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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탐구: 책(2)

두 명의 무라카미를 구분하지 못하던 시절

by 욘킴

10대의 나는 책을 가리지 않고 읽었다. 뭘 알고 읽는다던지, 취향이랄 것도 없었으므로 장르, 나라, 시대 따지지 않고 잡히는 대로 읽었다. 그냥 책이라는 대상 자체에 몰입하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너무 가리지 않고 읽다 보니 돌이켜보면 지나치게 난해하거나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것들에 노출될 때도 많았다.


특히 소설이 그랬다. 일본 소설을 처음 접할 무렵 두 명의 무라카미(하루키, 류)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 접했던 두 권의 책: 달콤한 악마가 나에게로 왔다, 코인로커 베이비즈는 실로 큰 충격이었다. 무라카미 류는 텍스트가 어디까지 노골적일 수 있는지 알게 된 나의 첫 경험이었고, 아무런 준비 없이 읽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지금도 난 작품 안에서 섹스를 직접 묘사하거나 불필요하게 과장하는 장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흐름 상 반드시 필요한 장치가 아니라면 충분히 은유적으로 우회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작가의 단순한 배설을 견뎌야 하는 것 같아 불쾌감이 든다.


하지만 다행히도 도서관이 무라카미 류 같은 쇼크를 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보통은 마음에 쏙 드는 작품들을 발견할 기회가 더 많았다. 폴 오스터, 코맷 맥카시, 아멜리 노통브, 파트리크 쥐스킨트 같은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도서관은 마치 온갖 맛이 나는 강낭콩 젤리 상자 같아서, 어떤 건 달콤한 버터 팝콘 맛을, 어떤 건 귀지 맛을 선사했다. 매일 끝도 없이 자라나는 호기심을 채우는 데 더할 나위 없이 건전한 공간이었다.


나중엔 학교도 제끼고 도서관에 숨어 하루를 보내는 날도 많아졌다. 졸업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출결 일수 선에서, 내키는 날마다 그렇게 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더 나쁘다고 생각해서, 학교를 빼먹은 날엔 집에 당당히 고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다행이랄까, 이상하달까, 우리 집엔 그걸 혼내는 어른이 없었다.


어른(1),(2)

나: 나 오늘 학교 안 갔어.

엄마: 엥? 왜? 그럼 어디서 뭐 했어?

나: 도서관에서 책 봤어.

엄마: 아~ 난 또. 그치만 여러 사람 손 타는 책 지저분 해. 사서 봐. 돈 줄게

나: (돈을 받음) ?

아빠: 어쭈 우리 집에 책 좋아하는 놈이 다 있네 조상님 놀라셔 임마

나: (칭찬 받음) ??


인생은 학교 밖에서 더 많이 배운다던 아빠,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책이라면 화색이 되며 지갑을 열던 엄마. 학교에서 받아오는 성적표보다 오늘 내가 읽은 책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준 그런 어른들이었다. 덕분에 책은 언제든 실컷 읽을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책을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게 된 밑바탕이다.



여담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나에게 끊임없이 미안해 한다. IMF로 집안이 무너져서, 학원 한 번 제대로 보내주지 못해서, 교복을 줄였다며 교사에게 뺨을 맞던 나를 구해주지 못해서 등등 미안한 이유가 끝도 없다. 더 든든한 부모가 되어주지 못했다며 스스로를 자책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부모로서 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을 만큼 이미 다 해주었다고. 삶의 갖은 풍파 속에서도 나를 굳건히 키워내며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고. 그리고 그 모든 값진 것들 가운데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책을 마음 놓고 벗 삼을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이라고.


10대를 지나 20대가 되어서는 생산적인 어른으로 살아야겠단 다짐을 할 일이 많았다. 나의 20대는 취업난과 스펙 쌓기 전쟁이 과열되어 너도 나도 소위 자기 계발 광풍이 부는 시기였다. '이래야 저래야 청춘이다', '이런저런 마인드 셋', '일 잘하는 누구는 어떻다' 류의 자기 계발서가 불티나게 팔렸다. '취준'이란 명분 하에 책도 경쟁적으로 읽는 실로 기이한 현상이 우리 또래에 만연하던 것이 기억난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사회에 던져진 입장은 나도 같았고, 10대 때와는 달리 조바심 나는 마음으로 교보문고를 들락거려야 했다. 하지만 그놈에 자기 계발서, 나는 '자기', '계발'이란 키워드만 보아도 입 안에 기름이 찬 것처럼 거북하고, 뱃속에서 무언가 불편하게 간질거리는 것이 도무지 내키질 않았다. 손도 대지 않았다. 타인의 성공담을 읽으면 나의 것이 되리란 맹목적인 믿음도 싫었다.


일단 자기 계발로 점철된 평대의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가 온통 내키질 않으니, 나름의 방식으로 교양을 쌓을 요량이었다. 시대가 추천하는 도서는 싫으니, '자기'는 철학으로, '계발'은 차라리 취업에 직접 도움이 되는 기술을 공부하자는 전략이었다. 그러다 보니 20대엔 고전 철학과 기술서적만 읽었다. 고전은 주로 명상록, 한비자 같은 것들이었다.


근 10년을 고집스러울 만큼 삭막한 책꽂이를 유지했다. 오죽하면 엄마가 "요즘은 소설을 통 안 읽네." 할 정도였다. 당장은 모르겠으나 언젠간 반드시 통찰이 생기겠지라고 막연히 기대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반은 정확했다. 20대에 흡수하기엔 너무 깊은 가르침들이었다. 위인의 성품에 공감할 수 있는 자질이 턱 없이 부족한 나이였다.


그리고 그대로 30대가 되었다.



(취향탐구-책(3)에서 계속)


취향탐구-책(1): https://brunch.co.kr/@yonkim/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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