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nema Yong Feb 09. 2018

[픽사]에서 배우는 스토리텔링 팁 (1)

[스토리텔링]


픽사, 이야기의 힘 


지난 2017년은 픽사가 30주년을 맞는 해였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픽사는 극장판 CG 애니메이션의 시대를 연 스튜디오입니다. 픽사 애니메이션의 파급력은 디즈니를 비롯한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이 기존의 셀 애니메이션 방식에서 벗어나 컴퓨터로 만든 3D 애니메이션에 집중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토이스토리부터 벅스 라이프, 인크레더블, 업, 월 E 등 여러 작품들이 전작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빼어난 영상미로 관객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최근 개봉한 코코도 극장에서 흥행 몰이 중입니다.


픽사는 이름 하나 만으로 믿고 볼 수 있는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픽사 애니메이션의 장점이 잘 만든 그래픽 하나뿐이었다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픽사가 지닌 최고의 장점은 바로 '이야기의 힘'입니다.  실사에 가까운 영상을 구현하고 화려한 연출을 한 작품이라도 관객을 붙잡는 강렬한 이야기가 없었다면 기억에서 빠르게 잊히는 작품이 됩니다. 픽사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가장 잘 만드는 스튜디오입니다.



픽사 스토리 팁 22가지


2011년, 픽사의 스토리보드 아티스트였던 Emma Coats는 자신의 트위터에 '픽사에서 배운 22가지 팁'이란 게시물을 올립니다 (출처 - 트위터 @lawnrocket). 자신이 픽사에서 일하면서 배운 스토리텔링 팁들을 간략하게 엮은 게시물은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요. 지금도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 사이에서 종종 회자되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습니다. 영화감독을 꿈꿨기에 영화의 기본이 되는 대본 수업을 많이 들고 이야기를 쓰는 방법에 대한 많은 서적들도 읽었습니다. 영화를 보거나 시나리오를 읽는 틈틈이 노트 정리도 하면서 제 나름대로 이야기를 쓰는 방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직 작가라고 할 수 없는 실력과 경력이지만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 공부하는 것은 모든 분야의 창작자에게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픽사 스토리 팁'을 처음 보았을 때 저를 가르친 교수님들의 수업과 유명 영화/드라마 시나리오 집필 서적에서 강조한 핵심 내용들이 짧은 문장들에 담겨있는 것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픽사에서 일하는 여러 아티스트들의 깊은 내공을 느낄 수 있는 게시물이었습니다. 이 22가지 팁들을 통해 '관객을 사로잡는 이야기'를 쓰는 방법을 알기 쉽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각 팁에 저의 해설과 예시를 덧붙였습니다.


*예시로 든 영화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캐릭터는 자신의 성공이 아닌 그 이상을 위한 노력을 할 때 사랑받는다.

You admire a character for trying more than for their successes.


대부분의 등장인물은 자신의 욕구(Want)를 따라 행동합니다. 주인공의 욕구는 영화 초반 이야기를 이끄는 원동력이자 필요조건입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자신에게 진정 필요(Need) 했던 것은 전혀 다른 것(혹은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돈과 성공만을 쫓던 남자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귀여운 여인)',
'악마 같은 상사에게 적응하며 직장에서 승승장구하지만 성공에 대한 집착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일을 그만두는 여자의 이야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이처럼 자신의 삶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과 그것을 얻기 위해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많은 시련과 갈등, 자기희생이 따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명성과 부,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까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오죠. 관객들은 이런 갈등과 위험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주인공에게 끌리게 됩니다.



'업'에서 칼은 영화의 대부분을 자신과 엘리가 함께 지은 집을 파라다이스 폭포에 가져다 놓겠다욕구에 따라 행동합니다. 하지만 여정의 막바지에 자신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모험을 통해 만난 새로운 가족을 지키는 것이란 걸 깨닫고 위험에 빠진 러셀을 구하러 갑니다. 칼은 자신이 원하는 욕구의 달성이 아닌 남을 위한 행동(희생)을 하였고 사람들은 이 캐릭터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2. 관객에게 흥미로운 이야기와 작가의 입장에서 쓰기 재밌는 이야깃거리는 매우 다를 수 있다.

You gotta keep in mind what's interesting to you as an audience, not what's fun to do as a writer. They can be very different.


이야기를 만들 때면 넣고 싶은 여러 가지 소재가 머릿속에 떠오를 겁니다. 하지만 작가가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에피소드라고 해서 관객들이 똑같이 좋아해 줄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특히 이런 소재가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스갯소리로 영화과에는 매년 졸업작품의 반 정도가 '작품(영화)을 만들지 못해 좌절하는 아티스트'를 주제로 한 단편영화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작가의 경험을 흥미로워하고 호응해주지는 않습니다.


또 다른 문제점은 관객을 고려하지 않고 작가의 입맛대로만 쓰인 에피소드는 영화의 장르에 맞지 않게 욱여넣어질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영화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신파"나 진지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유머 코드, 억지로 짜 맞춘 러브라인 등은 이야기의 몰입을 저해하는 요소로 비판받아왔습니다. 영화를 찾은 관객들에겐 줄거리나 장르에서 벗어난 생뚱맞은 장면이 나오는 것만큼 짜증을 자아내는 일도 없습니다.


