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를 꿰뚫는 새로운 남성성, 코디 스밋 맥피.
코디 스밋 맥피 Kodi Smit-McPhee
<슬로우 웨스트(Slow West)>(2015, 감독: 존 맥클린)
<파워 오브 도그(The Power of the Dog)>(2021, 감독: 제인 캠피온)
* 위 작품들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자saint. <슬로우 웨스트>(2015)의 마지막, 깊이 잠든 듯 가지런한, 제이 캐번디시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있으니, 자동으로 그 단어가 떠올랐다. 다 자라지도 못하고 잘린, 순진한 로맨티스트의 싹- 정도로 묘사하기에, 제이는 너무한 존재다. 카메라에 담긴 그는 때로 낯설다. “언젠가 달에 가는 철도가 생길 거예요. 가면, 먼저 네이티브, 달 사람들을 샤냥해야겠죠.” ‘silly boy’의 천진한 공상인지, 학자의 시대비평인지, 혹은 샤먼의 예언인지, 헷갈린다.
뽀얀 피부에 섬세한 이목구비. 부러질 듯 가느다란 실루엣. 마른 탓에 굽어 보이는, 반듯한 어깨. 두께에 비해 너무 길어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종종 관절이 접힌 채 정지해 있는 팔다리. 살짝 애매한 폼 그대로 당당해 독특한 카리스마를 풍긴다. 코디 스밋 맥피, 현재 스물다섯인 이 배우는, 십 년 넘게 꾸준히 활동한 베테랑이다. <더 로드>(2009), <렛 미 인>(2010)을 비롯한 작품으로, 커리어 초반 이미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이 글은, ‘아역’ 배우의 타고난 천재성에 대한 감탄은 아니다. 어떤 시기 이후, 독자적인 언어로 스스로를 정의한 이 ‘아티스트’가, 특정 작품들에서 끌어낸 에너지에 반해, 그 흔적을 모아 두려는 거친 시도에 가깝다.
제이는 어정쩡하게 손을 올렸다가, 비슷한 리듬으로 내린다. 총이 발사될 때마다 언 채로 움찔거린다. 총을 겨눌 때도, 돈을 꺼낼 때도, 몸에 경계를 두르나, 그 모양이 어설퍼 효과가 없다. 가느다란 목소리는 차분하다. 말끝마다 붙이는 ‘sir’. 때와 장소에 맞지 않는 격식이 우스꽝스러우나, 왠지 웃을 수가 없다. 순수를 마주할 때 생기는 경건함이라고 할까. 돈 따위의 세속적인 것, 총 따위의 폭력적인 것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래를 만나자, 멈추어 듣는다. 흥겹지만 어딘가 슬픈 멜로디다. 리듬에 맞춰 흔들리는 고개, 햇빛에 일그러진 눈, 다물린 입술에 통달의 우울이 묻어난다. 오가는 프랑스어가 몽환적인 뉘앙스를 더하는 와중, 사랑 노래라는 연주자의 말에, 제이는 답한다, “Love is universal like death.” 문학적 무게가 있는 표현이 여린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찰나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사일러스를 향한 “You are a lonely, lonely man.”, 베르너를 향한 “I come in peace.”도 유사하다. 여전히 빛과 바람에 일그러진 채, 온화한 미소를 띠우고, 적당히 머뭇거리며 내보낸다. 이어 슬프고 담담하게 ‘폭력과 고통’을 묘사한다. 시처럼 대사를 읊을 때, 제이는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어른이 되기 전 이미 노인이 된 이 같다.
베르너에게 속은 후, 속옷 차림으로 담요만 두른 채 어기적어기적 걸어가는, 버섯을 향해 쭈그리고 있는 모양도, ‘없어 보이지’ 않는다. 이 ‘부끄러운’ 순간, 제이의 찡그린 얼굴엔, 수치의 정서가 없다. 그는 인간의 선함을 믿었을 뿐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실망은 하더라도 부끄러워하지는 않으리란 것을 배우는 알고 있다. 말과 물품을 되찾아온 사일러스를 만나자, 여전한 투로 묻고, 부탁한다. 나무에 깔린 해골을 보고는, 대놓고 폭소하지는 않지만, 웃음을 감추지도 않는다. 긴장을 풀고, 기꺼이 사일러스와 순간을 공유한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을 때, 제이는 눈을 꽉 감은 채 총을 쐈다. 시체에서 한참 동안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얼어 있었다. 얼결에 화살을 손으로 막았을 때도, 그는 언다. 움직이지 못하고 놀란 숨만 새되게 몰아쉰다. 네이티브들이 달아나자, 겨우 사일러스의 팔을 꽉 잡는다. 화살이 부러지고 나서야 목이 갈라지도록 소리를 지른다. 그런 상황에서, 제이는 그저 소년이다. 반대로 긴장이 아주 풀려도 그렇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나뭇가지를 슥 던지거나, 투덜대듯 코를 찡그리고 면도 거품을 닦아낼 때, 술에 취해 멍하게 비틀거릴 때, 소년의 얼굴이 나온다.
