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여행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는 2박 일정이다. 1박이 지났으니 오늘은 짐을 그대로 두고 차만 타고 나갔다가 다시 오면 된다.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꼭 가봐야 할 두 곳을 어제 다녀왔으니 오늘은 어디로 갈까? 한 시간 30분 정도 거리인 로열 고지 브리지&팍 (Royal Gorge Bridge & Park)을 생각해두었다. 거기서 조금 시간을 보낼 듯해서 이후 일정은 특별히 잡지 않았다. 시간이 남으면 콜로라도 스프링스 시내를 한번 둘러볼 생각이었다. 호텔에서 아침 식사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침을 제공한다고 해서 뭐가 있는지 나가는 길에 한번 들렀다. 컨티넨탈 브랙퍼스트라 별로 먹을 만한 것이 없어 보였는데 오믈렛을 직접 만들어 주는 코너가 있었다. 소피는 별로 생각이 없다고 해서 하나만 시켜서 나눠 먹었다. 그렇게 커피와 함께 간단히 아침을 때웠다.
로열 고지 브리지까지는 뉴멕시코 산타페 방향으로 Col-115를 타고 한참 내려가다 US-50 서쪽 방향으로 올라가면 된다. 캐뇬시티를 지나서 조금 더 가면 나온다. 11시쯤 도착했는데 사람이 별로 없다. 온라인으로 찾아봤을 때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줄 서서 3시간 이상 기다리다 곤돌라나 짚라인을 못 타고 돌아갔다는 후기까지 있던데 지금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코로나 상황이기도 하고 비수기이기도 해서 여행 온 사람이 이렇게 없는 걸까?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 곳인 듯 출입구는 공항 보안검색대에서 자주 보이는 라인이 그대로 있는데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입장료가 1인당 25불이다. 곤돌라 타는 옵션을 포함한 가격이다. 나는 여기서 짚라인도 타볼 생각이었는데 짚라인은 일단 안에 들어간 후 따로 표를 사야 한다고 한다. 이곳에는 앉아서 타는 짚라인도 있고 엎드려서 타는 것도 있다. 일단 들어가서 곤돌라를 타러 갔다. 협곡은 거의 그랜드캐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곤돌라 타는 곳에도 직원만 있고 그냥 오는 곤돌라를 타면 된다고 한다.
곤돌라로 협곡을 건너는 시간은 채 5분도 안 걸렸다. 가운데쯤에서는 협곡 아래로 흐르는 물도 볼 수 있다. 짚라인을 타려고 보니 타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운행을 안 하는 건지 사람이 없어서 쉬고 있는 건지 구분이 안 갔다. 그런데 짚라인을 타면 바람 때문에 상당히 추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타지 않기로 했다.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작은 놀이기구가 있다. 그런데 아무도 타는 사람은 없고 한두 커플만이 구경하고 있다. 회전목마 (Merry-go-round)가 있길래 우리도 탈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몸무게를 한 번 재더니 오케이란다. 소피와 둘이서 어린아이처럼 회전목마를 탔다. 역시 이 나이에 타니 별로 재미가 없다. 아이들은 왜 이런 게 재미있을까? 다시 건너올 때는 곤돌라를 타도 되지만 우리는 걸어서 다리를 건너며 협곡을 더 자세히 구경하기로 했다. 다리를 건너가는데 이제야 사람들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지터센터 카페에 잠시 앉아 다음에 어디를 갈까 생각해보다가 어제 갔던 파이크 피크 정상에 지금은 눈이 녹아서 갈 수 있는지 확인해보려고 시도했다. 인터넷으로 전화번호를 찾으려 하는데 인터넷이 안된다. 여행책자에서 발견한 전화번호로 전화해보려 했더니 전화도 안된다. 아니 여긴 인터넷도 전화도 안 되는 곳이란 말인가? 일단 콜로라도 스프링스 쪽으로 가기로 했다. 산길을 벗어나 한침 내려가면서 다시 전화해보니 파이크 피크 정상 부근은 여전히 접근이 안된다고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도 오후 1시가 마지막 타임인데 그때까지 가기는 이미 늦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 시내로 들어갔다. 