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취향탐구: 책(1)

독서는 정적인 취미가 아닌 것이다. 책은 마음을 움직이게 하므로.

by 욘킴

최근 몇 년간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문해력 저하 문제라던지, 그 원인 중 하나가 독서 부족이란 말들을 들으면 나는 슬프다. 책이 무슨 자기 계발 도구로 전락하는 것 같아서. 물론 독서라는 과정은 눈도 바쁘고, 가만히 앉아서 주의를 쏟아야 하는 일종의 정신노동이니 그 과정에서 어휘력이니, 문해력이니 하는 것들은 자연히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내가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책 읽기를 권한다면, 그런 이유를 들진 않고 싶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운동을 하면 근력이 좋아진다라던지, 수학이라면 질색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수학을 하면 사고력이 좋아진다는 말만큼이나 매력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책으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시도하다 보면 그다지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독서가 풀리지 않는 난제에 명쾌한 해답을 준다던지, 나 대신 빚을 갚아준다던지, 깊어진 관계의 골을 치유하는 솔루션을 주는 것도 아니다. 꽤 그럴싸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들도 있지만 쓰는 사람이 먹고 소화한 걸 읽는 사람이 같은 수준으로 음미하는 건 불가능하다. 현실의 문제를 짠 하고 마법처럼 해결해 준다면 누구나 독서광이 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건 없다.

삶은 항상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고, 때로는 와장창 무너지기도 한다. 흐트러진 생각에 아무도 답을 주지 않을 때, 내 안에서 답을 찾아야만 하는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그런 문제에 한 번 눈을 뜨게 되면 삶의 다른 모든 문제와 목적은 의미를 잃고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외로운 방황이 시작된다.

그럴 때 책은 빛을 준다. 가장 어둡고 막막한 터널을 지날 때 의지할 수 있는 작은 등불 같은 그런 빛을. 활자를 따라가는 여정에서 우리의 눈동자가 반짝이는 이유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빛을 따라 출구를 찾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출구는 언제나 내 안으로 향하는 질문으로 나를 인도한다. 그러면 갈피를 잃었던 시간이 천천히 방향을 잡아나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다.

그래서 나는 책에 관한 많은 찬사 중에서도 여행, 나침반, 등대와 같은 비유에 공감한다. 독서는 정적인 취미가 아닌 것이다. 책은 마음을 움직이게 하므로.


좋은 책이란 뭘까. 아마 손이 먼저 가는 책일 것이다. 만화든 소설이든, 심지어는 사용설명서든 상관없다. 괜히 눈길이 머물고, 잠깐 펼쳤는데 어느새 몇 페이지를 읽고 있는 책. 그런 게 좋은 책이다. 많이 읽다 보면 묘하게도 양서와 악서를 구분하는 눈이 생긴다. 딱히 애쓰지 않아도, 커피 맛 구별하듯 저절로.


모든 책은 나름의 답을 주므로,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헤매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고르면 된다. 그래서 단순히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표지가 예뻐서와 같은 이유도 타당할 수 있다. 좋은 책의 기준은 결국 읽는 사람의 취향과 안목이 결정하는 것이니까. 그걸 알아보기 위해 서점이나 도서관을 가는 것 자체가 즐거운 모험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입맛의 디테일: 소시지야채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