로즈의 현상 수배 전단을 본 제이는,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 약간 시무룩하게 상황을 인정하자마자, 화가 아닌 힘을 낸다. 자기 연민이나 죄책감에 매몰되는 대신 방법을 찾고 행동에 옮긴다. 차분히, 물음과 함께 사선으로 시선을 던진다. 눈동자에 이미 사그라든 원망과 담백한 슬픔이 비친다. 제이는 달린다. 총소리가 날 때마다 빠르게 고개를 움츠리며 겁에 질린 숨을 뱉으면서도, 멈추지는 않는다. 마침내 다다라 문을 열자마자, 총에 맞는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며, 기대어 늘어진 채 조용히 숨을 몰아쉰다. 눈은 초점을 잃어 가는 와중, 비로소 자신을 알아본 로즈를 향해 애써 입꼬리를 올린다.
그의 사랑은 혈육을 죽음으로 이끌었고, 로즈를 도망자로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그녀를 구했지만, 앞서 위험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그러나 순수했기에 아름답다,고 말하게 되는 것은, 제이를 이용하던 사일러스가 결국에는 돕는 까닭과 통한다. “삶에는 살아남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걸, 제이 캐번디시는 가르쳐 주었다.” 사일러스는 제이를 내내 ‘kid애’라고 부르고, 제이는 종종 사일러스를 ‘brute짐승’이라며 질려한다. 시니컬한 사일러스와 로맨틱한 제이는 어딘가, 닮아 있다. 살아온 삶의 모양이나 지나온 날의 수는 달라도, 동류인, 그런 이들이 있다. 서부를, 아메리카의 실체를, 때로 한 인간의 근본을 꿰뚫는 눈을 지닌. 부러 brutal했던 사일러스는, 이 kid의 깨끗한 영혼 속에서 삶을 발견한다.
그 영혼을 담는 얼굴은 과연, 코디 스밋 맥피의 것이어야만 했다. 앳된 외형에 어울리는 방향으로 깊고 안정적인 연기. 스스로가 무엇인지 알고, 믿는 자만이 지니는 아우라. 뺨의 굴곡이나 눈 밑 그늘에조차 그 깊이를 담아내며, 제이의 특별함을 설득했다. 그의 눈은 위화감 없이 ‘실리 보이’와 ‘세인트’의 경계에 머무르며, 황량한 서부를 아울렀다.
제이 캐번디시는 깨끗하고 맑았다. <파워 오브 도그>(2021), 피터 고든은, 때론 탁하게 껌벅이고, 때론 무섭게 번득인다. 그간 깊이를 더한 눈 밑의 그늘과 뺨의 굴곡. 피터와 코디 스밋 맥피의 집중력은 고요하게 무시무시하여, 효과적으로 필과 관객을 뒤흔들었다. 작품은 대사보다는 인물의 얼굴과 행동에 집중해, 상황과 감정, 힘의 흐름을 설명한다.
이미 몇 년 전 <슬로우 웨스트>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말 위에 있었다. 말을 다루지 못하는 것도, 이내 다루게 되는 것도, 능숙한 연기의 일부다. 로즈의 집으로 달리던 제이처럼, 피터는 얼굴을 꽉 찡그린 채 서툴게 말을 몰아 비탈을 내려간다. 두려움은 있지만, 절대 포기하지도, 실패하지도 않을 얼굴이다. 홀로 있을 때 띠는 낯빛은 중요하다. 약해 보였던 피터에게 단단하고 곧은 중심이 있었고, 가장 강해 보였던 필의 영혼이 불안에 떨고 있었음은, 넓게 보면 처음부터 드러난다.
