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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Feb 26. 2021

나무 한 그루

하와이 사는 이야기

하와이의 나무


회사 앞에 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 키는 한 5~6 미터쯤 되어 보이고, 잎이 가장 많이 달린 쪽으로 폭이 채 3미터도 넘지 않는 아담한 나무다. 이 나무는 차도와 회사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보도에 다른 나무들처럼 그렇게 묵묵히 서 있다. 나는 이 나무가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크기도 평범하고, 생김새도 그저 평범해서 이 나무의 이름을 애써 알려고 한 적도 없다. 그저 회사 앞 주차장 입구에 한 그루의 나무가 있거니 하면서 무심코 지나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회사 주차장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려는데 포클레인이 그 나무 앞에서 윙윙거리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가지치기를 하는 건가?” 자세히 보니 가지치기나 나무를 파내는 것이 아니라 나무 앞에 있는 시멘트 보도를 파고 있는 것이었다. 땅속에서 자라난 나무의 뿌리가 단단해 보이는 시멘트 바닥을 갈라놓아서 차들이 지나기에 위험했던 모양이다. 

그 나무가 늘 거기에 늘 있는 줄은 알았지만, 그 나무의 뿌리가 시멘트를 파손시킬만한 힘을 가진 줄은 몰랐다. 그저 바람에 한들거리고만 있을 줄 알았는데, 그 나무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살아 있었던 것이다. 시멘트를 뚫고 나온 그 나무의 뿌리는 일부가 잘렸을 테고, 갈라진 시멘트를 걷어낸 자리에는 새로 시멘트가 두껍게 더해졌다. 일꾼들이 가고 난 후 그 나무는 마치 보호대를 하듯 접근을 막는 간판으로 둘러쳐졌다. 이제 막 더해진 시멘트를 보호하기 위해 임시로 간판을 세워놓은 것이다. 


한차례 수술이 끝난 나무는 큰 수술을 끝내고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리는 회복실의 환자 같아 보였다.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서있는 나무에 다가가서 보니 나무는 오른팔에도 수술 흔적이 있었다. 아마도 주차장 입구를 가로막은 가지가 통행에 불편을 줘서 언젠가 또 한차례 수술을 받은 듯하다. 그 나무가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아마도 그 나무는 내가 습관처럼 드나들고 있는 이곳에서 수십 년을 버티고 서서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굽어 보았을 것이다. 이전에도 수 차례 가지가 잘리고, 뿌리가 잘리면서도 그곳에서 묵묵히 서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나무는 자신의 가지와 뿌리를 자른 사람이 모두 저 세상으로 간 이후에도 더 오래도록 그곳에 살아 있는 것이다. ‘아~ 세월 참 빠르군’이라 생각하며 우리가 하루를 보내듯 일 년을 보낼 것이다. 


(2002.11.02)




만물의 영장이니 뭐니 하며 우리는 인간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이 인간을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아주 큰 집단적인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특히 인간을 한 사람, 한 사람 개별적으로 놓고 본다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정글에 한 명의 인간을 놓아두면 며칠 못 가서 사자에게 잡혀 먹히거나 늑대와 싸우다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맹수가 아니더라도 독이 있는 뱀이나 순해 보이는 식물에 의해서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을 것이다. 축적된 지식을 이용해 만들어진 문명의 이기를 사용해 앨버트로스보다 더 빠르고, 아프리카 코끼리보다 더 힘이 센 척 하지만 그런 도구들이 갖추어지지 못하면 연약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수백 년을 살았을 나무들이 잘해야 고작 100년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희로애락을 보면 참 우습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행복하다고 너무 뽐내지 말고, 불행하다고 너무 낙담하지 말 것이다. 인생, 길어봐야 100년이다.      


02.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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