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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Oct 21. 2020

Holy Cate.(2)

케이트 블란쳇(Cate Blanchett)(2)-(with 토드 헤인즈)



* 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캐롤(Carol)>(2015, 감독: 토드 헤인즈)

<아임 낫 데어(I’m Not There.)>(2007, 감독: 토드 헤인즈)

<커피와 담배(Coffee And Cigarettes)>(2003, 감독: 짐 자무쉬)

<어디갔어, 버나뎃(Where’d You Go, Bernadette)>(2019,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더 맨 후 크라이드(The Man Who Cried)>(2000, 감독: 샐리 포터)


* 위 굵은 글씨로 표시된 두 작품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능숙한 배우는 작품과 인물의 성격에 맞춰 화면을 홀로 채우거나, 상대 배우와 나눠 가진다. 토드 헤인즈의 연출과 맞물린 케이트 블란쳇도 그러하나, 그 방향이 독특하다. 주드 퀸은 씬을 독차지하며 사이사이에 여백을 남기고, 캐롤 에어드는 상대와의 케미로 매초를 메운다.



<캐롤>(2015)은, 현재-과거-다시 현재로 이어지는 구성을 따라, 대부분 테레즈의 기억과 시선을 중심으로 이어나가는 작품이다. 캐롤은 자주 그 정가운데에서 관찰된다. ‘대상에 대한 깊은 관심’이 가득한 테레즈의 눈으로, 단순히 표면만이 아니라 감정과 내면까지. 루니 마라가 ‘무,표정’이라는 방법으로 모든 것을 솔직하게 드러냈다면, 케이트 블란쳇은 풍부하게 변하는 표정으로, 숨기고 밀어내다, 점차 드러내고 끌어당긴다.  


<캐롤>(2015). IMDB 이미지.


요리를 하면서 통화를 하는, 무릎을 굽히거나 프라이팬을 잡는 자세, 전화기를 끼우느라 꺾은 목의 각도가, TV 쿠킹 쇼를 찍듯 정확하다. 캐롤에겐 어떤 태도가 배어 있다. 귀찮은 듯 한숨을 섞어 흐르듯 뱉는 말과, 살짝 어수선한 동작조차 모두 픽션 같다 -작품 자체가 픽션이지만, 그 정도로 완벽해 현실감이 없다는 뜻이다. 분명하고 무심하게 원하는 것을 말하고, 부드럽고 강렬하게 응시한다. 발음은 정확하나, 소리에 공기를 많이 섞고 높낮이를 드라마틱하게 조절한다. 캐롤의 입을 거치면 일상적인 단어나 상투적인 문구에도 무슨 특별한 뉘앙스가 생긴다. 연극 같으면서, 진심이 묻어나고, 혼자 생각에 잠겨 있다가도, 다음 순간 테레즈에 집중한다. 관객도 약간 헷갈린다, 캐롤이 놓고 간 장갑에,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테레즈는 첫 만남에서 캐롤을 의식하게 되고, 첫 식사 자리에서 그녀에게 완전히 끌려들어간다. 카메라는 테레즈가 끌려가는 방향대로 움직이며 캐롤의 매력을 담는다. 이 씬들에서 케이트 블란쳇은, 테레즈에게, 관객에게, 캐롤의 ‘인상’을 남긴다. 자주 머리를 흔들거나 시선을 돌리며 혼잣말하듯 대사를 잇다가, 별안간 사선으로 턱을 내리고 웃음기를 섞어 살짝 노려보듯 응시하고, 바로 눈빛을 바꿔 웃음기를 빼고 긴장을 머금어 촉촉하고 아련하게 바라본다. 처음 ‘테레즈 벨리벳’이라고 발음할 때는, 자동으로 숨을 죽이게 됐다.


<캐롤>(2015). IMDB 이미지.


캐롤의 집이 배경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캐롤의 삶과 속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혼을 앞둔 하지 측의 압박 때문에, 일상적인 불안에 지쳐 있다. 딸을 향한 밝고 장난스러운 태도엔, 대개 초조함이 묻어난다. 머리를 빗겨주며 다정하게 말하지만, 눈은 생각에 잠겨 허공을 향한다. 하지와 대화할 때는 최소한의 배려만 건네며, 대개 시선을 맞추지 않은 채, 차갑고 낮게 뱉는다. 눈에는 경계심이, 뺨에는 그늘이 있다.