피터는 동물을 죽여 벗긴 가죽으로 밧줄을 엮지도, 금방 시들어버릴 생화를 꺾어 모으지도 않는다. 종이를 잘라 자기만의 꽃을 만든다. 처음 화면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종이꽃과 함께다. 드라마틱한 표정의 변화는 없지만, 세상에 꽃과 자신만 남은 듯한 아우라를 풍긴다. 토끼를 해부하거나, 죽은 소의 가죽을 벗겨낼 때 역시 흔들림 없이 집중하나, 뉘앙스가 다르다. 사체에 대한 혐오 따위의- ‘감정’이 딱히 묻어나지 않는다. 모든 동작을 조심스럽고 정확하게, ‘한다’, ‘할 뿐이다’.
필이 종이꽃에 대해 묻자, 수줍게 설명하며, 조용히 뿌듯해한다. 그러나 그의 말투와 일꾼들의 비웃음에서 의도를 알아채고, 뺨이 굳는다. 꽃에 불을 붙이는 필을, 잠깐 응시한다. 눈이 옆으로 확장되고 진한 눈썹이 찍 올라간다. 눈물이 고인다. 상처를 받았으나, 저들의 무례함에 화가 났을 뿐,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것은 아니다. 분노를 타인에게 풀거나 전염시키지 않고, 홀로 다스려 가라앉힌다. 이미 어른인, 피터의 됨됨이를 소개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상징적인 제스처와 배우의 눈빛으로 충분했다.
귀찮은 듯 웅얼거리는 말투. 부러 제 가능성을 숨기듯 종종 안으로 먹는 발성. 제이의 풍부한 차분함과는 다르다. 착한 아들, 연약한 소년. 그러나 눈빛은 그 속에 무언가 다른 것이 들어 있음을 암시한다. 엄마를 대하는 피터는 항상 조심스럽다. 애정이 담긴 미소를 보내지만, 그녀의 눈이 이쪽을 향하지 않을 때는 눈치를 살핀다. 부서질까 겁내는 것 같기도 하다. 스스로 내레이팅했듯 -엄마를 보호자로 여겨 의지하기보단,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엿보인다. 똑똑하고 섬세한 피터에게 ‘보호’의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물리적인 힘을 길러 보디가드가 되는 것도, 감정적인 버팀목이 되는 것도 아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괴로움의 ‘원인’을, 바로 그 뿌리를 이용해 제거했다.
피터는 어정쩡하게 서서 필을 응시한다. 일꾼들이 말을 몰자 당황해 도망치지만, 이후로도 숨지는 않는다. 내내 관찰하고, 생각하듯 눈을 굴린다. 감지한다, 로즈의 변화와 필의 관계를. 아마도 조지가 필의 괴롭힘이나 고립된 환경으로부터 와이프를 ‘보호해 줄’ 사람이 못 된다는 것도 일찌감치 파악했을 것이다. 피터는 섣불리 움직이는 대신, 말없이 축적한다. 그러다 딱 한 번, 로즈를 감싸 안으며 나직하고 부드럽게 묻는다. 필 때문이지. 괜찮다는 답과는 다르게 괴로워하는 엄마를 지켜보다, 찡그리고 걸어간다. 필의 비밀 장소, 상자 안에 있던 것들을 발견할 때와 같이, 홀로 있는 순간에도 그의 얼굴은 신중하다. 쉽게 감정을 보이지 않고, 눈알을 굴리며 입을 다문다.
(“마초 카우보이들이 피터를 향해 호모포빅하게 공격적인 울프휘슬링, 캣콜링을 하는데, 그중 무엇도 그의 나아감을 저지하거나, 그를 위축시키지dim his defiance 못하는” 씬에 대해):
"I love that. 난 캣워크 씬이라고 불러. 그 모든 평가질을 맞닥뜨리고도 흔들리지 않는 피터의 영혼을 보여 주는 장면이야. 피터는 동떨어진 환경에 있기 때문에, 그 누구 앞에서도, 아무것도, 억제할 필요가 없어. 필에겐 그런 자유가 없고, 몹시 지독한 성격 속에 갇힌 거지."
