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경 Jul 01. 2023

예쁜 강아지가 울고 있다

프롤로그 : 애견미용실에서 맞아 죽은 반려견과 손가락이 잘린 애견미용사

반려견에게 미용을 가르쳐주면 어떨까?


 2013년도 즈음 이 이야기를 했을 때 주변인들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말도 안 된다고, 누가 그런 일을 하느냐고 말입니다.


사람들 말대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은 미용실에서 소리를 지르고, 발버둥을 치고, 똥, 오줌을 지리면서까지 안간힘을 쓰며 미용을 거부하는 반려견들을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미용 도중 산소가 부족해 혀가 파래지며 쇼크가 오거나, 사망하는 반려동물을 보기도 했습니다. 


어째서 미용 과정 중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반려견은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미용이 무엇인지, 왜 받아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자신의 생명이 위협당하고 있다고 인지한 반려견은 싸우거나 도망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미용 도구는 매우 날카롭습니다. 동물이 움직이면 한 순간에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지요.

그러니 애견미용사는 반려견이 움직이지 않도록 붙잡을 수밖에 없고, 몸이 구속당한 반려견은 스트레스가 가중되어 더욱 발버둥을 칩니다.

 

시간 안에 미용을 끝내야 하는 미용사와 어떻게든 미용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반려견


 팽팽한 대치 상황에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반려견이 미용을 받던 도중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맞아 죽어 반려인들이 미용실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되기도 했고, 미용을 하던 애견미용사가 반려견에게 물려 손가락이 잘렸지만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애견미용사의 인권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두 사건이 터졌던 해에, 모두가 안된다고 하더라도 반려견에게 미용을 가르쳐주는 일을 반드시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반려견들이 미용과 관련한 교육을 받아 미용에 협조적으로 임하게 된다면 애견미용사도, 반려견도 안전하게 미용을 하고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예쁘지 않아도 되는 반려견 미용


 동물복지의 기본 조건이 있습니다.


1. 목마름과 배고픔으로부터의 자유

2.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3. 통증이나 부상,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4. 정상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는 자유

5. 공포와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


이 다섯 가지 조건은 동물의 최소한의 복지를 위한 조건입니다. 


 일반적인 미용 과정에서 이 다섯 가지 기본적인 조건들 중 지켜지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경상대학교 수의과대학의 연구 결과 미용을 받는 개들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정상 수치의 3배 이상 뛴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미용을 받는 몇 시간 동안 먹거나, 마시거나, 배변 활동을 할 수 없고,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감, 스트레스를 받지만, 스스로 테이블에서 내려갈 수 있는 선택권은 없습니다.


반려견들은 미용 테이블 위에서 헥헥거리고, 안절부절못하거나, 미용사를 쉴 새 없이 핥는 등의 스트레스 반응을 보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반려견의 모습을 보며, 너무 귀엽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개의 행동을 통해 정서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들이 볼 때는 너무나도 안쓰러운 장면인데 말입니다.


아마 행동학을 공부한 사람들만큼 반려견의 정서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자신의 반려견에게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게 할 반려인은 그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예뻐지기 위해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은 사람이라서 가능한 일입니다.

반려견의 입장에서 정말로 필요한 미용은 예쁜 미용이 아니라, 두렵지 않은 미용입니다.



반려견도 사람도 안전하고 즐거운 미용


 미용을 가르치는 미용실을 운영한 지 어느덧 6년째입니다.

저와 저희 직원들은 물리는 일 없이 안전하고 즐겁게 반려견과 미용을 하고 있습니다.


발톱을 깎을 때 스스로 발을 내밀어주는 기특한 반려견


힘으로 반려견을 보정할 필요 없이, 반려견이 스스로 미용에 참여하기 때문이지요.

미용 테이블에 반려견이 스스로 올라오고, 발톱을 깎을 때는, 스스로 앞발을 내밀어 주고, 얼굴 털을 커트할 때는 스스로 얼굴을 미용사의 손바닥 위에 착 올려줍니다. 


미용사와 반려견 모두 스트레스가 적고 안전하며 즐거운 과정입니다.


 제 글은 반려견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고민하는 모든 반려견 미용사와 반려인을 위한 글입니다. 

과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밝혀낸 과학적 사실과 지난 6년 동안 약 1천 케이스 가량 미용과 관련한 행동문제를 다루었던 경험을 토대로 반려견의 미용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예방하고 완화하는 환경 관리 방법과, 반려견이 미용에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바람직한 행동을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한 번도 행동학을 공부해 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이해하기 쉽게 서술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제 이야기를 통해 예쁘지 않아도 즐겁고 안전하게 미용을 받고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반려견과,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볼 수 있는 애견미용사들이 늘어나고, 먼 훗날에는 반려견이 미용 교육을 받는 것이 당연해지는 문화가 자리 잡게 되기를 바랍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