 음식점 같기도 한 건물이 보인다. 잠시 차를 세운다. 닭 여러 마리가 마당을 “꼭 꼬꼬~ 꼭 꼬꼬~ “ 돌아다니고 있다. 한쪽에는 쥐보다 약간 더 큰 덩치의 조그만 고양이가 웅크리고 앉아서 닭을 노리고 있다. 가만있어봐, 이거는 견원지간도 아니고, 고양이와 닭은 무슨 관계일까? 닭들이 힘을 합하면 저 조그만 고양이 하나쯤은 무서울 게 없을 텐데… 닭들이 자꾸만 도망가는 형세다. 고양이가 살금살금 다가가면 닭은 안보는 척하면서도 슬슬 엉덩이를 뺀다. 마당은 축구를 해도 될 만큼 넓다. 오래된 카누 몇 개가 한쪽 구석에 지루하다는 듯 엎드려 있고, 나무엔 샌드백도 달랑거린다. 한쪽에는 야자수에서 떨어진 야자열매가 스무 개 정도 모여있다. 음식점은 아닌데 집이 상당히 넓다. 안 쓰는 카우치(소파)까지 나와 있다. 


“이런데 살면서 친구들, 가족들 불러서 바비큐 파티하고 그래야 되는데 …” 


소피가 또 피식 웃으며 한마디 한다. “여긴 너무 멀지 않나?” 

“여기서 장사하면서 살면 되지 뭐” 


말뿐이란 건 나도, 소피도 잘 알고 하는 얘기다. 하지만 여기는 정말 소주 한잔하고, 커피 한잔하기 좋은 곳이다. 마당 넓은 집을 나와 다시 달린다. 몰몬교(Mormon)에서 운영하는 하와이 최대의 관광명소 폴리네시안컬처센터가 나온다. 주차장이 텅 비어있다. 일요일에는 쉬는 곳이다. 장사보다는 신앙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어서 일요일에는 모두 교회에 가고, 주일을 신성히 여기며 일을 하지 않는 곳이다. 


“Daddy, aren’t you hungry? I am” (아빠, 배 안 고파? 나는 배고파) 


이쪽에는 정말 음식점이 드물다. 폴리네시안컬처센터 바로 옆에 노란 아치가 보인다. 맥도널드 가자! 


“Can I get two Big & Tasty Combo, and a Chicken Sandwitch?” (빅 앤 테이스티 콤비네이션 두 개 하고, 치킨 샌드위치 하나 주세요) 


이곳 맥도널드는 내부에 돌로 조그만 폭포까지 만들어 놓았다. 지붕도 높고, 그래서 다른 곳보다 느낌이 좋다. 세라와 나는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고, 소피는 커피 한잔 마신다. 한자리 건너편에서 아까부터 햄버거를 먹던 20대 초반쯤 된 백인 여자애들 네 명이 우리가 아이스크림 먹는 걸 보더니 자기들도 먹고 싶었나 보다. 아니면 원래부터 먹으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와 똑같은 아이스크림을 사 온다. 


“우리 거보다 아이스크림 높이가 한 2센티는 더 높은 거 같지?” 

“이쁜 여자애들이라고 더 줬나 보다… 이럴 수가….” 


맥도널드에서 나와서 어디로 갔더라? 뭔가 이상하다… 음 … 아… 그렇다, 순서가 좀 바뀌었다. 필름을 다시 앞으로 감는다. 그러니까, 폴리네시안 컬처센터에 가기 전에 들른 곳이 한 곳 더 있다. 쿠알로아 목장이다. 뭐 재밌는 것 없나 목을 길게 빼고 골몰하며 운전하다가 ‘쿠알로아 랜치’라고 쓰인 표지판을 보았다. ‘그래 여기 오래전에 한번 와본 적이 있어, 또 한 번 가보자’ 목장 안으로 핸들을 꺾는다. 


“Daddy, Whaer are you going?” (아빠, 어디가?) 뒷좌석에서 게임에 열중하던 아이가 금세 눈치채고 묻는다. 


“응~ 너 말 안 보고 싶어? 말! ” 


나는 한국어로 했다가 영어로 했다가 한다. 하지만 아이는 ‘한국말로 해봐’ 하기 전에는 항상 영어로 말한다. 아이는 영어가 편하고, 나는 한국말이 편하니 대화는 줄곧 한국어와 영어가 수시로 섞이면서 이어진다. 


