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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Bird Sep 17. 2022

짧지만 알찬 미국 역사 9

9. 1968-2011년: 계속되는 역사


20세기 말, 유럽에서 온 이민자는 감소했지만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에서 온 이민자가 급증했다. 2003년 불법 입국자를 포함한 히스패닉 인구는 흑인 인구를 넘어섰다. 2040년이 되면 비 히스패닉 백인이 소수가 될 것이라고 예견됐다. 대형 플랜테이션이 가족농장을 대체함으로써 농업 일자리가 감소했다. 대신 금융, 인적 서비스, 전문 사무직, 정보기술 분야가 급성장했다. 성차별이 사라져 2010년 노동인구에서 여성이 60%를 차지했다. 그러나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전문기술이 없는 노동자가 저임금으로 내몰렸다.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새로운 전자기술은 통신, 마케팅, 오락의 차원을 바꾸었다. 비디오 게임과 소셜미디어가 인기를 끌었다. 뉴스, 오락, 생활용품 구매가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며 출판사, 서점, 신문, 잡지, 음반회사의 오프라인 매출이 크게 감소했다. 월마트 같은 대형 소매점은 중심가의 상점들을 위축시켰다. 미국 내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가정용품, 전자제품, 연비 좋은 자동차 수입이 급증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늘어났다. 반전주의는 1970년대 이후 시들해졌다. 닉슨이 베트남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1972년 징병을 끝냈다. 1971년 <Ms.>의 출간으로 페미니즘이 추진력을 얻었다. 동성애자가 드나드는 맨해튼의 한 바를 경찰이 급습하자 일어난 1969년 시위는 게이와 레즈비언 운동을 촉발했다. 


펜타곤 페이퍼 폭로로 화가 난 공화당의 닉슨은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는 사건에 연루되어 탄핵을 앞두고 사임했다. 1975년 봄 북베트남이 사이공으로 진격하면서 미군이 마침내 완전히 철수했다. 1973년 일어난 아랍-이스라엘 4차 전쟁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지하자 아랍국가들이 미국에 원유 수출을 중단했다. 원유 가격이 급등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남부 침례교도 지미 카터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평화를 중재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이란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타도된 이슬람 국왕의 미국 내 암 치료를 허용하자 이란 시위대가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을 점령했다. 할리우드 배우 출신 레이건은 대규모 군비 증가를 통해 냉전을 더욱 부추겼다. 반공주의를 추진한 레이건은 좌파정권의 니카라과와 반미 정부 이란에서 반정부단체를 지원했다. 


한편 국내외의 압박으로 시달리던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일련의 자유화 조치를 도입, 미국과의 긴장이 완화됐다. 동유럽이 모스크바의 통제에서 벗어났고, 소련의 공산당 세력은 약화됐다. 1988년에는 조지 H. W.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부시는 국외에서는 단호했으나 국내에서는 무력했다. 1989년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1991년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를 대폭 줄이기로 합의했다. 1990년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걸프전을 통해 후세인을 쫓아냈다. 1992년 빌 클린턴이 국내 경제문제를 지적하며 대통령에 당선됐고 부인 힐러리 클린턴에게 보건의료제도 개혁을 맡겼다. 힐러리는 보편적 의료보장을 도입하는 의료 개혁안을 추진했으나 의사, 제약사, 보험사의 반대로 실패했다. 클린턴은 1993년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미국, 캐나다, 멕시코를 자유무역지대로 연결했다. 그러나 백악관 인턴과의 성추행 문제로 평판이 나빠졌다.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당 엘 고어가 공화당 조지 W. 부시보다 50만 표를 더 많이 얻었으나, 공화당 지명 인물로 채워진 대법원이 플로리다 재검표를 중단시키고 부시의 손을 들어줬다. 부시는 부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감세정책, 사업 규제 완화, 환경보호조치 완화 등의 정책을 폈다. 딕 체니 부통령은 석유와 천연가스 회사에 혜택을 주는 에너지 법안의 초안을 마련했다. 


2011년 9월 이슬람 테러단체 알카에다 소속 테러리스트가 미국 민간 항공기를 네 대 납치했다. 이중 두 대가 뉴욕시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을 무너뜨렸다. 이 사건으로 3,200명이 사망했다. 부시는 오사마 빈 라덴을 표적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부통령 딕 체니와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는 이라크의 후세인 타도로 타깃을 돌렸다. 후세인이 테러와 연결되어 있고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의회는 이라크 파병을 승인하고 2003년 공격을 했으나 대량 살상 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2008년 설득력 있는 웅변가 일리노이주 민주당 연방상원의원 버락 오바마가 뉴욕주 민주당 연방상원의원 힐러리 클린턴을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바마 캠프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능숙하게 활용해 대중의 지지를 끌어냈다. 케냐 출신 흑인 아버지와 인류학자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하와이와 인도네시아에서 성장한 그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경제는 오바마를 도와주지 않았다. 2008년 담보대출기관, 월스트리트 증권사, 투자등급 회사, 해이한 연방기관의 관행으로 심각한 경기침체가 발생했다. 주가가 폭락했고 실업자가 급등했다. 2010년 건강보험을 전 국민에게 확대하는 오바마케어가 통과됐다. 공화당은 오바마케어가 사회주의자들의 음모라고 비난했다. 공화당은 부자 감세정책, 환경보호 축소, 노인 의료보험과 사회보장제도를 중지하는 긴축재정을 하자고 주장했다. 종교적 우파는 동성애를 반대하고 전통적 가족의 가치를 옹호하는 티파티 운동을 전개했다. 오바마는 각종 쟁점에서 양보를 거듭하며 반대세력과 타협하는 등 당선 초기의 열정을 이어가지 못했다. 9.11 테러 이후 생긴 각종 보안 초치가 시민이 자유를 위협할 정도로까지 강화됐다. 아랍세계에서는 미국의 계속된 이스라엘 지지로 인해 미국에 대한 여론이 더 악화됐다. 전 세계적으로는 핵무기 확산, 화석연료 고갈, 기후변화, 빈부격차, 인구과잉, 질병과 전염병 발생 등 국경을 초월한 문제들이 대두됐다. 


길지 않은 미국 역사를 돌아보면, 미국은 여러 실패와 부끄러운 사건을 겪기도 했지만 자유의 이념을 확대하고 평등과 사회정의를 진전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은 국내외적으로 아직도 많은 문제가 산재해 있지만 지금 전 세계를 이끌고 있는 최강 국가임이 분명하다. 훗날 수많은 국가가 흥하고 망한 긴 역사적 안목으로 미국을 본다면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지 자못 궁금하다.   




2022년 올해로 미국은 독립 246년을 맞이했다. 세계적으로 유구한 역사를 가진 다른 나라에 비하면 참으로 짧은 역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미국 역사를 돌아보면 그 짧은 기간에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미국 역사는 미국만의 역사가 아니라 전 세계의 역사가 얽혀있다. 초반기에는 영국, 프랑스,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충돌이 많았고,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거치며 소련, 중국 등과 이념적으로 대립하며 민주주의를 대표해왔다. 소련이 무너지고난 1991년 이후부터는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잡을 수 없는 세계 초 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미국 역사를 세밀히 들여다보면 왜 영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지, 왜 아랍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이스라엘을 지지하는지, 왜 멕시코 출신의 히스패닉 인구가 많은지, 그리고 왜 각 주마다 서로 다른 특성을 나타내는지도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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