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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ma Yong Feb 08. 2018

<스파이더맨 홈커밍>에 벤 삼촌이 없는 이유

[스토리텔링]

*스파이더맨,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 스파이더맨 : 홈커밍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뒤 따른다



다스베이더의 "I am your father"나 간달프의 "You shall not PASS!" 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슈퍼히어로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대사입니다. 이 대사의 주인공은 정의를 위해 싸우는 히어로가 아닌 평범한 가장입니다.


스파이더맨을 영웅으로 만든 사나이 '벤 파커'


벤 파커는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조카 피터 파커를 거두어 키웁니다. 피터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소심한 소년이었지만 벤은 자신의 조카가 훗날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방황하는 사춘기의 피터를 걱정한 그가 말해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뒤 따른다'는 문장은 사랑이 깃든 조언이자 마지막 유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피터는 자신이 우연찮게 얻은 초능력을 돈벌이에 이용합니다. 큰 상금이 걸린 아마추어 레슬링 대회에서 이기지만 악덕 사장에게 약속된 돈을 받지 못하게 되죠. 화난 피터가 사장에게 복수하려고 놔준 강도에 의해 삼촌이 희생당하게 됩니다.



2000년대 초반, 슈퍼히어로 영화는 아직 주류가 아니었습니다. 이전에 슈퍼맨, 배트맨, 엑스맨 등이 엄청난 흥행을 했지만 지금처럼 전 세계적인 파급력을 가진 대세 장르는 아니었죠. 스파이더맨은 다른 히어로 영화와는 차별화되는 이야기를 통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스파이더맨의 이야기는 전통적인 '영웅의 신화'가 아닙니다. 배트맨, 슈퍼맨, 울버린은 영화의 시작부터 이미 어느 정도 완성된 영웅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첫 등장부터 자신의 능력을 익숙하게 다룰 줄 알며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철학과 법칙을 가지고 행동합니다.


스파이더맨은 이와는 다르게 상처받은 소년의 성장기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중심축에는 벤 삼촌의 유언을 따르는 피터의 다짐이 있었죠.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대사는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핵심문장이며 앞으로 스파이더맨이 감내해야 할 비극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새로이 리부트 되는 시리즈의 제작자들도 이와 동일한 감동을 되살리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소니는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4'의 기획을 취소하고 시리즈를 새롭게 리부트 합니다. 새로 태어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골든글로브와 에미상을 수상한 대배우 마틴 쉰을 벤 삼촌 역으로 캐스팅합니다.


지옥의 묵시록, 디파티드, 웨스트윙 등에 출연한 명배우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에서 벤 삼촌 역을 맡은 클리프 로버트슨은 그리 알려지지 않은 배우였습니다. 소니는 이와는 다르게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베테랑 배우를 기용합니다. 히어로 액션 영화에 이런 배우를 캐스팅했다는 건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벤 삼촌과 피터의 유대감을 확실히 강조하기 위한 기획을 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영화는 벤과 피터의 관계에 많은 분량을 할애했지만 둘의 이야기는 '피터의 출생의 비밀'이라는 떡밥과 피터와 그웬 사이에 형성된 또 다른 '비극적인 관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다른 패착이 있었습니다.


 ... He believed that if you could do good things for other people, you had a moral obligation to do those things! That's what's at stake here. Not choice. Responsibility.

 


이것도 앞 문장이 너무 길어서 자른 겁니다. 해석을 하자면 '피터의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것을 행할 도의적인 책임이 있다고 믿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다'


...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뒤 따른다


 짧고 간결하고 힘이 있는 대사입니다. 이렇게 멋진 대사를 어째서 위에서처럼 빙빙 돌려서 긴 문장으로 변형시켰을까요? 이렇게 복잡하게 변형된 대사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지도 기억에 남지도 못했습니다. ( youtube.com/watch?v=sxsZVZDF-vs -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유튜브 영상)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벤 삼촌의 죽음은 전작의 감동을 부활시키지 못한 밋밋한 재연 영상 같은 느낌을 줍니다. 관객들이 이미 예전 시리즈에서 본 장면이었죠. 똑같은 상황을 조금 다르게 변형시킨 정도입니다. 아무리 깊은 인상을 주는 요소라도 똑같이 반복된다면 감동은 떨어집니다. 히스 레저의 조커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캐릭터지만 배트맨 속편 영화에 2번 이상 출연했다면 지금보다 임팩트가 떨어졌을 겁니다. 다스 베이더가 루크를 볼 때마다 '내가 네 아버지다'라고 자꾸만 가족관계를 강조했다면 무게감도 사라졌겠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전작과 별다른 차별화를 보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이전 시리즈의 명성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게 됩니다.  



