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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seeker Jun 18. 2020

마틴 루터 킹과 흑인 인권 투쟁의 근원지 셀마

Selma, Alabama, USA

현재 미국의 상황을 잘 설명한 Clay Bennett의 그림

미국은 시위와 폭동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남성이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심지어 숨을 쉴 수 없다고 말하는 흑인을 무릎으로 눌러 사망하게 하는 동영상이 유포되며 그 논란은 인권 시위 그리고 방화와 폭력, 약탈로 이어지는 폭동으로 번지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아직도 미국 사회에 만연한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이 그 원인이다.




미국에서 흑인을 떠 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마이클 조던이다. 어쩔 수 없이 필자뿐 아니라 대부분의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강한 인상을 심어준 별 중의 별이다. 그다음으론 마틴 루터 킹 목사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 전 대통령 정도이지 않을까?


동시대에 살지 못했지만 두 흑인 명사의 연결고리가 된 곳이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의 셀마이다. 셀마로 향하던 길엔 미 남부 대농장을 배경으로 그려졌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여러 영화에서처럼 목화밭이 많다. 필자는 미남부를 지날 때마다 목화밭이 보이면 이상하리만치 짠한 마음이 들고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낀다. 아프리카에서 납치되어 배에 실려 아메리카 대륙으로 옮겨져 돈으로 매매된 후 노예로 살아야 했던 흑인들의 절절함이 뇌리에 떠올라서였다.


셀마로 향하는 도로 옆 넓디넓은 목화밭 풍경

50년 전 흑인의 투표권을 위해 셀마에서 앨라배마의 주도이자 지금 현대자동차 미국 공장이 있는 몽고메리까지의 비폭력 행진 투쟁의 시발점이었고 또 경찰의 무차별한 진압으로 많은 흑인 사상자들이 생겼던 앨라배마 셀마.

2015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곳에서 흑인 선조들의 투쟁과 고귀한 희생을 기기 위해 셀마 50주년 행사에 참석 그의 명연설문중 하나로 꼽히는 멋진 셀마 연설과 사건 당시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비폭력 시위를 주도했던 셀마 대학 출신의 대학생이었고 현재는 앨라배마 주 의원인 John Lewis 또 많은 일반인들과 손을 맞잡고 행진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줘 더 유명해진 곳이다.  



영화 '셀마'중 Selma-Mongomery March 모습 (左), 행진하는 일반인들을 무장하고 기다리는 경찰 (右)


'피의 일요일'이라고 부르는 이날의 행진 중 발생했던 인종 차별은 아치형인 에드몬드 패터슨 다리에서 발생했다. 아치의 최고 정점을 넘어서면서 비폭력 행진 시위를 하던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대학생이었던 루이스를 비롯한 흑인 주민들의 눈에 들어온 모습은 총으로 무장한 경찰의 무력 진압 준비 현장이었다. 손에 손을 맞잡고 불의에 항거한 흑인들의 투쟁과 피로 물들었던 패터슨 다리의 항거로 인해 결국 6개월 후 흑인의 투표권을 인정하는데 미 대통령의 승인을 이끌어 내는 쾌거른 거둬 링컨 대통령에 의한 노예제도 철폐 이후에도 미국 땅에 만연했던 흑인 인종 차별에 대해 큰 전환점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에드몬드 패터슨 다리는 50여년전의 미국의 흑역사를 담고 지금도 건재한 모습이다.


에드몬드 패터슨 다리를 내려오면 SELMA가 크게 적힌 그날을 기리는 공원이 있다.  그곳에는 투쟁을 함께 한 이들과 그들을 기리는 시가 전시되어 있는데 현재 의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그날의 리더 중 하나였던 John Lewis 의원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행진을 기리며 걸었을 때도 그는 대통령 옆에 손을 맞잡고 함께한 살아있는 '피의 일요일'의 산 증인이다.



