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레이크(Grand Lake)는 고요했다. 아주 큰 호수, 카누 한 척이 물살을 가로지르며 오고 있었다. 아침운동 삼아 나갔던 어느 백인 할아버지가 벌써 호수를 한 바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선착장에 다다르자 카누를 물에서 꺼내 트럭에 싣고 벤치에 앉아 간단한 아침을 먹는 듯했다.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비수기라 그런지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선물가게와 식당이 주차장 맞은편에 많이 있었으나 문 닫은 상점이 문을 연 곳보다 더 많았다. 그랜드 레이크에서는 비지터센터에 제일 먼저 들렀다. 비지터센터는 그랜드 레이크 주차장 들어가기 전에 있었다. 안에 들어가니 나이 든 여자 노인이 혼자 지키고 있었다. 로키 산 트레일리지 로드 어느 지점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알아봤다. 트레일리지 로드가 이번 시즌 폐쇄되기 전까지는 이곳에 사람들이 많이 찾았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청아한 아침 호수를 천천히 걸으며 구경한 후 그랜드 레이크에서 로키산쪽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기로 했다. 내 마음속에는 트레일리지로드에 가지 못한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있는 모양이다. 한참 가다 보니 이쪽에서도 입장료를 받는다. 매표소에서 안내원이 40분 정도까지만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로키산에 왔던 첫날과는 반대방향에서 또 로키산에 올랐다. 오가는 차는 거의 없었다. 한 40분 정도 그렇게 올라가서 폐쇄된 지점까지 가는데 본 차는 단 3대였다. 폐쇄된 지점에서는 팍 레인저가 길을 막고 트럭을 한대 세워놓고 있었다. 그렇게 설산을 구경하고 같은 길을 되짚어 내려왔다. 아침에 들렀던 그랜비의 주유소를 지나서 블랙혹 (Black Hawk)으로 방향을 잡았다.
Rocky Mountain, Colorado
블랙 혹은 옛날 광산촌이었는데 이제는 카지노 호텔들이 들어선 곳이다. 그랜드 레이크에서 덴버공항까지 가려면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그 중간에 잠시 쉬어가기 알맞은 위치다. 덴버 쪽으로 한참 동안 내리막길을 가다가 블랙혹 표지판이 나오고서는 다시 산 쪽으로 한참 오르막길이다. 이거 어디까지 올라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카지노 마을이 나타났다. 우리는 여기서 길어야 1~2 시간 머물 예정이라 여러 카지노 중 가장 크다고 알려진 한 군데만 가보기로 했다. 주차를 하고 내려간 카지노 (Ameristar Casino Hotel)는 생각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 라스베이거스 카지노가 안 좋은 점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담배냄새다. 그런데 이곳은 금연이다. 이점이 아주 좋았다. 카지노라고 해서 꼭 담배 냄새를 맡아야 하는 건 아니다. 카지노 안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자 그럼 2시간 동안 뭘 해볼까? 룰렛을 해보려고 했는데 룰렛마다 주위에는 사람들이 빼곡하다. 포커나 블랙잭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 만만한 슬롯머신을 찾았다. 5불씩 넣고 시작했는데 금세 50불로 올라갔다가 어느새 다 잃었다. 아직 시간이 남았다. 그래도 본전이니 100불만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시작했는데 200불짜리가 맞았다. 조금 더 하다 보니 벌써 가야 할 시간이 됐다. 카지노 시간은 엄청 빨리 간다. 결국 100불 정도 따고 그 돈으로 저녁 먹을 것을 하나 픽업해서 밖으로 나왔다.
이제 덴버 공항으로 가서 랜트카를 반납하고 호텔로 가야 한다. 블랙혹에서 덴버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끝없는 내리막길이다. 광산촌이었어서 그런지 엄청 높은 곳에 있는 모양이다. 산을 거의 내려가는 무렵, 해도 거의 저물고 있었다. 차를 반납하기 전에 가스를 채워야 하는데 랜트카 회사가 먼저 나왔다. 한 바퀴 돌아 주유소를 찾았다. 그런데 주유소가 상당히 크다. 신용카드 인식이 잘 안되길래 안에 가서 돈을 내려고 들어가는데 어느 곳이 주유소 돈 내는 곳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다. 가스를 넣으려고 하는데 여기가 주유소 맞냐고 물어보니 "맞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You are standing"이라고 한다. 여자 점원인데 뭔가 기분 나쁜 일이 있는 듯 상당히 불친절하다. 가스를 풀로 채우고 싶다고 하니 "얼마치를 원하느냐"라고 한다. 랜트카라 얼마나 들어갈지 잘 모르겠고 풀로 넣고 싶다고 다시 말해도 얼마를 넣을지 말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옆에 있던 남자 직원이 "일단 충분한 금액을 지불하고 가스를 풀로 넣으면 처음 금액에서 리펀 해 준다"라고 설명해준다. 진작 그렇게 설명해주지 싸울 듯이 노려보고만 있는 여자가 얄밉다. 하와이에서는 카드로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만약 카드가 안된다면 안에 들어가서 풀로 넣겠다고 하면 들어가는 만큼까지 계산해주는데 이곳은 그런 게 안되나 보다. 같은 미국이라도 다른 게 많다.
무사히 차를 반납했다. 랜트카 회사 셔틀로 공항까지 갔다가 호텔 셔틀로 호텔로 갈 생각이었는데 차를 반납하고 보니 날씨가 쌀쌀하다. 우버를 불렀다. 우버 운전사가 랜트카 오피스 쪽으로 진입이 안된다고 하면서 좀 헤매긴 했지만 잠시 후 우리가 서있는 곳까지 결국 왔다. 더블트리 에어포트 호텔 프런트 데스크에서 일하는 남자 직원은 아주 친절하고 쾌활했다. 내일 아침 7시 50분에 떠나는 비행시간에 맞춰 호텔 셔틀을 5시 30분에 예약했다. 호텔에서 맥주 두 개를 사고 카지노에서 싸온 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내일은 샌프란시스코를 거쳐서 하와이로 간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바로 전인 2019년 10월 영국, 스페인 등 유럽에 2주간 다녀온 이후 2년 만에 온 여행도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 되어간다. 코로나 때문에 마음으로만 여러 차례 짐을 쌌다 풀었다를 한 끝에 결국 왔고, 이제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 같은 미국 땅인데 코로나를 대하는 태도는 많이 다르다. 하와이 호놀룰루는 코로나로 확진자가 100명도 채 안 되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잔뜩 움츠려있는 반면, 콜로라도 덴버는 코로나 확진자가 호놀룰루의 몇 배나 되는 데도 마스크 쓴 사람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똑같은 코로나인데 코로나를 대하는 모습은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과연 언제쯤 코로나에게 빼앗긴 자유를 되찾을 수 있을까? 소피는 내년 4월쯤 어머니를 뵈러 한국에 가야 한다고 하는데 과연 그때쯤은 아무런 테스트 없이도 여행이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