-Kodi Smit-McPhee, interview by. Ryan Gilbey, [theguardian.com]
길고 가는 실루엣, 걸음걸이, 낯빛, 눈빛, 모두 두드러진다. 그를 둘러싼 공기는 주변과 구분된 리듬으로 흐른다. 주목과 조롱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의식조차 않는다. 다만 그 자신인 채 유유히 걷는다. 필이 피터를 ‘피트’라고 부르는 순간, 둘 사이 관계의 선이 다시 그어진다. 약간 긴장한 듯 묻지만 눈은 차분하다. 부러 입꼬리의 경계를 늦춘다. 이미 그는 꿰뚫고 있다. 수레에 걸터앉아 비스듬하게 보내는 미소는, 무해함을 입고 있어 유해하다. 피터의 목적은 엄마를 보호하는 것이기에, 그녀와 ‘한 편’이 되어 움직이지는 않는다. 잠깐 ‘멀어지는’ 것, 그에 대한 로즈의 반응을 필이 느끼는 것도, 계획의 일부다.
피터는 옆으로 앉아, 무너지는 로즈를 사선으로 응시한다. 부드럽게 속삭인다. 점점 눈물이 고인다. 아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인 로즈가 애원하듯 감싸자, 꼭꼭 씹듯 각각 다른 어조로 반복해 말한다, “You don’t have to do this.” 두 번째로 그 문장을 뱉을 때, 상대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안심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음이 확실히 들린다. 그러나 로즈와 거리를 두고 있음 또한 보인다. 안고 있는 두 사람을 클로즈업하지 않는 화면 속에서, 코디 스밋 맥피는 그 거리감을 유지한 채 감정을 흘려보낸다.
작품은 처음부터 필의 뺨에 진득하게 묻어나는 고독과 불안을 포착했다. 똑똑한 겁쟁이인 그는 약자를 밟고 파워플레이를 하며 그것을 감춰 왔다. 제 몸은 씻지 않으면서 헨리의 안장은 날마다 정성 들여 닦는 그. ‘남들보다 잘났다’는 감각은 브롱코 헨리가 자신을 특별하게 여겼다는 감각, 결국 자기혐오와 만나는 사랑의 기억이다. 언뜻 피터의 브롱코 헨리가 되려는 듯 보이나, 처음부터, 피터에게서 그의 흔적을 느끼고 끌렸던 것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You are a lonely, lonely man.”이라던 제이처럼, 피터는 그것을 꿰뚫어 본다.
유순하게 질문하고, 부탁하고, 감탄하며, 관찰한다. 그러다 허를 찌르듯 인상을 남긴다. 언덕에서 짖는 개의 형상을 찾아낼 때, 아빠의 죽음을 이야기할 때, 다리가 부러진 토끼를 쓰다듬다 목을 부러뜨릴 때, 피터는 무심하거나 담담하다. 먼 곳을 응시하다, 필이 부르자 고개를 살짝 돌리고 들고 있던 꽃을 허리춤에 꽂는다. 모자 아래 드러난 눈에 미세한 연민 같은 것이 묻어난다. 그는 화려한 거짓으로 현혹하는 방식의 ‘연기’를 하지 않는다. 다듬은 진심을 의도적인 타이밍에 하나씩 꺼내며, 서서히 파고들어 휘감는다. 결정적인 거짓(당신처럼 되고 싶어요)을 뱉을 때, 상대는 알아채지 못한다. 정교한 거미줄이 필의 마음에 차례차례 감겨 풀 수 없는 매듭으로 꼬이는- 과정을 작품이 설득하는 바탕은, 베네딕트 컴버베치가 쌓아 놓은 심연과, 코디 스밋 맥피의 치밀한, 예상치 못한 박자로 가슴을 건드리는 눈빛이다.
낮, 화난 필이 조지에게 로즈의 험담을 거칠게 늘어놓을 때, 피터는 솟아오르는 감정을 다스리려는 듯, 홀로 빠르게 걷는다. 조지가 자리를 뜨자, 천천히, 장갑을 벗으며, 다가간다. 목소리는 부드럽고 차분하다. 제가 비웃었던 ‘미스 낸시’의 커다란 눈동자와 가냘픈 허리 앞에 무방비하게 풀어진 필의 모습은 흥미롭다. 감동해 울먹이는 필의 응시를 맞받는 피터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다. 복합적이다. 연민, 분노, 결정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순간의 흥분.