Selma 역사 공원

공원을 지나 시내로 들어서면, 미 남부 앨라배마의 공업도시로 소개된 도시의 설명과는 달리 죽어있는 도시의 느낌이다. 여름 한 낯의 강한 태양 아래이긴 했고, 건물들 앞에는 주차된 차들도 보이긴 했지만, 그냥 도시 전체가 역사를 기리는 하나의 박물관과 같은 느낌으로 전혀 생동감이 없었다.

Selma 시내




영화 'SELMA' 이야기

영화 셀마 포스터 (2014)

정치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하는 필자에겐 재밌는 그리고 감동으로 눈물 훔치게 했던 영화였다. 노예 전쟁에서 승리하고 100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 흑인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에 셀마의 주민들이 반발하는 장면들이 그려졌고 그 중심엔 지도자 킹 목사가 있긴 했으나 노벨 평화상을 탄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찬양하는 영화도 아니었다. 것보다는 영화 곳곳에서 우리네 민주화 항쟁의 모습처럼 셀마의 일반인 한 사람 한 사람이 한걸음 한 걸음씩 자신의 목소리를 거칠지 않게 표현하는 모습들이다. 영화 속에 드러난 에피소드엔 투표자 등록만 하면 투표를 할 수 있으나 등록서 작성하러 가지 못하게 하는 건 물론, 등록서를 작성해도 주관적인 판단으로 매번 꼬투리를 잡고 거절하고, 등록서가 통과했나 싶었더니 그를 심사하는 판사 67명의 이름을 모두 대어 보라는 등 터무니없는 이유로 Denied 판정을 하는 백인의 갑질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킹 목사가 끊임없이 고뇌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인종차별에 대한 그들의 저항을 가시적인 성과보다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셀마 운동의 핵심이 된 에드먼드 패터슨 브릿지의 평화 행진을 직접 기획했다고 한다. 영화 속에는 지금은 사용이 터부시 된 Negro (니그로)라는 표현이 킹 목사의 연설에 드러난다. 실제 니그로는 스페인어로 검정이라는 뜻으로 아프리카 흑인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니그로는 물론 Black이라는 말조차도 인종 차별적 발언으로 조심해야 하는 표현이다.





버락 오바마 셀마 연설문 중에서ᆢ


" It was not a clash of armies, but a clash of wills; a contest to determine the true meaning of America."
행진은 무력 충돌이 아닌 의지와 의지의 대립이었으며, 진정한 미국의 의미를 결정하는 항쟁이었습니다.


And yet, what could be more American than what happened in this place?
What could more profoundly vindicate the idea of America than plain and humble people-unsung, the downtrodden, the dreamers not of high station, not born to wealth or privilege, not of one religious tradition but many, coming together to shape their country's course?
그렇지만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의 행진보다
더 미국다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 이름 없는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은 몽상가들, 부나 특권을 갖고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
하나의 종교가 아닌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것만큼 미국의 이념을 정당화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What greater expression of faith in the American experiment than this,
what greater form of patriotism is there
than the belief that America is not yet finished, than we are strong enough to be self-critical that each successive generation can look upon our imperfections
and decide that it is in out power to remake this nation to more closely align with our highest ideals?
미국의 신념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사건이 있습니까?
미국은 더 발전할 것이라는 믿음, 우리가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을 만큼 굳센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 각 세대가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이 나라를 완전한 이상에 가까운 모습으로 바꿔 나갈 수 있다는 믿음보다 더 위대한 애국심이 또 어디에 있습니까?

That's why Selma is not some outlier in the American experience.
That's why it's not a museum or a static monument to behold from a distance.
it is instead the manifestation of a creed written into our founding documents: 

"We the People... in order to form a more perfect union."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그렇기 때문에 이 행진은 미국의 역사에서 그저 이례적이었던 한 번의 사건이 아닙니다.
셀마에서의 행진은 그저 멀리 서서 바라봐야 하는 기념물이나 박물관의 전시품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건국 문서에 기록된 신조가 발현된 사건입니다.
"우리 합중국 국민은, 더욱 완전한 연맹을 형성하고자"
"우리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이 자명한 진리를 옹호한다."

