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사진신부 이민
하와이 한인 이민사
미국 내 일본인 이민자의 수가 증가하자 미국과 일본은 일본인의 미국 이민을 제한하는 신사협정 (Gentlemen’s Agreement)을 체결했다. 신사협정은 미국 비자 발급을 제한했으나 가족이민은 예외였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일본인 노동자들은 이를 이용해 신부를 일본에서 데리고 왔다. 대한제국이 1910년 일본에 합병되어 하와이 한인들도 이 제도를 이용해 합법적으로 한국에서 신부를 데리고 올 수 있었다. 한인들은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신랑과 신부가 중개인을 통해 사진을 보내 상대를 선택한 뒤 신랑이 신부 측에 하와이행 선박료를 비롯한 모든 비용을 지불하는 사진결혼 방식을 사용했다.
한인의 사진결혼이 처음에 어떻게 시작됐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1909년 민찬호 목사가 시작했다는 주장도 있고, 북부지방의 의주에 사는 한 중매쟁이가 1910년에 하와이로 이민 온 친척에게 처음 신부를 보냈다는 주장도 있다. 하와이에 왔다가 한국으로 돌아간 사람이 하와이에 신붓감 사진을 보내준 것이 시작이라는 말도 있다. 어쨌든 1910년부터 시작된 사진결혼은 1924년 미 이민법(국가별 이민자 수 제한) 개정 때까지 이어졌고, 한인 사진신부 8백~ 1천여 명 (이미 왔던 남성의 부인 등 120여 명 포함)이 하와이로 들어왔다. 사진신부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 사이의 경상도 지방 출신이 가장 많았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제의 토지조사로 경상도 지역 주민들이 특히 심각한 피해를 입었던 영향으로 보인다. 사진신부 이민자들의 이민 동기로는 가난을 벗어나 하와이에서 부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 가장 많았고, 기독교, 반일감정, 남녀차별, 교육의 기회를 이유로 하와이행을 선택한 신부들도 있었다.
사진 중매를 통해 짝이 결정되면 신부는 신랑의 호적에 이름을 올린 후 일본 여권을 발급받고 미국 비자를 신청했다. 신랑이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3백~ 8백 달러까지 들었다. 신랑은 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계를 들기도 했다. 신랑은 신부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옷을 빌리고, 농장 매니저 집 앞이나 남의 자동차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나이를 감추거나 농장일로 햇볕에 탄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오래전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호놀룰루에 도착한 사진신부들이 처음 본 신랑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했다. 신부들의 나이에 비해 신랑의 나이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신부들은 10대 후반~ 20대 초반이 대부분이었으나 신랑은 30대 ~ 40대가 대부분이었다. 상심한 신부들은 며칠을 울거나 신랑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갈 용기도, 선박비도 없었다. 생활도 듣던 것과는 달리 무척 가난했다.
사진신부 이민자들은 남편과 함께 농장에서 거친 일을 하기도 했고, 한인 캠프에서 독신 남성들의 빨래를 해주고 돈을 벌기도 했다. 사진결혼이 이혼으로 끝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1913년 12월~ 1914년 3월 하와이의 한인신문 국민보는 사진결혼의 이혼율이 높다는 영자신문의 기사와 관련해 사진결혼의 폐해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인 남자들에 비해 훨씬 어린 나이에 하와이로 온 사진신부들의 하와이 적응은 빨랐다. 영어 습득도 남편들보다 빨랐고, 미국의 관습도 비교적 쉽게 익혔다. 한국에서는 생소했던 자유, 남녀평등, 독립심, 개인주의 개념에도 익숙해졌다. 또한 남편이 늦은 결혼으로 아이들은 어린데도 나이가 많아 일을 못하게 되자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고된 노동으로 남편이 일찍 사망하자 한국에서는 생각도 못했던 재혼의 기회도 많았다. 사탕수수 농장주들은 한인 남성 노동자들의 사진신부 제도를 공식적으로 지원하지는 않았으나 한인들이 가족을 이룸으로써 농장 이탈 현상을 막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사진신부들은 농장 생활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해주지 못하자 남편들보다 오히려 더 도시로 이주하고자 했다. 사진신부 이민자들은 또한 한일합방 이전에 온 남편들보다 더 뼈저리게 일본의 만행을 겪은 터라 하와이에서 애국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