하지가 린디를 데려간 후 테레즈를 돌려보낼 때, 캐롤의 ‘태도’는 잔인한 방향으로 작용한다. 시니컬하고 초조하게 욕을 중얼거리다가도, 염려에는 선을 긋는다. 캐롤에게 아직 이 관계는, 즐거움을 나누며 현실을 잠깐 잊게 할 정도의 것은 되어도, 고통을 나눌 정도로 깊은 것은 아니었거나, 후에 말하듯 테레즈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서였거나, 자신을 추스르기도 힘들어 누군가에게 줄 곁이 없었거나 - 아마 셋 모두였을 것이다. 울먹이고는 있으나 말투와 표정은 단호하고, 걸음걸이는 냉정하다. 현재 시야에 테레즈는 없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후의 만남에서도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못박는다. 그 부드러운 말투가, 차갑다.


<캐롤>(2015). IMDB 이미지.


캐롤은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낮게 누른다. 변호사가 남편이 단독 양육권을 주장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낮은 톤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전보를 받고, 터커가 남편이 고용한 사람이었음을 알았을 때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총을 꺼내 들지만, 소리를 지르는 대신 이를 악물고 낮게 끓듯 말하며, 노려본다. 이후 오히려 테레즈가 울며 무너지고, 캐롤은 그녀를 위로한다. 진심과 벽이 동시에 느껴지는 다정하고 차분한 태도는, 순간적으로 이별의 짐작을 밀어냈으나, 결국 돌이켜 보면, 이별의 신호였다.


캐롤이 절제하지 않은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은, 애비 뿐이다. 솔직한 표정으로, 꽉 막힌 삶에 숨을 틔우듯 편하게 툭툭 감정을 뱉는다. 하지 부모님과의 식사에서, 불쾌감을 겨우 참으며 경직된 입꼬리를 올리던 캐롤은, 애비 앞에서 엉망이 된 뺨과 겨우 짜내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애비가 테레즈 얘기를 꺼내자, 분위기가 아련하고 차분해지며, 절망으로 멍하던 눈이 기대와 후회로 빛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된 대가로 ‘비정상’이라 낙인찍히는, 비정상적 현실. 딸을 빌미로 하지와 그 가족들, 가부장적 사회는, 캐롤의 존재를 구속하며 괴롭힌다. 그녀는 소중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자신을 자신일 수 있게 하는 자유, 관계는 끊지 않는 균형을 겨우 유지해왔다. 그러나, 한계가 닥친다. 그 상황에서 결심하게 만드는 것은 ‘이상하게도’ 테레즈와의 기억이다. 길을 건너는 테레즈를 우연히 목격한 캐롤의 표정에는,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지만, 어떤 분명함이 묻어난다. 캐롤만 테레즈를 변하게 한 것이 아니라, 테레즈의 존재도, 캐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케이트 블란쳇은 그 순간, 먼 실루엣을 좇는 눈빛으로 드러낸다. 다음 만남에서 캐롤은, 하지에게 말한다. 울음과 함께 겨우 나오는, 가슴 밑바닥을 긁어 끌어내는 소리로. 몸은 떨리고, 뺨은 자꾸 일그러지지만, 눈은 슬프고 확고하게 빛난다. “날 부정하면서 살면, 린디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 무너지지 않으려고 온몸을 다잡고 있던 그 순간의 캐롤은, (이런 식으로 쓰는 것이 내키진 않지만) 절망적으로 멋졌으며,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찢어지게 아름다웠다. 떠올릴 때마다, 목 언저리가 울렁거리는 장면이다.



<캐롤>(2015). IMDB 이미지.