“Hor~se? Okey!” (말? 좋아!) 


하던 게임을 저장하느라 아이가 갑자기 바빠진다. 지난번에도 일요일에 왔는데, 그때는 모두 문을 닫았었다. 근데 오늘은 스쿨버스도 한대 보이고, 승용차들이 곳곳에 스무 대 정도 주차해 있다. 마차처럼 생긴 버스가 관광객인 듯한 사람들을 한 무더기 태우고 지나간다.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오니 말 냄새와 말똥 냄새가 어우러진 농장 냄새가 코로 쏙쏙 들어온다. 


“이…. 야아아키!” (아이고 냄새!) 


세라는 작은 손으로 코를 꼭 막더니 얼굴을 잔뜩 찡그린다. 어쨌거나, 말을 보여주기로 했으니, 쿠알로아 목장에 관한 사진을 전시해놓은 조그만 방으로 간다. 아주 낡고 허름한 전시장이다. 옛날 하와이의 역사를 사진과 글로 설명해 놓았다. 설명을 조금 읽어본다.


‘하와이에는 신이 많다. 산에는 산신이 있고, 나무에는 나무 신이 있다. 폭포도 신이고, 꽃도 신이다. 돌도 신이고, 바다도 신이다…. 하와이에서 으뜸 신은 화산의 여신 ‘펠레’다….’


신들의 사진. 하와이 원주민들이 어디서 와서 어떻게 형성됐나 역사 연대기가 쓰여있다. 주로 남태평양과 인도네시아의 여러 섬들, 뉴질랜드, 사모아, 통가, 타이티, 피지…. 하와이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이런 곳에서 왔다고 믿고 있다. ‘이러이러한 곳에서 왔다’고 단정 짓는 것이 아니라 ‘믿고 있다’이다. 설명에서도 ‘possibly’ (가능한)라고 쓰여있다.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거 봐, 너 저거 어딘지 알아? 우리가 아까 갔던 팔리 룩아웃이야. 옛날에 저기서 카메하메하라는 왕이 하와이를 통일할 때 사람들을 많이 절벽에서 밀어서 떨어뜨려 죽였다….” 


이 참에 역사교육을 시켜야지. 이게 바로 산교육이 아니겠어? 내심 이런 생각으로 아이에게 장황하게 설명을 하는데 아이는 딱 한마디로 응수한다. 


“I know” (나도 알아요) 


약간 상한 기분과 기쁜 기분이 순식간에 교차된다. 이렇게 설명해주는 아빠를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 것에 기분이 약간 상하고, 세라가 하와이 역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기쁘기도 하다. 옆에는 말에 올라타기 위해 대기하는 곳이 있다. 안장이 있고, 말먹이용 건초더미가 있다. 그 조금 위쪽에는 말들이 눈을 껌벅거리고 있다. 흰색의 몸에 크고 작은 검은색 점이 박혀있는 달마티안 스타일 하얀 말, 갈색 말, 짙은 갈색 말, 검정 색에 가까운 말, 눈을 가린 말, 눈을 껌벅이는 말… “따각 따각 따각 따각” 마부 아저씨가 말을 한 마리 데리고 지나간다. 시멘트 바닥을 걸을 때 나는 말발굽 소리가 무척 경쾌하다. 우리는 말을 따라가면서 자세히 뜯어본다. 단단한 근육질 몸, 약간은 슬픈듯한 눈매… 우리를 보는지 다른 곳을 보는지 눈이 우리를 경계하는 듯하다. 


“촤르르르~ 촤아아아아~ ” 


마부 아저씨가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동안 이때다 싶은 하얀 말이 갑자기 오물을 10초간 부담 없이 쏟아낸다. 그걸 지켜보던 아이는 손으로 눈을 가리고 어쩔 줄을 몰라한다. 


“오줌 눈다” 

“…………” 

세라는 못 볼걸 봤다는 듯 자기가 더 창피해한다.


“너 말 타보고 싶어?” 세라 눈에 갑자기 생기가 돈다. 

“I am tall enough, right?” (나 말 탈 수 있을 만큼 키 크지?) 

