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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욱 Jan 20. 2024

[잡상] 감각의 기능 - 정보 vs. 쾌감

시각형 인간과 미각형 인간에 대한 짧은 잡생각

오늘 오전에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든 생각.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동물)에게는 오감이 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이 감각들이 감지하는 물리적인 자극의 종류는 다르지만 개념적으로는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정보와 쾌감. 


예를 들어 시각은 형태와 색상을 통해 주위에 있는 사물들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며, 아름다운 풍경이나 좋아하는 사물을 볼 때 쾌감을 선사한다. 청각, 후각, 미각, 촉각도 모두 각각의 물리적 자극의 영역에서 정보와 쾌감을 획득한다. 하지만 각 감각별로 획득하는 정보와 쾌감의 비중은 다르다. 


오감 중에서 정보획득의 비중이 가장 큰 감각은 단연 시각일 것이다. 시각은 사람이 깨어있는 동안 언제나 동작하며 주위의 사물을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나의 왼손 앞에 휴대폰이 있고 그 근처에 책 한 권과 LED 독서등이 있다. 그 너머에는 딸아이가 쓰는 문제풀이 연습장이 있고 그 위에 하얀색 고무 지우개가 올려져 있다. 테이블 건너편 약간 떨어진 거리에 벽이 있고 벽의 위쪽에는 유리창이 있다. 유리창은 미닫이 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유리를 통해 맞은 편에 서 있는 아파트 동이 보인다. 지금 바깥은 해가 져서 어둑어둑하고, 건너편 아파트 동에는 드문드문 전깃불이 켜져 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장면들이다. 이 장면에는 정보만 있을 뿐 쾌감은 없다. 이런 정보들이 어떤 맥락과 연결되어 쾌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으나 그건 이차적인 감각이다. 물론 시각을 통해 아름다운 노을이나 예쁜 꽃, 귀여운 동물 등을 본다면 일차적으로 쾌감을 느낄 수도 있으나 시각에서 쾌감보다 정보의 비중이 압도적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이에 대비해서 정보보다 쾌감을 느끼는 비중이 가장 큰 감각은 아마도 미각이지 않을까? 어떤 음식을 입에 넣었을 때 '음.. 이것은 단맛, 짠맛, 신맛이 나는데 감칠맛이 조금 섞여 있군'이라던가 '이것은 단백질과 탄수화물과 지방과 염분으로 구성되어 있군. 미량의 미네랄도 포함되어 있어서 독특한 맛을 만들어 내고 있군'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아, 맛있다/맛없다'가 가장 즉각적인 반응일 것이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환경의 변화에 따라 미각의 기능이 변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식량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않았던 원시시대의 인류에게는 입에 들어온 어떤 물질이 삼켜도 되는 것인지 여부가 대단히 중요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맛있다/맛없다는 이차적인 감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입에 들어오는 물질의 거의 대부분이 먹어도 되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현재의 인류에게는 삼켜도 되냐/안되냐는 더 이상 고민거리가 아니다. 따라서 미각은 정보획득보다 쾌감획득의 기능이 더 확장되었다. 


이 지점에서 엉뚱한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만약 시각과 미각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사람들은 어느 쪽을 선택하고 어느 쪽을 포기할까? 아마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시각을 유지하고 미각을 포기하는 선택을 하겠지만 시각을 포기하고 미각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기는 할 것이다. 미각을 선택하는 사람은 시각을 선택하는 사람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어디에 더 가치를 두는 것일까? 


여기에서 생각을 한 번 더 비틀어 보자. 개별 감각 내에서 쾌감을 획득하는 비중은 미각이 가장 높다 하더라도 인간이 획득하는 쾌감의 총량에서 미각의 기여가 가장 높을까? 예를 들어 오감을 통해 인간이 환경을 파악하는 정보의 총량 중에서 시각이 차지하는 비중이 70% 미각이 차지하는 비중이 5%이고, 시각 안에서 정보와 쾌감의 비중은 90:10 미각 안에서 정보와 쾌감의 비중은 20:80이라면 (이 수치는 물론 모두 자의적인 것이다. 만약 이런 수치에 대해 객관적으로 연구된 자료가 있다면 알려주시라.), 시각을 통해 획득되는 쾌감의 총량은 7인데 비해 미각을 통해 획득되는 쾌감의 총량은 4에 불과하다. 즉 쾌감을 추구하는 사람도 쾌감의 감각인 미각을 포기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는 것!


물론 지금까지 얘기한 것은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는 순수한 상상일 뿐이다. 하지만 커피를 마시며 아무 생각이나 떠올리던 약 15분 정도의 시간동안 나에게 쾌감을 안겨 준 생각이다. 결국 쾌감이란 감각이 아니라 사고에서 오는 것인가. 


결론 없는 질문 하나를 던지고 여기에서 맺는다. 


[사족: 이 생각은 오전에 했지만 글은 저녁때 썼기 때문에 눈 앞에 보이는 장면의 묘사는 저녁 시간의 장면이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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