틴에이지 히어로 스파이더맨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이후 고향인 마블의 품으로 돌아온 스파이더맨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로 데뷔합니다. 캡틴 아메리카와의 전투를 앞두고 토니 스타크에 의해 징집된 소년병 피터 파커. 마블은 전작과는 다른 방식으로 캐릭터를 선 보입니다.


1. 초능력을 얻게 된 계기가 생략되었다


2. 벤 삼촌은 이미 죽었다


3. 아직은 영웅이 아닌 영웅 행세를 하는 꼬맹이



관객의 입장에서는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피터가 방사능 거미에 물려 초능력을 얻게 되는 장면이나 벤 삼촌이 남긴 유언을 통해 영웅으로 거듭나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은 이미 관객의 시신경에 두 번이나 박힌 이미지입니다. 이런 장면을 그대로 재탕삼탕 한다는 것은 굉장히 지루한 선택이었겠죠. 그리고 전작에서 스스로 역경을 통해 영웅으로 거듭나는 것과 달리 '시빌 워'에서 히어로들의 싸움에 휘말려서 어정쩡한 데뷔를 한다는 차이도 있습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극장에서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찾은 관객들에게 스파이더맨의 '오리진 스토리'는 이미 완성되어있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삼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소년과 그 비극으로부터 탄생하는 영웅. 그러나 마블 스튜디오의 스파이더맨에서 피터가 영웅 행세를 하는 이유는 삼촌의 죽음 때문이 아닙니다. 피터는 고독하고 슬픈 영웅이 아닌 아직 때 묻지 않은 초능력 소년일 뿐입니다. 벤 파커의 이야기를 삭제함으로써 전작의 그늘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스파이더맨의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언맨과의 유대감


벤 삼촌이 없는 스파이더맨 곁에는 아이언맨이 있습니다. 이 둘은 영화 속에서 유사 부자 관계를 형성합니다. 둘 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다는 것과 뛰어난 과학 영재라는 것까지 닮았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잘 나타내지 않는 토니 스타크는 아직 피터를 대할 때 거리를 두며 어려워하지만 피터의 인생에서 아버지의 부재를 채워줄 존재는 토니밖에 없습니다. 영웅이 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을 해주지만 의견이 엇갈려 충돌하는 모습까지 부자간의 갈등을 잘 그려냈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추측이지만 '인피니티 워'에서 아이언맨이 죽으면서 벤 삼촌의 죽음에 오열하는 피터의 모습을 다시 재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다른 빅픽쳐


한국 관객들에게는 생소한 얼굴이지만 미국에서는 시트콤 '커뮤니티'와 '애틀랜타'로 친숙한 배우 도날드 글로버입니다. 차일디쉬 갬비노 Chilidish Gambino라는 예명을 쓰는 래퍼이자 작가, 배우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5월에 개봉 예정인 '스타워즈 : 한 솔로' 영화에서 젊은 란도 칼리시안을 연기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주연인 톰 홀랜드보다 먼저 '스파이더맨 홈커밍'에 캐스팅된 배우입니다. 이 때문에 흑인 스파이더맨이 나오는 것이 아니냐 하는 루머까지 돌게 만들었습니다. 


영화에서 자신의 조카가 사는 지역에 범죄율이 높아져 고민하는 남자로 나와 스파이더맨에게 악당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인물입니다. 그의 극 중 배역 이름은 아론 데이비스인데요, 마블 코믹스 원작의 팬들에게는 친숙한 이름일 것입니다. 그는 2대 스파이더맨인 마일스 모랄레즈의 삼촌입니다. 흑인 히스패닉 계열의 새로운 스파이더맨은 2011년 '얼티밋 시리즈'에서 데뷔했습니다. 원작 만화가가 캐릭터를 디자인할 때 오바마와 도날드 글로버의 얼굴을 합쳐서 탄생시켰다는 여담도 있더군요.


마블 스튜디오가 2세대를 이끌 히어로 중 하나인 스파이더맨에 이어 이미 그들을 대체할 3세대 히어로의 라인업까지 짜 놓았다는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마블과 스파이더맨의 판권을 양분하고 있는 소니는 이미 영화판과는 다른 애니메이션 세계관에서 마일스가 주인공인 새로운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예고편을 공개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i3n7hYQOl4 


과연 아론 데이비스와 조카 마일스의 관계가 벤 삼촌과 피터와의 관계처럼 그려질지, 그리고 성인이 된 피터 파커가 한때 토니 스타크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마일스의 멘토가 되어줄지 궁금하네요. 극 중 시간과 배우의 나이를 고려하면 적어도 5년 이상은 지나야 극장에서 만나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처 - 스파이더맨,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스파이더맨 홈커밍, imdb, Marvel, Wikipedia, Google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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