 First and foremost, we have to recognize that one day's commemoration, no matter how special, is not enough.
If Selma taught us anything, it's that our work is never done.
The American experiment in self-government gives work and purpose to each generation.
하루의 기념행사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셀마 행진이 우리에게 준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임무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각 세대마다 시대가 요구하는 임무와 목적을 요구합니다.

Selma teaches us, as well, that action requires that we shed our cynicism.
For when it comes to the pursuit of justice,
we can afford neither complacency nor despair.
셀마-몽고메리 행진은 우리가 행동을 취하기에 앞서 냉소주의를 버려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정의를 추구한다면 안주해서도, 절망해서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We know that the march is not yet over.
We know the race is not yet won. We know that reaching that blessed destination where we are judged, all of us, by the content of out character requires admitting as much, facing up to the truth.
"We are capable of bearing a great burden, " James Baldwin once wrote,
"once we discover that the burden is reality and arrive where reality is."
우리는 행진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경주에서 아직 승리를 거두지 못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신성한 목적지에 닿아 정당한 심판을 받기 위해 그만큼 진실을 마주해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소설가 제임스 볼드윈 (James Baldwin)은
"어깨에 얹은 큰 짐이 현실임을 깨닫고 이를 받아들이면
우리는 그것을 이겨낼 수 있다" 고 하였습니다.


There's nothing America can't handle if we actually look aquarely at the problem. And this is work for all Americans, not just some. Not just whites. Not just blacks.
If we want to honor the courage of those who marched that day, then all of us are called to possess their moral imagination.
All of us will need to feel as they did the fierce urgency of now.
All of us need to recognize as they did that change depends on our actions, on our attitudes, the things we teach our children.
And if we make such an effort, no matter how hard it may sometimes seem, laws can be passed, and consciences can be stirred, and consensus can be built.
문제를 직시한다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미국인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백인만이, 흑인만이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그날 행진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용기를 기리고 싶다면 우리 모두 그들이 가졌던 도덕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현재에 대하여 극심한 위기의식을 느껴야 합니다.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변화란 우리의 행동과 태도, 그리고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들에 달려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런 노력을 한다면 때로는 제아무리 어렵다 할지라도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고, 양심을 움직일 수 있으며, 합의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Fifty tears from Bloody Sunday, our march is not yet finished, but we're getting closer.
Two hundred and thirty-nine years after this nation's founding our union is not yet perfect, but we are getting closer. Our job's easier because somebody already got us through that first mile. Somebody already got us over that bridge. When it feels the road is too hard, when the torch we've been passed feels too heavy, we will remember these early travelers, and draw strength from their example, and hold firmly the words of the prophet Isaiah:
"Those who hope in the Lord will renew their strength.
They will soar on [the] wings like eagles.
They will run and not grow weary.
They will walk and not be faint."
'피의 일요일'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행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종점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 나라가 건국된 지 239년이 지났지만 미합중국은 아직 완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점점 완벽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임무가 비교적 쉬울 수 있는 이유는 이미 다른 누군가가 첫 번째 관문을 넘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다른 누군가가 저 다리를 건넜습니다. 길이 너무 험하다고 느껴질 때, 이어받은 횃불이 너무 무겁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먼저 길을 떠난 사람들을 기억할 것이고,
그들의 선례로부터 힘을 얻을 것이며, 예언자 이사야의 말씀을 굳게 믿을 것입니다.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

We honor those who walked so we could run. We must run so our children soar.
And we will not grow weary. For we believe in the power of an awesome God, and we believe in this country's sacred promise.
우리는 우리가 달릴 수 있도록 앞서 걸어간 이들을 기립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날아오를 수 있도록 달려야 합니다. 우리는 지치지 않을 것입니다. 뛰어난 신의 권능을 믿고, 이 나라의 신성한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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