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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로키 8

코로나 시대의 여행

by Blue Bird
20211029_143005.jpg 베일 (Vail) 스키타운, 콜로라도


콜로라도의 스키타운 베일(Vail)에 도착했다. 힐튼 계열로는 유일하게 이 마을에 있는 더블트리, 생각보다 괜찮았다. 첫날 덴버 공항 근처의 더블트리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여기도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기우였다. 프런트 데스크는 친절했다. 호텔에서 베일 스키타운까지는 7~8분 거리인데 무료 셔틀을 언제든 운영하고 있다는 정보를 준다. 아직 낮시간이다. 짐을 방에 들여놓고 셔틀을 타고 베일 스키타운으로 갔다. 셔틀에 탄 사람은 우리뿐이다. 셔틀 운전사는 키가 190이 넘을 듯한 아주 큰 키, 장발의 젊은 백인이다. 휘파람을 불며 흥겹게 운전한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신나게, 흥겹게 일하는 사람과 억지로 짜증 내며 일하는 사람은 본인뿐 아니라 보는 사람의 기분까지 다르게 한다. 호텔 셔틀기사가 그렇게 좋은 직업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똑같은 일도 기분 좋게 하는 게 좋다. 어떤 사연으로 현재 여기서 일하고 있을까? 스키가 좋아서 왔다가 이 마을에 남아 살게 된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목적지에 왔다. 팁을 주니 좋아했다.


베일 스키타운은 동화 같은 마을이다. 아기자기한 건물들과 상점들이 모여있다. 아직은 스키 시즌을 2주일 정도 남겨두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일부 식당에는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다. 가게들을 둘러보고 마을을 둘러봤다. 어느 부동산 회사 쇼윈도에 붙어있는 매물 가격을 보니 1백만 달러가 넘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꽤 비싼 편이다. 아마도 스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별장처럼 사두는 부동산이 많은 것 같다. 시장해져서 조금 이른 저녁을 먹으려고 레드 라이언이라는 미국 식당에 들어갔다. 야외 테이블이 사람들이 많고 햇볕이 따뜻하다. 립과 클램 차우더, 맥주를 두 잔 시켰다. 그러는 사이 시카고를 여행 중인 세라가 저녁을 사 먹으라며 100달러를 젤레로 보내왔다. 여행 중인 부모에게 자기가 한 번은 저녁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20211029_181243.jpg Highland Vail Doubletree hotel, 콜로라도


어느덧 해 질 녘이 되어간다. 호텔로 전화해 셔틀을 다시 불러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올 때도 셔틀엔 우리뿐이다. 옷을 갈아입고 아까 봐 둔 야외 수영장으로 갔다. 호텔 뒤쪽에 따뜻한 핫텁과 모닥불이 있었다. 모닥불 옆에는 서너 쌍의 부부들이 모임을 하는지 빙 둘러앉아있다. 한 여자가 옆사람에게 하는 말이 얼핏 들린다. " 우리는 아이들이 대학 가고 집을 팔았어요. 그리고 RV를 사서 여기저기 떠돌면서 여행하고 있어요..." 우리는 일단 핫텁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물이 몸을 녹여주었다. 어제 온천에 가려다가 못 갔는데 여기가 온천보다 편한 것 같다. 그렇게 한참 동안 핫텁, 모닥불, 수영장을 즐겼다. 도중에 로비 바에서 진 두 잔을 픽업해 와서 마셨다. 바에 있는 웨이터에게 룸넘버를 말해줬는데 나중에 보니 웨이터는 팁을 스스로 18% 붙였다. 내가 팁을 줬어도 그 정도는 줬을 테지만 손님의 허락 없이 스스로 팁을 붙이는 건 처음 봤다. 그 점만 제외하면 이 호텔은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 방도 꽤 넓은 편이고 시설도 좋다. 특히 야외 풀장과 핫텁이 좋았다. 소피가 밤에 혹시 별이 많이 보이나 나가보자고 해서 야외풀장에 나가봤지만 쏟아지듯 내리는 별은 없었다.


아침에 체크아웃하고 나가보니 차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아 있다. 유리창도 뿌옇다. 랜트카 빌릴 때 보니 차 안에 눈 긁는 도구가 있었는데 아~ 이래서 항상 비치해 두는구나 싶었다. 그 도구를 이용해서 유리창의 서리를 긁어냈다. 하와이에 오래 살다 보니 이렇게 차 유치창에 서리를 긁어내는 것조차 신기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그랬었나? 이런 도구를 갖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조금 긁어내고 뜨거운 바람을 유리창 쪽으로 강하게 트니 서리는 서서히 걷혔다. 오늘은 로키 산 그랜드 레이크까지 갔다가 카지노 마을 블랙혹을 들러 덴버공항의 호텔까지 가는 일정이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첫날 로키산의 트레일리지를 거쳐서 그랜드 레이크까지 갔어야 했다. 그런데 눈 때문에 트레일리지가 폐쇄되는 바람에 못 간 것이다. 우리는 반대편 쪽을 통해 그랜드 레이크까지 가기로 했다.


20211030_073746.jpg 밤새 서리가 내려앉았다


그랜드 레이크까지는 두 시간 거리다. 한참 운전하다 보니 배가 고프다. 그랜드 레이크 거의 다가서 그랜비(Granby)라는 곳을 지나가다 보니 카페 간판이 보였다. 아침식사를 하려고 차를 세우고 가보니 지금은 카페 영업을 하지 않는 곳이다. 옛날 간판을 떼지 않고 있으니 알 수가 없다. 커피를 한잔 사려고 그 옆에 있는 주유소에 들어가 보니 컵라면이 있다. 그걸 사 가지고 어제 남겨온 립을 넣어서 먹으니 아주 맛있었다. 배가 고프니 더욱 그랬다. 차 안에서 그렇게 아침 겸 점심을 때웠다. 잠시 후 그랜드 레이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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