하지와 리처드는 ‘사랑한다’는 대사를 자주 한다. 그들이 그 말을 할수록, 이 이야기에서 진실로 로맨틱한(린디와 애비가 있으므로 굳이 한정한다.) 사랑을 하는 건, 캐롤과 테레즈 뿐임을 확신하게 된다. 함께 여행하고, 감정적으로 가까워지고, 서로를 더 좋아하게 되는, 관심이 사랑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테레즈는 캐롤이 편안해지고, 캐롤은 테레즈가 더 놀라워진다. 테레즈의 어쩔 줄 모르는 끌림이 점차 의지가 담긴 애정이 되어 간다면, 원하는 만큼 매력을 흘리며 상대를 살피던 캐롤의 눈은, 점점 푹 빠져들어 긴장을 머금은 눈이 된다.  


테레즈가 처음부터 속을 다 드러내면서 ‘성장’ 하는 인물이라면, 캐롤은 속을 알 수 없는 완벽한 존재로 등장했다가, 갈수록 상황과 마음이 드러나면서 캐릭터로서 완전해진다. 그리하여 캐릭터 서사/표현의 관점에서, 재회 씬의 둘은, ‘동등한’ 상태다. 자조적 농담을 섞어 대화를 여는 캐롤, 호흡은 빠르고 입가와 목은 경직돼 있다. 속삭이듯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눈을 내리깔고 제안을 한다. 테레즈는 눈으로 묻고, 캐롤의 눈엔 눈물이 고인다. 눈과 눈의 대화가 이어지다, 캐롤은 뱉는다, “I love you.” 그야말로 진짜 “I love you.” 였다고, 상대를 존중하는,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언어였다고,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 긴장은, 마지막 장면의 벅찬 흐름으로 이어진다. 테레즈는 흔들리지 않는 눈을 정면으로 캐롤에게 고정 시킨 채, 캐롤은 사람들과 대화하다 테레즈를 눈치챈 순간 그대로, 고개를 기울이고 눈은 약간 사선으로 둔 채, 서로를 바라본다. 눈빛으로, 루니 마라와 케이트 블란쳇은, 테레즈와 캐롤의 서로에 대한 마음을, 생각을, 각자의 결정을, 관계의 과정을, 미래를, 통째로 관객의 가슴에 내려놓는다. 굳이 설명하지 말 것을, 설명할 수 없을 것임을, 그대로 느끼고 존중할 것을 선언한다.  


<캐롤>(2015). IMDB 이미지.




<캐롤>은 두 캐릭터의 감정과 선택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이야기다. <아임 낫 데어>(2007)에서는 플롯들이 맞물려 전달하는 메시지가 중요하다. 동시에, 캐릭터들이 읊는 철학적인 대사는 스토리 맥락과 일치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그 조화를 완성하는 것 중 하나는, 주드 퀸의 건조한 목소리와 귀찮은 듯 담백한 톤이다. 배우 본래의 울림이 풍부한 저음에, 비음과 크랙을 섞어 건조하고 칼칼하게 내보내는 목소리. 언뜻 비슷한데, 아주 다른 사람의 것 같다. 극에 몰입하며 계속 들을수록, 노래하는 밥 딜런의 목소리와 겹쳐 들린다.


관 속에 누운 모습으로 처음을 장식한 그는, 러닝타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다시 등장한다. 부스스한 머리, 햇빛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눈빛들을 가리기 위해 쓴 듯한 선글라스, 몸을 감싼 검은 코트와 삐죽 올라간 마른 어깨,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 플랫폼 부츠와 어슬렁어슬렁 움직이는 다리. ‘약쟁이’ 스타 주드 퀸의 실루엣이다. 귀찮은 듯 무대에 슬쩍 올라가, ‘기관총을 쏘고’ 일렉기타를 연주하고, ‘팬’들의 야유를 받으며, 대강 몇 마디를 마이크에 찌끄리고는 무대를 뜬다. 선글라스를 벗으면 드러나는 깊고 공허한 눈빛, 삐딱한 고개와 미소, 담배를 쥔 손. 캐릭터의 이미지와 피는 모양새에 따라, 담배는 다른 느낌으로 작용한다. 롤라의 담배가 패션 소품 같았다면, 주드 퀸의 담배는 생필품 같다.


