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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작가 Jul 20. 2020

‘박사’로 남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세상에는 '박사'라고 불리지만, '박사'가 아닌 사람이 있다.

세상에는 ‘박사’지만 ‘박사’가 아닌 사람들이 많다.


대체 무슨 말인가?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가짜 박사 학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즉,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그 분야에서 ‘박사’가 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학문 연구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세상도 변하고 학문도 변한다.


학위를 받고, 그 분야의 연구를 지속하지 않는다면 ‘박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어떤 학문 분야이든지 연구를 게을리한다면, 갖추어진 능력 또한 퇴보하기 마련이다.




어떤 이는 당연한 이야기라고 하겠지만, 세상 사는 것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많은 ‘박사’들이 자신의 꿈을 버리고 생계를 위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 말은 아주 냉정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따뜻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연구를 지속할 수 없는 ‘박사’는 ‘박사’로 남을 수 없다는 것인가?



그것에 대한 나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현실을 모른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문제에 있어서 어떤 물러설 마음도, 생각도 없다.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을 조금 더 따뜻한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연구자’, ‘박사’로의 나 자신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역경이나 어려움이 있어도 지금 해온 것을 놓지 않고, 나의 길을 그래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갈 때도 삶의 방향, 목표를 잃게 되면 모든 균형이 무너지듯이 ‘박사’의 삶도 방향과 목표를 유지하고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생계를 위해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연구는 지속될 수 있다.


주변을 돌아보면 연구를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경우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연구에 노력과 관심이 있다면, 우리는 길을 걸어가면서 혹은 차를 타고 가면서도 그것에 대한 생각에 잠기게 된다.


연구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이나 사물에 대하여서 깊이 있게 조사하고 생각하여 진리를 따져 보는 일’을 말한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연구라는 것은 그렇게 먼 곳에 있지 않다.




과거, 내가 근무했던 연구원은 국내에서 경제 분야에서 인정받고 잘 알려진 곳이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학위를 받고 그곳에서 일할 수 있었다.


대부분 경제, 경영 등 사회과학 박사들이 많았었는데, 그곳에서 박사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연구원장이

있었다.


그는 항상 이런 말을 했다.

“박사라면 최소한 자신의 분야에서 최소 1년에 1편 정도는 논문을 쓰거나, 연구에 대해 고민을 하고 진행해야 된다.”

“그것이 박사로 남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박사라고 불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나는 당시 혼잣말로 “보고서 쓰기도 바쁜데 무슨 말인가?”라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서 그가 이야기했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연구에 손을 놓았던 ‘박사’들은 더 이상 그 분야에서 ‘박사’가 될 수 없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연구 능력을 비롯해서 논리, 통찰력 등이 점점 퇴보해가면서 초창기의 명석함이 사라져 갔고 그들의 국내외 박사 학위들은 점점 빛을 잃어갔다.


반면, 연구를 지속하며 국내외 학회 등에서 활동한 ‘박사’들은

기존에 갖추어진 능력이 점차 성숙해졌으며,

논리는 더욱 견고해졌고,

탁월한 성과까지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인정받는 '박사', '연구자'들이 되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결국 연구의 지속 유무는 그들이 ‘박사’, ‘연구자’로 불릴 수 있는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 것이다.




나 역시 자신을 비롯해서 가족의 생계와 부양을 위해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박사'로,

'연구자'로,

남기 위해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연구를 계속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한다는 의미이고,

그 길을 계속 걸어가겠다는 의지이자 다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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