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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노 Nov 05. 2016

'여행 도우미'가 너무 많다

여행 계획은 주체적으로 세우는 게 장땡

여행 계획을 정해주는 콘텐츠들은 여행자들의 시각을 좁게 만들어서 ‘나만의 여행’이 아니라 ‘남들의 여행을 따라가는 여행’이 되어버리게 할 수 있다.


으레 SNS 채널이나 페이지를 보면, ‘어디에 가서는 무엇은 꼭 해봐야 한다’고 하고 추천해주는 글들이 많다. 이곳에서 먹어야 할 10가지 음식, 저곳에서 해야 할 10가지 활동, 그곳에서 봐야 할 10가지 장소, 심지어 어느 위치에서 어떤 각도로 사진을 찍으라는 내용까지 알려주기도 한다. 여행이 처음이라면 이런 정보들을 찾아보고 가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참고용’으로만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여행 계획을 정해주는 콘텐츠들은 여행자들의 시각을 좁게 만들어서 ‘나만의 여행’이 아니라 ‘남들 다 하는 여행을 그대로 따라가는 여행’이 되어버리게 만들기 쉽다. 뉴욕이나 런던에서는 꼭 뮤지컬을 봐야 한다고들 하지만, 본인이 관심이 없는데 무조건 봐야 할까? 디즈니 랜드나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가야만 LA에 다녀왔다고 할 수 있을까? 오사카 여행은 오사카 성에 가야만 의미가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 본인의 여행 스타일에 따라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먹고 싶은 음식을 보는 게 훨씬 만족도가 높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남의 말만 듣고 계획을 짜서 가면 그 도시의 랜드마크 앞에서도 ‘와~ 멋지다’가 아니라 ‘음~ 그 사진에서 봤던 것처럼 이렇게 있구나’가 되어버린다. 가령 필자는 미술 작품에 익숙하지 않다. 여러 번 봐도 감흥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여행에서 미술 박물관에 잘 가지 않는다. 처음 유럽에 갔을 때는 런던에서는 테이트 모던에, 파리에서는 루브르에 꼭 가봐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침부터 하루를 꼬박 할애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머리 속에 남아있는 건 모나리자 앞에 몰려있던 수많은 사람들과 일정에 지쳐서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필자의 모습뿐이다.


물론 낯선 경험이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뚜렷한 선호 사항이 있다면 여행에서 그것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곳에 방문해서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지 보는 것을 추천한다. 필자는 뮤지컬이나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고 록 음악을 즐겨 듣는다. 그래서 애틀랜타에서는 Tomorrow Land라는 유명한 EDM 축제가 아니라 Music Midtown Festival이라는 음악축제에 갔다. 뉴욕에서는 The Book of Mormon이라는 레어한 작품을 보았고 Sleep No More라는 파격적인 작품을 체험했다. MoMa에는 가보질 않았고 아예 알아보지도 가지질 않았다. 가 보아야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나올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의 여신상은 아예 안 보기는 뭣해서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저 멀리 작은 실루엣 정도로만 보았다. 사실 그것도 후회했다. 그렇게 볼 거라면 차라리 상상 속의 멋진 모습으로 남겨놓는 편이 나을 뻔했다.


시카고에서는 호스텔 스태프가 추천해주는 재즈 바에 가보기도 했고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다. AMC라는 극장 체인은 티켓을 1층에서 구매하고 올라가는 방식을 가지고 있는데, 티켓을 소지하고 있지 않으면 로비에 입장 자체도 못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우리나라와 달리 외부 음식물 반입은 불가하고, 1인용 리클라이너 소파 상영관이 있어서 거의 누워서 영화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은? 영화 매니아라면 다른 나라에서는 티켓 가격이 얼마나 하고 어떤 모양인지, 극장에서 어떤 음식을 파는지 경험해보는 것이 분명 더 기억에 남을 것이다.


만화를 좋아한다면 만화에 관련된 박물관이나 전시회에 가는 것도 좋고, 야구팬이라면 뉴욕 양키스의 양키스 필드에 가보거나 축구팬이라면 FC 바르셀로나의 캄프 누에 가보면 된다. 술을 좋아하면 그 지역에서 유명한 양조장이나 주류회사가 제공하는 양조장 투어가 있으니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구경하고 갓 나온 맥주와 와인을 마시며 하루를 보내면 행복할 것이다. [요리인류]를 연출한 이욱정 PD는 본인의 책에서 ‘새벽에 일어나 그 동네의 길거리를 걸으면 불 켜진 식당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그곳에 들어가면 분주히 아침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장인을 만날 수 있다. 그 장인과 장인을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날 처음 나온 요리를 맛보면 그 도시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바로 이런 자세가 아닐까.


최근 SNS와 포털 사이트들은 여행 관련 콘텐츠를 많이 노출시키고 있다. 네이버와 네이트는 올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서 각각 ‘여행+’와 ‘여행 맛집’ 섹션을 신설했다. 이 곳 브런치도 여행 관련 콘텐츠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여가와 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이런 콘텐츠들이 사용자 유입을 증가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정보가 넘쳐날수록 자신에게 맞는 정보만 취사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내용은 과감히 넘길 수 있는 강단도 여행에 있어 중요한 스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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