“몰라, 어디 한번 보자…” 


주의사항을 읽다 보니 ‘must be ten or more’ (10살 이상만 가능)라는 글귀가 눈에 확 들어온다. 


“세라야, 열 살 넘어야 된대….” 아이의 얼굴빛이 금세 흐려진다. 

“너는 아직 여덟 살도 안됐잖아…” 


기둥에 그어놓은 키 재는 줄을 대보니 키는 된다. 그런데 나이가 안된다. 아이는 단번에 뾰로통한 얼굴로 바뀌어서 도무지 풀어지지 않는다. 


“Just forget it, ok?” (그냥 깨끗이 포기하고 잊어먹어, 알았어?” 

하지만 아무 효과가 없다. 

“대신에 열 살이 되면 꼭 타러 오자”

“오케이?” 

“………” 

"오케이?” 

“………” 

소피도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딱 열 살 되는 날 꼭 와야 돼요~” 

“………” 


배는 부르고 시간은 얼추 4시를 치닫고 있다. 온 길을 돌아서 갈까, 아니면 한 바퀴 빙 둘러갈까… 빙 둘러가는 길이 좀 더 걸리지만 그래도 온 길을 다시 갈 수는 없지. 빙 둘러가기를 결정하고 계속 북으로 달린다.  그러니까 순서대로 하면 쿠알로아 목장이 먼저고, 그다음이 아까 말했던 폴리네시안컬처센터를 간 셈이다. 

아무러면 어떤가? 아직도 해는 하늘 가운데 떠있고, 날은 푸르다 못해 눈까지 시린 걸. 그리고 우리 나이 드신 어코드는 푸르름을 누비며, 햇살을 가르며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폴리네시안컬처센터 옆에 있는 맥도널드에서 햄버거와 아이스크림, 커피를 마신 후 또 달리기 시작했다. 하와이 특산물인 마카데미아넛 농장을 지나고 조금 후 오른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들어간다. 터틀베이 힐튼 호텔. 바다에서 거북이가 많이 올라오는 곳이어서 터틀 베이라고 이름을 붙였을까? 호텔 게이트를 통과하고 나서도 차로 한참 들어가야 주차장이 나오는 곳이다. 호텔 게이트를 지나려니 백인 문지기 아가씨가 나온다. 비치 쪽을 둘러보려 하는데 호텔 안으로 들어가도 되느냐고 물어보니 오케이다. 안쪽으로 쭉 들어가서 우회전하면 주차장이 나오니까 거기 아무 곳에나 차를 세워도 좋다고 한다. 호텔 이용객도 아닌데 마음대로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으니 괜찮다 싶다. 왜 그럴까?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첫째, 이곳은 호놀룰루가 아니므로 우선 땅이 넓다. 둘째, 공공 비치로 통하는 길을 호텔이 막고 있으니 공공 비치 이용객에게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비치로 갔다. 


옥빛 바다가 저 어어 어기. 

하아아 아얀 백사장. 

백사장에 접한 

파아 아아아… 란 잔디.


백사장과 모래사장에는 군데군데 놓인 비치체어. 

그 위에서 노오오오란 태양 아래 죽은 듯 늘어진 사람들. 

물속에 떠있는 십여 개의 머리. 

잔디 너머에는 녹음이 우거진 야자수. 

야자수 위에는 푸르른 하늘. 

천상천하에 이런 경치가 어디 또 있을까. 


맨발로 백사장을 걸어서 바다로 간다. 바닷 쪽에는 용암이 식은 모양의 기암괴석. 마치 누군가 모래사장에서 뜨개질하다 실수로 놓친 실타래가 동그르르르르 굴러 바닷 쪽으로 가면서 흔적을 만들어 놓은 바위의 모양이다. 군데군데 움푹 파인 곳에는 조그만 물고기들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파도에 떼밀려 들어와 “어? 여기가 어디지…” 하며 어리벙벙 살고 있다. 소라껍데기 속에는 작은 게들이 발을 “사사-삭” 거리며 제 딴엔 꽤나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세라와 함께 이 웅덩이 저 웅덩이를 다니며 조그만 물고기를 구경한다. “후둑, 후드득…”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비치에 누웠던 사람들은 한쪽 눈을 슬며시 열고선 “이게 뭐야?” 버틸까 말까 하다가 빗줄기가 굵어지자 하나둘 자리를 떠서 어디론가 사라진다. 나도 잠시 나무 아래서 비를 긋는다. 