일단 점심을 먹으려고 상가에 차를 세웠다. 구글을 통해 찾아보니 근처에 스매시 버거가 있다. 할레 피뇨가 들어간 버거를 시켰더니 입맛에 맞는다. 야채가 신선한 편이고 맛은 인 앤 아웃과 별로 다르지 않다. 남은 시간에 어디를 갈까 찾다가 인근에 고스트 타운 박물관 (Ghost town Museum) 있길래 한번 가보기로 했다. 그냥 옛날 콜로라도의 마을을 재현해 놓은 곳이었다. 옛날 콜로라도 역사에 관심이 많으면 볼게 많겠지만 나로서는 그다지 볼만한 게 없었다. 호텔 들어가기 전에 핫스프링스 (온천)에 가보려고 찾아보니 우리가 숙박 중인 호텔과 멀지 않은 곳에 좋은 곳이 있다. 호텔에 들러서 옷을 갈아입고 가려고 했다. 그런데 호텔에 도착해서 다시 인터넷을 찾아보니 바로 옆이 아니고 4시간이나 떨어진 곳에 있는 것으로 나온다. 아까는 도대체 뭘 본 걸까? 조금 쉬다가 저녁 먹으러 또 나가려니 조금 번거로운 생각이 들어 우버 이트로 시켜먹기로 했다. 바로 건너편에 상가가 있는데 그곳에 P. F. Chang이 있다. 간단히 치킨 래터스 쌈과 볶음밥을 시켰다. (참고. 콜로라도 로키 6편에서 저녁에 시켜먹은 것은 P.F. Chang 이 아니고 한국식당이었다. 그때 시킨 메뉴는 김치찌개와 매운 돼지불고기였다. 한인이 많지 살지 않는 곳이라서 그런지 한식은 가격에 비해 음식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우리가 한식집이 비교적 많은 하와이에서 왔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
다음날 아침 일찍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스키타운인 베일(Vail)로 향했다. 베일로 가는 방법은 US-25를 타고 올라가다 덴버에서 로키 쪽으로 가는 길이 2시간 30분 정도로 가장 빠르다. 하지만 나는 US-24와 Col-9를 거쳐가는 산길로 택했다. 넓은 하이웨이로 가면 빠르긴 하겠지만 운전하면서 볼게 별로 없을 것이지만 산길로 가면 주변 경관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가지 않은 길은 알 수가 없다. 그런 것까지 인터넷에 올려놓은 사람은 없으니 내가 직접 가봐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급한 것이 없는 여행객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옳은 선택이었다. 호텔에서 오믈렛과 커피로 아침을 먹고 US-24로 한 시간 정도 달리다 보니 대평원이 나왔다. 대평원은 Col-9으로 길이 바뀌어도 계속됐다. 멀리 눈 덮인 로키의 높은 봉들이 둘러싸여 있는 가운데 펼쳐진 대평원, 그 아무도 없는 곧게 뻗은 길을 달리는 기분이 너무나 좋다. 주위에 아무것도 없으니 내가 달리는 속도로 잊고,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도 없어진다. 로키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단단한 느낌의 지프 운전대를 잡고 하염없이 곧장 달리기만 하면 된다. 눈 덮인 로키산을 구경하며 운전하던 베어 레이크에 갈 때나 높은 파이크 피크로 갈 때도 길이 멋졌지만, 나는 주변 수십 마일 근방에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이 길을 운전할 때가 제일 좋았다. 지금도 그 길이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그렇게 2시간 30분을 달린 후 브래큰리지 (Breckenridge) 스키리조트에 들러서 좀 쉬었다 가기로 했다. GPS가 우리를 데려다준 곳은 Grand Colorado Peak 8이다. 건너편에 주차장이 있길래 들어갔더니 지금은 아직 시즌이 아니라 무료다. 차를 주차하고 들어가 본 호텔은 넓고 럭셔리한 분위기였다. 게다가 사람들도 별로 없어서 한적했다. 우리는 이 타임셰어 리조트를 둘러보다가 카페에 가서 라테를 두 잔 픽업해 눈이 바로 발 앞에까지 와있는 슬로프 쪽의 벤치에 앉았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따스한 커피를 마셨다. 그렇게 잠시 앉아 있으니 피로가 서서히 풀었다. 눈을 직접 밟아보기도 했다. 보기보다 눈이 쌓인 깊이가 깊었다. 주차장을 나와 우리의 목적지인 베일의 더블트리 호텔로 다시 운전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