<아임 낫 데어>(2007)


비스듬히 누워 한쪽 다리를 세우고 잡지를 넘기는, 약에 잔뜩 취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몸을 웅크리고 타자기를 두드리는, 정적인 순간들에도/ 알렌과 점프하며 재킷을 빙빙 돌리거나, 비틀즈 멤버들과 몸을 던져 춤을 추는, 동적인 순간들에도 -주드 퀸일 때 케이트 블란쳇은 몸을 엉망으로 놀리거나 흐트러지게 두는데- 그 자체로 폼이 된다. 정말로 ‘막’인 버나뎃과는 다른 분위기다. 케이트 블란쳇의 섬세하고 능숙한 몸놀림이 새삼스럽다.


마이크 앞에 앉은 주드 퀸은, 어깨를 굽히고 손을 무릎 사이에 끼우고는 산만하게 몸을 건들거리며 인터뷰 질문들에 답한다. 눈가를 비비고, 도중에 담배를 꺼내 문다. 질문들은 계속된다. 그는 담배와, 눈가와, 담배에 불을 붙여 주는 사람에 집중하는 중간중간, 답한다. 항상 귀찮고 피곤해 보인다. 홀로 있을 때는 거기에, 공허가 덧붙는다. 좁은 복도를 걸어갈 때, 화장실에서 거울을 들여다볼 때, 주드 퀸은 얼굴 전체에 힘을 뺀다. 입은 약간 튀어나와 있고 눈은 멍하게 초점이 없다.


<아임 낫 데어>(2007)


주드 퀸은 많은 장면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등장한다. 감정 연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눈,을 가린 채로, 입가와 눈썹, 광대에 힘을 주거나 빼며, 손과 팔, 어깨의 동작을 사용해, 케이트 블란쳇은 그의 상태와 상대에 대한 감정을 드러낸다. 알렌 긴즈버그를 마주쳤을 때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창문을 내다보고, 광대를 올려 순수한 기쁨을 드러낸다. 그와 하는 대화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할 때와 달리 -예술가끼리의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할지 -진심이 아른거려, 끼어들 수 없는 공기를 형성한다. 잠깐 하늘을 올려다볼 때, 멀어져 가는 상대를 응시할 때, 선글라스 너머로 눈빛이 전해진다. 이후 그는 손을 입에 대고 다리를 올리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알렌 긴즈버그였어, 맨!’ 하고 흥분을 식힌다.


키넌을 대하는 태도는 이와 대조된다. 그가 자꾸만 신경을 긁는 말을 하자, 처음에는 담배를 쥔 손이나 고개를 흔들며 입가에 비웃음을 띄우고는 농담 섞어 받아치지만, 점차 미간을 찌푸리고 입가가 굳어진다. 마침내 화가 나 차에서 내린다. 문을 잡고 연기와 함께 적의를 차 속으로 뿜어낸다. 걸어가다 멈춰 몸을 삐딱하게 돌리고는, 상체와 손을 과장되게 흔들며 흥분(이번에는 기쁨이 아닌 화난 흥분)을 그대로 표출한다. 목과 눈썹, 이마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담배를 소리 나게 뻑 빨며, 마지막 말을 툭 뱉고 성큼성큼 걸어간다.


그 화는, 공연으로 이어져, 다른 형태로 표출된다. 이번에는 선글라스를 벗고 있다. 회의나 귀찮음이 묻어나던 야외 공연 씬과는 다른 분위기다. 카메라는 살짝 위에서 내려다보는 각도로, 공연하는 주드 퀸을 담는다. 손을 쫙 펴고, 고개를 한쪽으로 꺾은 상태로 뻣뻣하게 힘을 준 몸을 절도 있게 흔들며 노래한다. 입에도 힘이 들어가 있으며, 카메라를 노려보는 눈은 이글거린다. 마이크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대거나, 입을 비틀거나, 피아노를 치거나, 팔을 뒤로 들고 흔드는, 하나하나의 동작이, 메시지를 전달한다. 공연 후 담배를 손에 들고 목을 이리저리 건들거리며 관객의 야유에 답할 때까지, 키넌과, 스스로와, 관중과, 무대에 걸린 성조기와,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 비웃는 것 같다.


