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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욱 Jan 05. 2024

[사진] 흑백 vs. 컬러

나는 어떤 경우에 흑백으로 사진을 만드는가.

"오늘날 많은 사진가들이 컬러로 사진을 찍고는 별로다 싶으면 흑백으로 변환해서 어떻게든 그 사진을 살려보려고 합니다. 저는 그런 식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두고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았습니다. 흑백사진을 무척 좋아하지만, 그것이 제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안 하기로 한 의도도 있습니다. 컬러라는 것이 저에게는 어떤 예술적 아이디어로 떠올린 것이 아니라 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니까요.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았습니다." -- 케이채, <사진가의 길> 중에서


나도 가끔 흑백사진을 찍는다. 아니, 케이채 작가의 말처럼 컬러로 찍은 후에 어떤 사진은 흑백으로 변환한다. 아직 흑백은 내 사진의 주류가 아니다. 하지만 가끔 컬러보다 흑백으로 만들었을 때 더 매력적인 사진들을 발견한다. 그래서 나도 한 때 고민했었다. "디지털 사진의 시대인 지금 흑백사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떤 사진을 흑백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나에게 답은 의외로 쉽게 찾아왔다. "사진의 내용을 전달하는 데 컬러가 필요 없을 때 (혹은 방해가 될 때)."


다게르와 탈보트가 각각 개발한 사진술을 발표한 1839년부터 코다크롬이 상용화된 1936년까지 거의 100년 동안 사진은 당연히 흑백이었다. 이 시기의 사진가들은 아마도 세상을 의도적으로 흑백의 톤으로 인식하는 훈련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컬러사진이 등장하자 대중들은 환영했지만 전문 사진가들은 그것을 그리 탐탁히 여기지 않았다. 예술로서의 사진은 오직 흑백이라고 주장하는 사진가들이 많았다. 컬러사진이 예술로 인정받게 된 것은 1950년대 에른스트 하스(Ernst Haas)의 작업에 힘입은 바가 크다. 나는 컬러사진이 초기에 사진 '작가'들로부터 외면받은 이유가 눈에 보이는 컬러의 세상을 흑백의 세상으로 변환/해석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데에 일부 기인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진을 만드는 과정에서 전문적인 훈련이 필요한 영역 하나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저항이지 않았을까. 


흑백사진은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어떤 경우는 컬러보다 흑백이 더욱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하고 더 깊은 여운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흑백의 매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내가 찍은 사진(컬러 디지털)을 흑백으로 변환시켜가며 실험을 해 보았다. 어떤 것은 흑백이 되었을 때 더 멋지게 보였지만 어떤 것은 볼품이 없어졌다. 왜 그런 것일까? 


답은 다른 질문으로부터 찾아졌다. "이 사진에 컬러가 필요한가? 이 사진에서 컬러가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에 따라 컬러와 흑백 사이에서 선택하면 되는 것이었다. 간단한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꽃사진을 찍는다. 봄날의 화사함을 울긋불긋한 꽃의 색으로 표현하고 싶다면 당연히 컬러다. 만약 꽃잎의 섬세한 질감을 표현하고 싶다면 흑백이 더 적합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경우에도 컬러가 필요할 수도 있다). 카메라에 필름을 넣을 때 이미 흑백/컬러가 결정되어 버리는 필름사진과 달리 디지털사진은 언제든지 흑백과 컬러 사이에서 변환할 수 있다. 따라서 디지털사진에서 흑백은 선택할 수 있는 변수 중 하나가 된다. 그렇다면 선택의 기준은 어느 쪽이 사진의 메시지를 더 잘 전달할 수 있는가가 된다. 


사진 공부를 하기 전에는 후보정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사진의 진정성을 해치는 행위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진 공부를 하면서 후보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여기게 되었다. 구도, 화각, 심도, 셔터속도 등을 선택하여 찍은 사진 원본을 최종 산출물이 아니라 최종 산출물을 만들기 위한 원재료로 여기게 되었다. 후보정 과정을 통해서 명부/암부 밸런스, 색조 및 채도, 구도 등을 조정하여 촬영 의도를 최대한으로 표현해 내어야 비로소 사진 한 장이 완성되는 것이다. 만약 후보정을 사진을 완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인정한다면, 컬러에서 흑백으로 변환하는 것은 채도를 극단적으로 낮추는 후보정의 한 방법일 뿐인 것이다. 


필름사진 시대에는 흑백사진과 컬러사진이 다른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었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디지털사진 시대에는 이것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기술과 도구의 발달은 대체로 인간의 인식의 경계를 허물고 그 지평을 넓혀왔다. 이것은 사진에서도 적용된다. 디지털사진이라는 도구의 발전은 사진을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현대의 사진가들은 굳이 흑백과 컬러를 나누어 생각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족: 케이채 작가의 생각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케이채 작가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스스로 정의한 것이고 나는 그것을 존중한다. 다만 케이채 작가의 글을 계기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본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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