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생각하는 능력에 대한 생각

오늘흔적

by 욘킴

오늘 아침 신문에서 묘하게 마음을 붙드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AI 시대, 인간은 생각하는 능력을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 사유하는 행위와 그 깊이를 지켜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인공지능’을 그려냈다면, 아마도 나는 전국 1등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상상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요. 하지만 그 상상은 반 세기도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 사실이 요즘은 조금 기가 차달까, 우습게 느껴질 지경입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업무에 AI 프롬프팅을 쓴다는 건 다소 위험한 장난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작년에는 30% 정도를 AI에 맡기게 되었고, 올해의 나는 하루 대부분의 데이터를 AI로 검증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나보다 정확하고, 덜 피곤하고, 감정 소모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의 터치가 필요한 모서리가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이 생깁니다. 아직은 말입니다.

우연의 일치일까요. 오늘은 이상하게도 비슷한 문장들이 자꾸 눈에 걸렸습니다. 모르는 사람의 티셔츠에서 “Machine is learning. Are you?”라는 문구를 봤습니다. 인사 한 번 나누지 않은 타인에게 느닷없이 충고를 들은 셈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네, 노력 중입니다”라고 대답할 뻔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민망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기계는 꾸준하고 참을성 있게 배워가는데, 정작 인간 쪽은 날씨와 기분, 섭취한 카페인의 양에 따라 들쭉날쭉합니다. 사유의 깊이를 지켜야 한다며 나름 철학적인 의지를 다져보긴 하지만, 생각하는 능력이라는 게 갈수록 애매해지기도 하고 말입니다. 심각한 문제를 판단할 때보다 별 것 아닌 문제에 갈피를 잃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하고요. 이를테면 오늘 오후에는 점심 메뉴 하나도 쉽게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기계는 앞으로 더 빠르게 진화하겠지만, 인간이 (그나마도) 마지막까지 지켜낼 수 있는 건 '감각'으로 형용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장을 넘기는 촉감을 좋아하는 취향이라던지, 문장 하나에 오래 머무는 마음, 잘 써지지 않는 글씨를 억지로라도 연습하려는 쓸데없는 끈기 같은 사소한 감각들 말입니다. 매일 인간인 상태의 나를 조금이라도 유지해 주는 작은 장치랄까요.


세상의 속도를 내가 어찌할 수 없다면, 나만의 페이스로 무엇이든 꾸준히 이어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나치게 쫓기지도, 그렇다고 도태되지도 않는 정도의 태도로 말입니다. 누군가는 느리다고 하겠지만, 나는 그 정도의 뒤처짐쯤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며 “Machine is learning. Are you?”라는 문장이 다시 떠오를 때쯤, 아침에 읽은 기사 속 문장이 오버랩되었습니다. '사유의 깊이를 잃지 말 것'. 기계는 학습하고, 인간은 생각하는 능력을 지켜야 한다니, 점점 더 선명해지는 서로의 역할이 기묘하게 느껴집니다.


어떤 이들은 언젠가 인간의 사유마저 AI가 대체할 거라고 말합니다. 나는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생각은 흐리멍덩하고, 쓸데없고, 엉뚱하게 새어 나가고, 메뉴 하나에도 오래 머뭇거리곤 하니까요. 다만 그런 비효율이 나는 아직 마음에 듭니다. 어설프지만 살아 있는 느낌이 있으니까요. 그런 비효율을 누구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시간이 조금 더 길었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