작가 자신에게 흥미롭거나 중요한 이야깃거리라도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인지, 영화에 꼭 필요한 장면인지를 한번 더 생각해봐야 합니다.



3. 주제를 정하고 따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당신이 쓰고 있는 이야기가 진정 무엇에 관한 것인지는 결말이 되어서야 알 수 있다. 다시 처음부터 써보자.

Trying for theme is important, but you won't see what the story is actually about til you're at the end of it. Now rewrite.


스티븐 킹이 쓴 글쓰기에 관한 책 '매혹하는 글쓰기 On writing'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이야기는 일방적으로 창조하는 것이 아닌 이미 존재하는 공룡 화석을 발굴하는 작업과 같다"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주제는 작가인 자신의 생각과 전혀 다른 것 일 수도 있습니다. 악을 처단하기 위해 떠난 용사의 모험 이야기가 사실은 부모와의 화해라는 숨겨진 주제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죠. 무시무시한 괴물이 나오는 영화를 만들려고 대본을 써봤는데 괴물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의 진정한 주제가 글을 다 쓴 뒤에야 드러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한 번에 완성되는 이야기도 글쓰기도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보는 소설, 영화, 만화, 노래 가사는 모두 초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번 고쳐 쓴 후에야 나온 완성품입니다.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것은 좋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필수과정입니다.



4. 옛날 옛적에 ______가 살았어요. 매일매일 ____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____. 그로 인해 _____. 그리고 그로 인해 __ __. 그래서 결국__ ___.

Once upon a time there was ___. Every day, ___. One day ___. Because of that, ___. Because of that, ___. Until finally ___.


소설, 영화, 드라마, 만화 같이 긴 이야기를 다루는 매체라도 결국 그 원형은 전래동화입니다. 복잡한 서사를 가진 이야기도 큰 틀에서 본다면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동화의 기본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쓰기 전 처음 구조를 잡아갈 때, 이런 전래동화의 틀을 사용하면 쉽게 이야기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옛날 옛적에(먼 미래에) 월 E라는 로봇이 살았어요. 매일매일 월 E는 버려진 지구에 남아 모든 쓰레기를 홀로 치우는 외로운 삶을 살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우주에서 온 이브라는 로봇이 월 E를 만나고 지구에서 식물을 찾게 되었어요. 그로 인해 월 E는 이브와 함께 마지막 인류가 사는 우주 함선으로 가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로 인해 월 E는 위험해 빠진 이브를 구하고 지구가 다시 생명이 살 수 있는 행성이 되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렸어요. 그래서 결국 인간들은 지구로 돌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나쁜 로봇을 무찌르고 지구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5. 압축하라, 하나에 집중하라, 여러 캐릭터를 하나로 합쳐라. (스토리가)딴 길로 샌다면 건너뛰어라. 무언가 중요한 걸 지우는 것 같겠지만 이것이 (창작의) 자유를 준다.

Simplify. Focus. Combine characters. Hop over detours. You'll feel like you're losing valuable stuff but it sets you free.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구상할 때는 여러 가지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이런 독특한 생각을 한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이 모든 내용을 써먹고 싶어 집니다. 하지만 자신이 만들어낸 설정이 이야기 전체와 어우러지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만약 내가 쓰고 있는 이야기가 의문의 살인사건을 맡은 변호사를 다룬 스릴러물인데 여기에 러브라인도 만들고, 출생의 비밀, 요즘 유행하는 유머 코드, 정치 풍자 등 재밌어 보이는 여러 요소를 마구 집어넣는다면 결국 영화는 잡탕이 되겠죠. 위에서 처럼 극단적인 예시가 아니더라도 영화의 흐름에 맞지 않는 내용이나 장면을 억지로 집어넣는 바람에 몰입도가 떨어지는 영화들이 많습니다. 이야기에 맞는 장르를 정하고 그 한 가지에 집중을 하면 창작이 수월해집니다.


영화는 두 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이야기를 풀어내야 하는 매체입니다. 아무리 재밌는 장면이어도 이야기 진행과 겉돌거나 다른 장면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결국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될 뿐입니다. 캐릭터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시절 시나리오 전공 교수가 말해주기를 어떤 캐릭터가 자기만의 뚜렷한 목소리(개성)가 없고 다른 등장인물과 비슷하게 겹친다면 없애야 한다고 하더군요. 단순히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주변 인물들을 모아 한 명으로 압축시키는 것이 더욱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이렇게 중요한 몇 가지 요소에만 집중하는 작업방식은 오히려 수월한 창작을 가능하게 합니다.





여기 5개의 팁들은 처음 이야기를 구성할 때 중요한 등장인물의 설정과 이야기의 구조를 짜는 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짜임새 있는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겠죠.


나머지 팁들도 다음 글에 이어서 소개하겠습니다.


픽사에서 배우는 스토리텔링 팁(2) 보러가기

픽사에서 배우는 스토리텔링 팁(3) 보러가기

픽사에서 배우는 스토리텔링 팁(4) 보러가기 







출처 - Emma Coats @lawnrocket, Pixar, Google Image





매거진의 이전글 <스파이더맨 홈커밍>에 벤 삼촌이 없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