밤, 어둡게 빛나는 피터의 눈은 필의 상처 난 맨손이 죽은 동물의 가죽을 다듬는 것을 똑똑히 지켜본다. 적당히 부릅뜬 채, 종종 위를 향한다. 손은 사물을 천천히 쓰다듬고 건드린다. 말투는 나긋나긋하나 서늘한 데가 있어 도발적이다. 어둠 탓에 얼굴의 굴곡이 두드러진다. 모든 몸짓과 눈길이 의미심장하다. 흰자를 드러낸 채 노려보듯 던졌던 시선을, 손으로 내린다. 담배를 필의 입술로 옮기며 함께 움직였다가, 이내 고정한다. 물리고, 피우고, 연기를 뿜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내내, 상대를 눈 속에 가둔 채 놓아주지 않는다. 필은 이제, 그 빛에 담긴 것이 적개심인지 유혹인지 구분할 수 없다. 의심조차 하지 못할 만큼 피터에게 감겼고, 그가 보내는 신호 하나하나에 반응한다.
관객이 피터의 입장을 취하는 것을, 작품이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갈수록, 필의 입장에서 그를 보게 된다. 오프닝의 내레이션도 들었고, 그가 필 몰래 하는 행동들, 보이는 눈빛들을 목격했다. 그럼에도, 나직하고 느린 유혹의 멜로디에, 필과 함께 필연적으로 말려들었다. 피터를 담을 때, 카메라는 점점 그의 호흡을 따라 움직이고, 이 배우는 큰 어려움 없이 화면을 지배한다. 진짜 강한 자의 눈빛이 무엇인지, 피터와 코디 스밋 맥피는 똑똑히 보여 주었다.
동떨어진 곳에 홀로 섰기에, 결과적으로 이야기의 핵을 꿰뚫었던, 그의 아버지 말대로 "too strong"한, 피터. 그는 "another man"이 되기를 거부하고, "the power of the dog"을 물리쳤다. 관찰하고 예측하고 관통하는 눈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감정을 절제한다. 개와 함께 뜰을 배회하고, 넓은 시야로 주변을 둘러보고, 찾고, 읽고, 밧줄을 쓰다듬고, 침대 밑으로 밀어 넣는, 창가로 가 바라보고, 돌아서고, 미소 짓는, 모든 제스처가 우아하고 고요하고 여유롭다. 시선 처리와 고갯짓, 걸음걸이까지, 마스터의 리듬을 띤다. 미세하게 올라간 입꼬리를 보며, 이야기를 열었던 목소리를 다시 떠올렸다. 그렇게 앳된 성자의 얼굴로 죽음을 맞이했던 이 배우는, 여전히 주제를 아우르는 위치에서, 이번에는 강인한 현자의 얼굴로, 죽음을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각기 다른 시기의 ‘서부’를 배경으로, 대강 ‘멋진 것’으로 포장되어 왔던 폭력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다루는 작품들. 그 중심에서 코디 스밋 맥피는 시대를 넘나드는 가치를 입었다. 20년을 더 살아온 배우들이 연기하는-, 강한 ‘남성성’을 띠는 상대 캐릭터와 묘하게 동등한 위치에 서서, 친구가 되거나(<슬로우 웨스트>), 잡아먹어 버렸다(<파워 오브 도그>). 전통적인 서부극에 어울리지 않기에, 그 덧없는 마초성을 깨트릴 수 있는 새로운 남성성이, 이 배우에겐 있다. 그의 독특한 실루엣과 눈빛에는, 주위를 압도하는 에너지가 있다. 자신만의 강함을 찾은, ‘사물을 다르게 볼 줄 아는(사일러스)’이의 것이다.
"피터와 나 사이 유사성을 찾았어. 우린 사회 보편적인 틀에 딱 들어맞지 않아. 내 삶에서 강조할 필요가 있는 면들을 그는 갖고 있어; 그 힘, 스스로가 누구인지에 대한 자신감. 피터는 타인이 정의한 남성성masculinity과 강함에 대한 기대에 자신을 맞추며 살려고 하지 않아.
…….사춘기에 들어서, 이 ‘남성적인 면’이 내겐 언제쯤 피어날지 의문이 들었어. 체육관에 다녀야 하나? 말투를 바꿔야 하나? 어느 날 큰 깨달음 같은 걸 겪었고, 그중 어느 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됐어. 난 약하고 마른 사람이야ectomorph. 철학에 관심이 있어. 난 예술가고, 그건 아름다워. 피터가, 그 ‘남성성의 틀’에 맞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발견하도록 도와줬어. 어떻게 보이든, 자신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든 간에, 강한 사람일 수 있다는 걸."
-Kodi Smit-McPhee, interview by. Ryan Gilbey, [theguardian.com]
* 참고 인터뷰