<아임 낫 데어>(2007)


예수 형상을 올려다보며, 주드 퀸은 손나팔을 하고 몸을 과장되게 지그재그로 흔들며 하늘을 향해 소리 지른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다음 씬에서는 선글라스를 벗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얼굴은 진지하게 굳어 있고, 눈은 깊게 찌푸려져 있다. 주드 퀸에게 선글라스를 씌우거나, 씌우지 않거나, 벗기는 건, 당연히 의도적인 연출이다. 쓰고 있을 때는 신비로워 보이고, 벗으면 비밀을 엿보는 기분이 든다. 그 연출과, 케이트 블란쳇의 표정과, 흑백 화면의 조화는, ‘성스럽다’. 차 안에서, 선글라스를 쓰지 않고, 누군가에게-아마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주드 퀸. 지쳐 있으나 희한하게 맑은 눈빛으로, 차분하고 나직한 톤으로, 여전히 담배를 들고, 여전히 살짝 시니컬하게 문장을 늘어놓다, 눈을 비비며 창밖을 본다. 가만히 이쪽을 응시하다, 슬며시 시원하게, 입꼬리를 올린다. 주드 퀸은 밥 딜런이 아니지만 그러건 말건, 그 순간, 이 유명한 천재 예술가의 마음을, 한 겹 들춰본 기분이 들었다.



‘밥 딜런의 여섯 영혼들 중 누가 진짜인가/중요한가’는 상당한 우문이지만, 어쨌든 표면적으로(외형적으로도) 밥 딜런을 가장 닮은 인물인 주드 퀸을, 여성인 케이트 블란쳇이 가져갔다는 것은 독특하고 ‘바람직한’ 선택이었다. <벨벳 골드마인>(1998) 속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가 뮤지션과 배우의 경계에서 완전히 브라이언 슬레이드의 옷을 입었다면, 케이트 블란쳇은 오로지 연기로, 완벽하게 주드 퀸의 신을 신는다. 어떤 작품에서 처음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 내가 그를 특별하게 의식하게 된 계기는 주드 퀸이었다. 아무런 코멘트 없이 여성 배우에게 남성 역할을 맡긴 토드 헤인즈에도, 그걸 그렇게 독보적인 멋으로 소화한 케이트 블란쳇에도, 그 결과물인 주드 퀸과 <아임 낫 데어>에도, 나는 죄다 미쳐버리게 됐다. 딱히 밥 딜런의 팬이 되지는 않았지만, ‘밥 딜런’이라는 사람에게 관심이 생겼고, 자서전과 평전을 연달아 흥미롭게 읽었고, 그 후에 다시 주드 퀸을 보았고, 또 보았고, 또 보았다.


<아임 낫 데어>(2007)



버나뎃, 캐롤, 주드 퀸(롤라는 결이 달라 제외한다). 매우 다른 성격과 성향을 지녔지만, 모두 언뜻,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캐릭터들이다. 케이트 블란쳇은, 지나치게 완벽하거나, 이상하거나, 우아하거나, 천재인- 그런 사람들이 지닌 ‘특별함’이, 그 속에 있는 보편적인 감정과 조화를 이루도록 특별하게 연기한다.


아주 많은 배우들이 내 심장에 ‘저거 어떻게 하지’라는 의문과 감탄을 심었다, 그러나. 케이트 블란쳇의 퍼포먼스는 그 ‘어떻게’랄지-연기의 과정을 떠올릴 수 없게 만들었다. 저렇게 퍼펙트하고 다이나믹하고 델리케잍하고 파워풀하고 홀리하기까지 한 무언가는 처음 봤다. 그가 스크린에 잡히면, 믿음이 가서, 불필요한 긴장을 풀고 극에 몰입하게 된다. 케이트 블란쳇은 그걸 어떻게 하는 걸까. 어떻게 그렇게 ‘특별한’ 사람의 마음속에 푹 들어가, 보여 주고 싶은 만큼만 보여주다가, 갑자기 관객과 훅 이어주며 온통 흔들어 놓는 걸까.


<아임 낫 데어>(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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