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사는 이야기
외국에 살면서도 외국사람하고 어울리기는 쉽지가 않다.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니 자연히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비록 외국인이더라도 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와 ‘닮은꼴’인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스테판 부츠타가 그런 경우가 아닐까. 스테판은 독일 남자다. 나이는 37세. 직업은 컴퓨터 소프트 엔지니어다.
그를 만난 건 지난주 노스쇼어 (호놀룰루가 있는 하와이 오아후의 북쪽 지방) 쪽 비치 공원에서였다. 비치에서 잠깐 쉬고 있었는데 그가 다가오더니 수영을 해서 건너편 섬에 다녀올 텐데 가방을 잠깐 봐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먼 것 같은데 위험하지 않느냐"
"걱정 말아라"
"별일 없기를 바란다"
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그에게서 나와 비슷한 구석을 탐지했다. 그는 여유 있는 수영 솜씨로 파도를 헤치며 무사히 다녀왔다. 혼자 버스를 타고 와이키키 호텔로 가야 하는 그의 사정을 눈치챈 나는 내차에 함께 탈 것을 제의했다. 한 시간 정도 와이키키로 오면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국식당에서 식사까지 함께 하게 됐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오늘 그와 우리 가족은 와이키키의 태국 식당 케오스(Keo’s)에서 다시 한번 저녁식사를 같이 하게 됐다.
현재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벨리에 일본인 약혼자와 함께 살고 있는 그는 올해 말 안식년을 맞아 잠깐 독일의 부모님을 방문한 뒤 일본에 가서 일 년간 일본 '간지'를 배우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이미 일본어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는 가능한데 더 배우고 싶다고 한다. 그것도 직장이나 다른 어떤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냥 신문을 읽고, 책을 읽고 싶어서란다.
여러 나라의 문화를 경험한 그에게 "은퇴하면 어디서 살고 싶으냐"라고 묻자, 그는 "아직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나이 먹으면 고향이 그리워지는 법이 아니냐고 떠보았으나 "29년간 독일에서 살았으니 이제 독일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하며, 캘리포니아나 이탈리아 쪽이면 좋겠다고 한다. 방랑을 좋아하는 성격, 나와 비슷하다.
(2002. 9.02)
한 곳에 오래 살다 보니 다른 곳이 궁금하다. 익숙함보다는 낯섦이 더욱 끌리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매년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긴 하지만 여행만으로는 그 궁금함이 충족되지 않는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더 많이 다녀야 하는데, 세월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을 텐데, 한번 발디딘 자리를 뜨기는 쉽지가 않은 게 현실이다. 익숙한 것을 버려야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는데 그 익숙함이 아까워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젊을 때 조금은 더 쉽게 떠날 수 있는 것은 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직 버려야 할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02.02.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