호텔 로비로 들어서니 바다 경치가 더 멋있다. 검은색이 약간 들어간 유리를 통해서 보이는 바다경치는 틴트 한 고급 승용차의 유리처럼 바다 풍경을 더 고급스럽게 만들고 있다. 바다가 한가득 보이는 그 유리를 통유리를 배경으로 두 명의 연주자가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한 사람은 50대 중반 정도, 또 한 사람은 60대 후반 정도의 나이.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이즈(Israel Kamakawiwo’ole, 하와이의 유명한 통기타 가수였다. 너무 뚱뚱해서 몇 년 전에 죽었다)가 불렀던 하와이 노래를 감상한다. 연주자들 바로 앞에 어느 율 브린너 머리 모양의 백인이 연신 반짝이는 자기 머리를 쓰다듬으며 노래를 감상하고 있다. 그 바로 뒤에는 40~ 50대 정도의 백인 관광객 3명이 음악에 맞춰 머리를 흔들며, 어깨를 들썩이며 노래를 듣고 있다. 


소피와 나는 약간 떨어진 한쪽 소파에서 박자에 맞춰서 다리를 흔들며 듣는다. 한 곡이 끝나면 박수를 쳐주고 연주자들은 기분 좋아한다. 세라는 갑자기 맨 앞으로 가더니 카우치에 아예 엎드려 얼굴을 턱으로 괴고 노래를 듣는다.  7시가 조금 못된 시각. 호텔 앞쪽, 수영장 쪽으로 향했다. 수영장 오픈 칵테일 바에는 사람들이 꽤 몰려있다. 선셋을 감상하기 위해 비치체어를 끌어다 놓고, 카메라를 준비하고, 칵테일을 마시고 있다.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한때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Daddy, I am thirsty” (아빠, 나 목말라) 

그렇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지 못하지 

“뭐 마실래?” 


바닐라 스트로우베리 스무디 한잔과 마이타이(Mai Tai; 하와이 유명 칵테일) 한잔을 시킨 후 테이블에 앉는다. 스무디 한 모금. 마이타이 한 모금. 매운맛 치토스 하나. 바다에는 서핑하는 이들이 둥둥 떠있다. 해가 작별인사를 하려고 한다. 바다색이 아름답다. 세라는 약간 춥다고 바에서 하얀 큰 수건 하나를 빌려 어깨에 걸치고 있다. 지는 해를 뒤로 하고 앉은 세라의 어깨에 걸친 하얀 수건이 유난히 새하얗게 보인다. 스무디를 마시며 생글 거리는 세라가 정말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달콤한 스무디를 한 모금 삼킨 세라가 갑자기 한마디 툭 던진다. 


“This is a life”  

“…………?” 

“………….!” 


소피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일곱 살짜리 아이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이야.


(2002. 날짜 미상)





지금이 2021년이니 2002년이면 만 18년이 넘었다. 그때 초등학교 2학년이던 세라는 지금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가진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세라는 고등학교까지 하와이에서 다닌 후 대학을 보스턴에서 다녔다. 어릴 때 매주 함께 놀았던 티파니와는 지금은 거의 만나지 않는 모양이다. 

쿠알로아 랜치는 몇 년 전 대규모로 리노베이션을 해서 이제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세라가 초등학교 2학년이던 그때는 하와이를 일주하는 드라이브를 많이 했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는 편이다. 안 가본 곳이 거의 없는 편이어서 그다지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물론 나이 탓도 있을 듯싶다. 요즘엔 일요일엔 주로 코스코나 한국 마켓에 장 보러 가는 정도가 고작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 보스턴에서 일을 시작한 세라는 최근 코로나 시작 이후 임시로 하와이에서 지내고 있다. 회사 일은 인터넷으로 한다. 코로나가 지나가면 아마 다시 갈 것 같다. 요즘 다시 돌아온 하와이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하와이 곳곳을 여전히 즐기는 모양이다. 최근에 쿠알로아 랜치에서 ATV를 탔다고 하는데, 예전에 나이가 안돼서 말을 못 탔던 곳임을 기억할까? 아마도 못할 것 같다. 세월 참 빠르다.           


(01.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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